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 집담회 "우리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2017.05.16 16:40 입력 2017.05.16 18:38 수정
정리|최미랑·이유진 기자

사진 왼쪽부터 ‘불꽃페미액션’ 류현아씨와 이가현씨, ‘강남역10번출구’ 안현진씨, ‘페미당당’ 심미섭씨와  정소영씨가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집담회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사진 왼쪽부터 ‘불꽃페미액션’ 류현아씨와 이가현씨, ‘강남역10번출구’ 안현진씨, ‘페미당당’ 심미섭씨와 정소영씨가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집담회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묻지마 살인’으로 묻힐뻔 한 사건이었다. 강남역 10번출구에 빼곡히 붙은 포스트잇은 이 사건에서 ‘여성혐오’의 맥락을 살려냈다. 지난해 5월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한 후 1년이 흘렀다. 사건 직후 10번 출구에서 이어진 추모행렬은 일회성으로 끊나지 않았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계기로 활동을 시작해, 상근 활동가도 후원 회원도 없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하며 ‘여성혐오 사회’에 돌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17일 강남역 살인 사건 1주기를 앞두고 <경향신문>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집담회를 마련했다. 페미니즘 단체인 ‘강남역10번출구’ 안현진씨(24), ‘페미당당’의 심미섭씨(26)와 정소영씨(22), ‘불꽃페미액션’ 이가현씨(25)와 류현아씨(24)가 참석했다. 집담회는 15일 저녁 7시30분부터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편집국 소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남역 사건 이후 1년, 무엇이 변했을까. ‘강남역10번출구’ 안현진씨는 “평범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불꽃페미액션’ 이가현씨는 “강남역 10번출구의 포스트잇을 보고 용기를 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페미당당 정소영씨는 강남역 사건 이후 “일상의 차별과 혐오에 예민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강남역에서 터진 목소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이어졌다.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검은시위’가 열렸고, 탄핵 국면에서 쏟아진 각종 여성혐오 표현에도 경종이 울렸다. 페미당당 심미섭씨는 “세상은 더디게 변하지만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고 말했다.

■안현진 “우리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요구받던 설득과 포용의 언어 대신 날것의 언어를 선택한 세대”.

-본업이 따로 있나.

이가현=저는 휴학 중이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활동하다가 이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고 한다.

안현진=졸업은 못 했지만 직장에 다니고 있다.

정소영=저도 학생이다.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3학년을 마쳤고 지금은 인턴으로 일한다.

심미섭=저는 인도불교 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다.

-강남역 사건 후 활동 펼쳐왔는데 각 단체를 결성한 계기는.

안현진=강남역10번출구는 사건 직후에 함께 손팻말을 들고 추모 자유발언을 하면서 결성된 그룹이다. 5월17일 오전 사건이 발생하고 낮에 보도가 나왔는데 당시 언론이 썼던 기사 제목이 ‘화장실녀 살인’ 이런 식이었다. 새벽에 사건이 발생했으니 ‘왜 그 시간에 노래방 있었나’를 묻고 피해자의 직업을 추측하면서 왜 살해를 당했는지 유추하는 여성혐오적 기사가 난무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던 친구 한 명이 추모 손팻말을 들고 국화를 가져다 놓자고 건의하면서 강남역으로 나가게 됐다.

심미섭=저희는 지난 총선 때 ‘누구를 뽑아야 하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지지하는 진보 정당들이 여성혐오와 차별, 그리고 성범죄 등 문제에 우리가 원하는만큼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페미당당을 만들고 ‘우리의 정당이 없으면 어디 가서 페미당 당원이라고 하자’고 했다. 그러던 중 강남역 사건이 일어나 행동에 나서게 됐다. 이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났고, 다른 여성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여성이기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거울에 근조 리본을 붙이고 ‘거울 행동’을 진행했다. 그게 첫 활동이었다.

