우울한 당신, 자해 충동을 이겨라

2014.02.27 21:21 입력 2014.09.29 12:46 수정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주인공 병태는 한 싸움고수에게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조른다. 그러나 고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라며 매일같이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다니는 병태의 울분을 모른 척한다. 병태의 끈질긴 요구에 고수는 마침내 칼을 던져주며 “나를 찔러봐라. 그 정도 배포가 있다면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순간 병태는 당황한다. 가해자에 대한 지독한 두려움과 분노,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을 공격해야 하는 모순이 동시에 떠올랐을 것이다.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엉뚱하게도 자기 팔을 자해한다. 상대를 찌를 순 없지만, 자신의 분노만큼은 이처럼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치료 후 돌아오던 길에 고수는 “그런 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라며 병태의 뺨을 후려친다.

7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40대 환자. “남편이 더 이상 내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며 홧김에 한 선택이다. 천만다행으로 나무 위에 떨어져 찰과상만 입었다.

이 환자는 우울증에 문득문득 자살충동을 또 느낀다. 남편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자살이 아니라 이혼을 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껏 참고 살아온 게 억울해 못하겠다. 이혼하면 그 사람만 좋고 곧 재혼할 텐데 남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닌가. 그리고 아이들이 불쌍해 절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최종 선택이 자살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셈법이며 자기모순인가. 무엇이 더 중하고 귀한지와 분노 폭발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시어머니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30대 엘리트 여성, 엄마와 싸울 때마다 자해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전교 1등 여고생, 뜻이 맞지 않는 상사 때문에 괴로워 자살 시도를 한 대기업 간부는 모두 잘못된 셈법에 빠져 있다.

사상의학에선 이런 착각이 ‘사심(邪心)’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상대를 내 뜻대로 조정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다. 심지어 내 생명까지 다 던져서라도 상대방의 뜻을 꺾고 내 뜻을 관철하려는 분노가 상당수 자살과 자해 충동의 실체다.

단순한 위로나 동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지독한 교만에서 비롯된 잘못된 셈법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울증 역시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한 자해 행위다. 상대와 세상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는 자기연민과 착각 속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자해 행위를 하는 셈이다.

화가 난다면 공격할 대상은 상대다. 당장 이길 힘이 없다면 일단은 피하고 헤어져야 한다. 가족과 연을 끊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대수인가.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면 그리 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나와 내 인생을 자해해서는 안된다.

소나기도 장마도 피해가야 한다. 지금 비 내리는 하늘을 향해 아무리 ‘지긋지긋하다’며 소리쳐봐야 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흐린 날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고 차라리 복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절치부심 노력이 게을러지면 바로 그때 충동적 분노가 발생한다. 이내 우울로 뒤바뀌고 자신을 공격하는 착각이 형성된다.

‘언젠간 다 지나가리라.’ 더 오래 살아 더 큰 웃음소리를 들려줘야 진정한 복수는 완성된다. 자해할 용기의 10%만 써도 복수할 힘은 충분하다.

☞ ‘한의사 강용혁의 심통부리기’ 팟캐스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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