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갈등의 영향

2013.01.14 20:07 입력 2013.01.14 20:10 수정
신철희 | 신철희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

일곱 살 영민이네는 부부싸움이 잦은 편이다. 부모가 큰소리로 싸우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은 모든 아이들에게 심한 스트레스지만 기질적으로도 여리고 예민한 영민이는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동이인 영민이는 부모가 싸우면 아무 일도 없는 아이처럼 혼자서 장난감 가지고 잘 논다. 엄마아빠 싸움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가끔 ‘엄마 이것좀 해줘’ ‘아빠 이것좀 해줘’ 하면서 엄마아빠를 떼어놓으려고 하기도 하나 대체로는 혼자 논다. 한번은 음식점에서 부부가 말싸움을 별였고 아빠가 갑자기 흥분하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인상을 쓰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진 상황이 벌어졌다. 마침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자 영민이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음식을 잘 먹었다. 아빠는 계속 투덜거리면서 식탁 분위기를 안 좋게 했지만….

그런데 며칠 뒤 영민이가 엄마한테 왜 싸웠냐고 뜬금없이 그날의 일을 꺼냈다. 영민이는 이런 식으로 부부싸움을 하는 당시엔 아무 영향도 안 받는 아이처럼 굴다가 며칠 지난 다음에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가 어떤 때는 미안해서 아이를 풀어주려고 이야기를 꺼내면 별 일 아니란 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평소에도 엄마가 큰소리로 ‘영민아’ 하고 부르기만 해도 깜짝 놀라는 등 영민이는 큰소리에 예민하다. 영민이의 예민한 기질도 있지만 환경으로 큰소리가 나는 부부싸움을 자주 보면서 소리에 더 예민해진 것이다. 부모의 싸움 당시에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순간 힘든 것을 참고 있을 뿐인 것이다.

어느 날 영민이 엄마가 남편과 아침부터 심하게 큰소리를 내면서 싸웠다. 다른 때와 같이 영민이는 방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부부가 싸운 후 서로 냉랭한 분위기가 되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아이 데리고 나갔다 오라고 해서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자고 하는데 다른 때 같으면 엄마도 함께 가자고 하고 엄마 안 가면 안 간다고 했을 텐데 그날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빠 따라 나갔다. 놀이동산에서 저녁까지 먹고 실컷 놀다 밤에 집에 왔다. 영민이는 놀이동산에서 재미있게 놀아서인지 집에 왔을 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엄마도 반나절 지나니 마음이 가라앉아 평상시로 돌아왔다. 엄마가 ‘놀이동산 재미있었어? 뭐가 재미있었어?” 하고 물으니 영민이가 ‘엄마가 집에 있어서 좋았어”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지만 영민이는 무척 불안했던 것이다. 혹시 엄마가 없어졌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정도까지 불안했던 것이다. 부부 갈등의 영향력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크게 아이를 불안하게 한다.

[아이 마음 읽기]부부 갈등의 영향

초등학교 1학년 민수 엄마는 어릴 때 친정부모가 싸움을 많이 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도 하고 밥상을 엎기도 했다. 어릴 땐 저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할까 두려웠고, 이혼하면 난 누구랑 살아야 하나 하는 근원적인 불안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절대 아이 앞에선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사에서 생긴 불안과 우울 때문에 남편이 너무 바쁜 것 외엔 별일 없는데도 결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우울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 민수는 심리평가에서 그린 가족그림에 엄마는 구석에 누워 있고 아빠는 골프 치러 가서 없다고 안 그리고, 자신은 혼자서 만들기를 하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유감스럽게도 민수 엄마의 바람과 달리 엄마도 외롭게 컸는데 민수 또한 외로움 속에서 성장하게 하는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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