이가현=원래는 일요일 오전마다 같이 농구를 하는 모임이었다. 그냥 여자들이 운동을 많이 안 하고 체력이 안 좋아 많이 아프니까 ‘운동해야겠다’고 사람들이 모인 거였다. 농구한 사진을 페북에 올리고 같이 할 사람 모으고 했는데, 여자들끼리 모이면 으레 ‘한남충’ 얘기로 수다를 떨곤 했다. 정말 운동만 하러 모인 건데(웃음) 그렇게 재밌게 놀다가 강남역 사건이 터지고 ‘우리가 뭔가를 해봐야하지 않겠나’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때 처음 했던 건 서초경찰서 앞에서 ‘여성혐오가 죽였다’는 피켓을 들고 다잉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 묻지마 범죄라고 하냐’고 경찰에 ‘명명을 제대로 하라’고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기자들이 많이 왔다. 이름 없는 20대 여성들로 활동하려 했는데 기자분들이 이름을 요구해서 ‘우리가 이름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사건 조사가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갔는데, 검찰에서 조사를 시작할 때 경고를 하고 싶었다. 경찰에선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라고 했지만 검찰은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면서 검찰이 얼마나 그동안 여성혐오에 무지했는지 알려주고자 정문에 피켓을 붙였다. 그날 밥을 먹으며 ‘불꽃페미액션’이란 이름을 정했다. 원래는 ‘불꽃여자농구팀’이었다.

-주로 ‘페미니스트 그룹’ 이라고 스스로 소개하고있다. 여성단체라는 표현은 활동 정체성에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

정소영=여성과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각각 포용하는 범위가 다르니 페미니스트가 더 저희의 활동을 잘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강남역 사건 이전에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나.

안현진=전에도 페미니즘 활동을 했고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자각했다. 종종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스트가 됐는지’ 묻는 질문을 받는데 저는 그런 사례는 아니다.

이가현=저도 페미니즘에 관심은 있었다. 2015년 메갈리아가 나온 이후 친구들을 만나면 조용조용히 낄낄대며 공유를 하곤했다. 대놓고 내가 ‘메갈리아를 좋아한다,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다’라는 말을 못했다. 편견이 심하니까. 강남역 사건 이후 포스트잇이 붙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드러내어 말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어서 ‘저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후에 페미니즘 행동을 계속하면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서 당당하게 정체화한 것 같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사건 자체보다 언론보도와 수사기관 행태가 분노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가현=이후에 다른 여성이 토막살인돼 가방에서 발견된 사건에서는 ‘가방녀’라는 말이 나왔다. 피해자의 성별만 부각시키는 것은 가해자에게만 감정이입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피해자에게 ‘화장실녀’라고 이름 붙이면서 가해자 이야기는 ‘미래가 창창한 신학생이었는데 한 순간 몹쓸 짓을 해 인생을 망쳤다’는 식으로 풀어내는 기사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소라넷이 폐지되자 어떤 기자는 자신을 소라넷이라고 상정한 편지 양식의 기사를 썼다. ‘내가 사라질 것 같지?’ 이런식으로.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프레스센터 앞에서 또 한 번 행동을 취했다. ‘우리는 기자회견녀인가’라는 제목으로.

-이전의 이른바 ‘여성운동’과 무엇이 다를까.

안현진=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가 대중적인 이름이 된 게 어쨌든 처음인 것 같다.

심미섭=성격도 다른 것 같다. 관용의 폭이 크다. 메갈리아와 관련 있을 수 있고 세대와 관련 있을 수도 있다. 메갈리아에서는 누가 ‘내가 성노동자인데 성폭력 당했는데도 신고 못했다’고 하면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한다. 누구도 (잘잘못을) 판단하지 않으니 위안을 받는 것이다. 이전 페미니스트들도 관용을 추구했지만 ‘이러면 페미니스트 아니야’ ‘너 왜 성형해’ ‘넌 페미니스트 아니야’ 이런 얘기가 많았다. 그땐 그게 필요했다고 본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이 있었고 그들이 새로운 인류로 등장해 가시화해야 할 시기였으니까. 지금은 어떤 생각이나 외향을 가지고 행동하든 당신이 페미니스트의 기본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왜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라고 말할 수 있다. 멋있든 촌스럽든 본인에게 어떤 의미이든 ‘당신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페미니스트’라는 생각 가지는 것 같다.

