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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사건’ 재검토 반대했던 법무관리관···돌연 입장 변경, 왜?

2024.05.09 19:15 입력 이혜리 기자    강연주 기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3월21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채 상병 사건 관련 항명 사건 공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해 ‘채 상병 사건’을 처음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을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검토하는 방안을 국방부 측에 건의하자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법무관리관은 일주일 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조사본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법무관리관의 태도 변화에 대통령실의 개입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9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8월1일 해병대 수사단은 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적용한 조사결과의 경찰 이첩이 제지당하자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을 재검토하게 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경찰로의) 이첩 보류는 부당하다”며 조사본부로 이첩해 재검토를 받자고 건의했다. 김 사령관이 건의를 받아들여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 박진희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전했다.

김 사령관은 이후 진행된 국방부 검찰단(군 검찰)의 박 대령 항명 사건 조사에서 “유 법무관리관이 통화에서 ‘조사본부와 해병대가 다른 결론을 내리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고 논란이 될 수 있다’며 부적절하다고 밝혔다”고 여러차례 진술했다. 유 법무관리관이 ‘조사본부에 이첩을 했다가 해병대 수사단과 결론이 다를 경우 군 전체가 의심받을 수 있어 더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안 된다’며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김 사령관은 유 법무관리관과의 통화 뒤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로부터 ‘조사본부에 이첩하지 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받았다면서 “조사본부에 이첩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 법무관리관의 조사본부 재검토 반대 의사를 장관의 뜻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관리관실은 8월8일 이 전 장관에게 “조사본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보고 문건을 올렸다. 법무관리관실은 문건에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는 여러 관점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상급 수사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로 이관해 재검토하도록 한 후 경찰 이첩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범위 내에서 절차에 따라 조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주일 만에 입장이 180도 바뀐 것이다.

조사본부 재검토 건의 당일, 해병대-대통령실 통화 정황

유 법무관리관의 입장이 변한 대목은 또 있다. 그는 박 대령에게 수사 결과 경찰 이첩을 만류하며 ‘혐의자와 혐의사실을 특정하면 안 된다’고 주문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정작 국방부 조사본부에는 ‘혐의자를 2명 특정해서 경찰에 이첩하라’는 의견을 냈다. 이 전 장관은 이런 의견을 명목으로 조사본부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조사본부는 혐의자를 2명으로 줄여 사건을 경찰에 넘겼다.

이처럼 석연찮은 과정이 대통령실 등 윗선 개입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유 법무관리관은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건을 경찰에 이첩한 당일 이시원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통화했다는 의혹이 있다. 박 대령 측은 “김 사령관이 국방부 측에 조사본부 재검토를 건의한 시점에 임기훈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통화했다”며 “건의가 거부되는 과정에 대통령실이 관여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박 대령 쪽에 따르면 김 사령관은 지난해 8월1일 오후 3시29분 박 군사보좌관에게 ‘조사본부 재검토를 건의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20분쯤 지난 3시53분 박 군사보좌관은 “(장관이) 조사본부로 이첩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김 사령관에게 답장했다. 김 사령관은 그 사이인 오후 3시37분쯤 임 비서관과 통화했다. 김 사령관과 임 비서관이 4분45초 이어진 통화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이 해병대 건의를 받아 유 법무관리관에게 조사본부 재검토 방안을 따져보라고 지시했다가 갑자기 철회한 정황도 드러났다. 유 법무관리관은 군 검찰 조사에서 “군사보좌관으로부터 ‘해병대 수사단에서 조사본부로의 이첩을 검토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제가 검토를 시작하기 전에 조사본부로의 이첩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연락을 다시 받았기 때문에 검토를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해병대의 조사본부 재검토 건의를 거부한 게 아니라 당시 해외출장 중이라 귀국 후 결정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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