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도 고소·고발 전쟁…누가 당선돼도 ‘피의자 대통령’

2022.03.03 17:20 입력 2022.03.03 17:58 수정 허진무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초청 3차 법정 TV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옆을 지나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선거 후보를 겨냥한 고소·고발 사건이 오는 9일 대선을 앞두고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무더기로 접수됐다. 여야 모두 수사기관의 정치 개입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지만 선거철에 수사기관을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행태가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로 평가받는 이번 대선에서 ‘정치의 사법화’는 더욱 심해진 양상을 보였다.

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상대 당으로부터 지난달만 9차례 검찰에 고발을 당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고소·고발을 당하는 즉시 피의자 신분이 된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피의자 대통령’이 되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이재명 후보를 6차례 검찰에 고발했다. 부인 김혜경씨 공무원 사적 동원 의혹(2월3일), 김혜경씨 의혹 허위 해명 혐의(2월8일), 윤석열 후보의 신천지 압수수색 거부에 대한 허위사실공표 혐의(2월15일),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과 경기주택공사 합숙소 비선캠프 의혹(2월22일), TV토론에서의 ‘정영학 녹취록’ 왜곡 공개 혐의(2월23일), 검사 사칭 전과 기록 허위 소명 의혹(2월25일)이다.

민주당도 지난달 윤석열 후보를 3차례 검찰에 고발했다. 선거대책본부 임명장 무작위 발급 의혹(2월9일), 부인 김건희씨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허위 해명 혐의(2월11일), 이재명 후보를 대장동 사건 ‘그분’으로 지목한 허위사실공표 혐의(2월25일)이다.

여야는 자신들이 고발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며 수차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을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대검은 지난 1월 “공무 수행에 지장을 주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정치권 방문에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며 ‘방문 거부’ 방침을 밝혔다.

고발 전문 시민단체의 ‘대리전’도 펼쳐졌다. 여권 성향인 ‘사법정의 바로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달 28일 윤 후보가 인사 검증을 통과하기 위해 시력 판정 자료를 조작했다며 공수처에 고발했다. 야권 성향인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은 지난 2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 후보 선거운동 단체대화방에 참여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사세행은 2020년 2월 설립 이후, 법세련은 2019년 6월 설립 이후 100건 이상 고발한 시민단체이다. 이들은 언론 보도가 나온 지 하루이틀 만에 고발장을 낸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범죄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주로 고발장에 적는다. 범죄의 성립요건이 매우 까다로운 혐의이다. 검찰에 따르면 2020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고발된 사건 1만6167건 중 23건(0.14%)만 기소됐다.

고소·고발은 시민의 권리이지만 남발되면 수사력과 행정비용을 낭비한다. 대검은 지난해 8월 ‘각하 대상 고소·고발 사건의 신속 처리에 관한 지침’을 제정했다. 언론 보도나 인터넷 게시물만이 근거인 단순 사건은 검찰시민위원회 심의를 거쳐 각하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청도 2006년부터 적법하지 않은 고소·고발에 대해선 민원인의 동의를 받아 반려하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권은 신중하게 행사해야 하는데 무리한 고발장이 밀려들어 처리에 곤란을 겪는다”면서 “한국 사회가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수사를 이용해 해결하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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