정소영=이렇게 서로 인정하는 경향이나 페미니스트라 스스로 규정하는 당당함이 공유되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기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를 형성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지지하고 생각을 공유하고 자료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희 세대 페미니스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안현진=기존 여성운동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운동하고 ‘메이저로 진입하겠다’는 뜻이 있었다. 그래서 ‘영페미 운동’이 나왔고 여전히 운동이 지속되고 있지만 ‘영페미’였던 사람들이 대개 대학원으로 가서 여성학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이 끝까지 이어지거나 계승되는데 힘을 싣지 못한 게 왜일까, ‘언니들’은 왜 그랬을까, ‘왜 운동을 계속하지 않고 대학을 갔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무리 말을 해도 (사회가) 안 들으니까. ‘사람들이 요구하는 설득의 방식과 학문적 언어를 갖추라는 요구를 받으니 안 갈 수 없지 않았을까?’ 라는 고민을 활동하면서 많이 했다. 우리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요구받던 설득의 언어와 포용의 언어 대신 날것의 언어를 선택한 세대다. 페미니스트들이 뭔가 말을 하면 (사회는) ‘너희 왜 거칠게 얘기해’ ‘니가 설명해봐’ ‘쉽게 설명해봐’라고 요구하고 자기가 알아듣는 언어로 설명해주길 바라니까. 메갈리아의 영향이 크겠지만 메갈리아 이전에 페이스북 ‘댁의 김치는 안녕하십니까’ 페이지도 있었고. ‘김치녀’라고 공격하는 세상에게 ‘너네가 나를 김치녀라고 불러? 나 김치년데, 안녕하니?’라고 대응한. ‘너네’가 말하는 언어를 포기하고 날것의 언어 말하기 시작한 것. 헬페미니스트가 호응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당당 심미섭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페미당당 심미섭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심미섭 “여성혐오가 근본원인이란 것이 1년 동안 논의되지 않았다면 ‘어떤 진보가 있었던 것인가’”

-활동 1년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나.

이가현=보건복지부에서 임신중절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검은 시위’를 하니 백지화된 게 기억에 남는다.

안현진=제일 중요한 건 대중들이 자기 목소리를 자기 언어로 내뱉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학문적 권위가 있다거나 유명한 여성학자나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이고 이런 일을 당했다”고, 어떤 권위를 승인받지 않아도 한 사람의 당사자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말하기가 지금의 운동의 흐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 것 같다. 강남역에서 자유발언대가 시작된 이후 검은시위와 페미존 등 활동에서 자유발언대는 중요한 특징이 됐다. 기존 운동권은 선택하지 않는 방식이다. 기존의 기자회견이나 집회는 미리 섭외된 어느 단체의 대표나 위원장, 학자, 이런 분들의 발언으로 채워졌다면 자유발언대에서는 누구나 손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면 발언할 수 있다. 어떤 뜻을 가지고 모인 우리가 그냥 서로 여기 와서 발언하는 것 그 자체를 받아줄 용의가 있고. 다른 조건은 필요 없이 ‘내가 주체다’라고 말하는 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심미섭=지난해 박근혜 퇴진 집회 때 있었던 ‘페미니스트 존’을 줄여 ‘페미존’이라고 부른다. 페미존은 ‘페미니스트가 서로 지키고 도우면서 집회에 나가자’라는 취지로 출발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때론 학생회 깃발 아래서 광장에 나가면 여성들은 계속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왔다. 이번 집회에서는‘병신년’ ‘닭년’ 등 여성혐오적 표현이 계속 나왔다. 여성혐오적 표현과 여성 참가자에 대한 위협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집회에 못 나오겠다’ 했고 실제로 ‘나가지 말자’는 글들도 나왔다. 그렇게 ‘페미니스트는 나가지 말자’라는 논의를 접하고 저희 구호를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라고 정했다. 기존 운동 혹은 시위에 익숙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자유롭게 참여하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 일에 목소리 내는 동시에 페미니스트 여성으로서 또 소수자로서 목소리를 내면서 뿌듯한 경험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켜보자’는 소극적 의미에서 출발했다면 나중에는 DJ DOC의 공연에 여성혐오적인 가사가 나오는 것을 나가서 막는다든가, 무대 위에서 ‘미스박 당신은 나의 대통령 아닙니다’라고 발언한 것에 항의 해서 바로 사과 발언을 받아낸다든가. 의견을 표출하고 세상을 실제로 가시적으로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얻어냈다는 데서 여성주의를 공부고 배우다 보면 사람들이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페미존이 처음에 ‘아 우리가 맞기 싫고 마음이 상하기 싫으니까 서로 지켜주자’ 이렇게 소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좀 방어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다가 그걸 보고 사람들이 모이니까, 어떠한 목소리를 낼 힘이 있는 개체가 됐다는 것이, 피해자 프레임을 벗어나서 페미니스트로서 이 사회에서 기능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심미섭=저는 강남역 사건 때 처음 시위에 나갔다 보니 자유발언대가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당연히 시위에선 자유발언대를 하는 거구나’(웃음) 그런 건 줄 알았는데. 페미존에서 처음엔 큰 트럭을 빌려서 대표들 참여 단체들에게 얘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그땐 재미가 없었다. 나중에 트럭도 장소도 없어서 정말 길 위에서 그냥 자유발언을 진행하니 거기선 정말 모르는 분들이 참여했다. ‘아, 나는 트랜스젠더인데’, ‘나는 성노동자인데’, ‘나는 외국에서 생활하다 온 학생인데 내 발음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놀린다, 외국인 혐오와 여성혐오는 같이 가는 거고 페미니스트들은 외국인 혐오도 방관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도 해 주시고. ‘여성주의자’에서 ‘여성’만 향하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 이슈와 장애인 등 다른 차별에도 다같이 연대하는 모습이 페미존 자유발언에 잘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안현진=지난해 6월6일에는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공동행동’이 있었다. 큰 페미니스트 집회였는데, 여성민우회라든지 여성단체연합 등 단체의 회원들만이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대중들이 참여했다. 모이는 방식이 달라진 것 같다. 그 때 600명정도가 왔는데 이렇게 많은 참가자가 모인 게 몇 년 만이라고 한다.

‘여혐세상을 뒤엎자. 우리가 모이면 세상이 바뀐다’가 슬로건이었는데 성소수자, 장애인 단체와도 연대했다. 강남역 사건의 맥락에서 여성혐오가 빠지고 ‘조현병 환자’만 부각되면서 이 사건은 정신장애 혐오로 이어졌다. 또 서울시는 대책으로 성별 분리화장실 증설을 내놨는데, 이건 사실 성소수자에겐 굉장히 중요한 의제가 아닌가. 페미니스트들이 지속적으로 외연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은 단일한 층위가 아니라 그 안에 성소수자, 장애인, 빈곤층, 청소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성 안에 존재하는 단일하지 않은 층위를 집회에서 호명하고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우리는 ‘페미존’에서 ‘퀴어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라는 구호도 외쳤고, ‘혐오와 민주주의는 같이갈 수 없다’라고도 외쳤다.

정소영=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이 자신의 얘기를 가지고 모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인터넷 게시글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할 수 있듯이 페미니즘 단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누구와도 자기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의미있다고 본다.

‘강남역 10번출구’ 안현진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강남역 10번출구’ 안현진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정소영 “대선에서 돼지흥분제가 논란이 된 것도 큰 변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봤나.

안현진=사실 기대가 컸다. 하지만 대선 정국에서 수많은 혐오를 목도했다. 많은 후보가 낙태죄 폐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합의가 필요하면 논의를 시작할 건가? 그것도 없었다.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로 차별금지법 반대를 얘기했고, 낙태죄 폐지는 회피했다.

심미섭=낙태죄에 대해서 확실하게 ‘폐지하겠다’고 얘기한 사람은 주요 후보 5명 중 단 한명이었다.

정소영=저희 페미니스트 그룹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건이 임신을 중단할 권리다. 임신중단이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와 직결되는데 그것을 언급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심미섭=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페미니즘 이슈 관련 공약이 많이 나왔다. 여성의날에 후보들이 페미니즘 행사에 와서 공약도 내놓고. 심상정 후보는 구체적으로 냈고 문재인 후보도 대선 바로 직전에 디지털 성범죄 관련 공약 등을 추가했다. 이렇게 보면 노력하는 것 같은데 결국 대선에서 전국적인 자리가 있을 때는 이슈가 안 된다. 예를 들어 대선 토론에서는 페미니즘 이슈가 전혀 안 나왔다. 우리가 정치권에 요구하는 바는 ‘이것은 후순위가 아니다. 당장 해야하는 일이다’ 인데 이렇게 되면 정책이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안현진=그럼에도 성과라 평가할 것은 어쨌든 많은 후보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어떻게 근절할지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소영=‘수퍼우먼방지법’도 주목할 만 했다.

안현진=차별금지법 등을 꾸준히 요구해 왔기 때문에. 특히 디지털 성범죄같은 문제는 운동이 없었다면 후보들이 생각이나 해 볼 수 있었을까. 소라넷이 폐지 되고 그 이후에도 적극적 정책이 나왔으니, 아쉽긴 하지만 그것이 운동의 성과라고 본다.

이가현=기억에 남는 장면이 토론회 때 홍준표 후보한테 ‘설거지는 여자의 일이다’ 얘기한 것을 사과하라고 심상정 후보가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돼지흥분제에 대해서도 ‘사퇴하라’고 다른 후보들이 강력히 얘기했다. 또 유승민 후보 딸 성추행 사건 때도 결국엔 여성이 어떻게 소비되는가 하는 문제에 지적이 가해졌다. 유명 정치인과 그 딸이 결국 ‘국민 장인어른’ ‘국민 여동생’ 하는 식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것이다. 그랬으니 성추행 사건도 화제가 되고 바깥으로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보들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 이런 장면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정소영=돼지흥분제가 논란이 된 것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이 어떤 후보의 ‘인간성’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느냐’를 기준으로 삼게 된 것 같다.

심미섭=공약 차원에 있어서는 ‘육아공약이 여성공약의 최우선이 될 수 없다’라는 게 공통적으로 공유가 된 게 큰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이전엔 여성이슈 ‘아이를 낳아 키울 것이다’를 전제로 했는데. 이제 개인의 삶의 질보다 ‘어떻게 하면 출산율 높일까’ 관점 에서 접근했다면 이제 우리 정치권에 그건 페미니즘 이슈에서 최우선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공유되고 공감을 얻고 사람들이 이해한다는 게 희망적이었다.

-1년간 여성의 생존 환경 나아졌을까.

심미섭=어제 페미당당에서 ‘묻지마 범죄를 묻다’라는 세미나를 했다. 강연자께서 성범죄와 가정폭력 등 여성 대상 범죄가 90% 이상 지인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무차별하게 여성을 길에서 죽인 사건이지만, 그 때 여성들이 붙인 포스트잇을 보면 대개 자기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당한 일들을 써서 붙여놨다. ‘여성이라서 당한 일’이라 공감한 것이다. 피해자가 길에서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죽었기 때문에 공감한 것이고 여성이라서 당하는 일들은 가정, 학교 등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일어난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희롱당하고 죽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인데, ‘길에 CCTV를 달아줄게’ 이런 답은 동문서답이다.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단 것은 인정하지 않고 ‘아, 위험하니까 CCTV를 달아줄게’ 하는 식이다. ‘귀가할 때 무서우니 아주머니 두분이 같이 가게 해줄게’ 이런 식의 대책은 이 사건을 너무나 평면적으로 보는 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금 더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지적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사건이라는 것부터 동의가 돼야 하는데 일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건 그냥 범죄야’ 혹은 ‘그건 조현병 환자의 살인이야’ ‘정신병자가 한 거야’ 이런 얘기가 통용된다는 것이 답답하다. 여성혐오가 이 범죄의 근본적 원인이란 것이 1년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진보가 있었던 것인가’ 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안현진=국가적으로 여성안심귀가정책 등 여성 안심 정책을 많이 냈다. 대개 여성을 보호하는 ‘보호주의’ 정책들이다. CCTV를 더 설치하고 공용화장실은 분리하는 것이 주를 이뤘는데, 이런 정책의 핵심은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성범죄나 가정폭력 등이 실제로는 아는 사이, 사적인 공간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거다.

정소영=안전해야만 하는 공간이 그렇지 못한 걸 바꿔야는데 새로운 안전공간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안현진= 그럼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 책임은? 이런 정책들은 그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겠다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러게 왜 늦은 시간에 돌아다녔냐’, ‘왜 술 먹었지’, ‘집에 일찍 들어오면 괜찮았을텐데’ 라고 여성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스스로를 보호하고 검열해야 하나. 여성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야 안전한 사회인 것이다. 조현병 얘기도 꼭 하고싶다. 일부 언론에서는 심지어 ‘조현병 살인’이라는 표현까지 쓰기 시작했다.

심미섭=이전에는 조현병과 범죄를 엮은 보도가 보기 드물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 간 몇천 건씩 나온다. 언론이 프레임을 그렇게 만든 거다.

안현진=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여성들이 이에 위협을 느끼면 ‘우리사회에 문제가 있구나’ 깨닫고 바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조현병 살인’이라고 이름붙여 누구 한 명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는 정상적이고 여성혐오 사회가 아닌데 얘만 이상한거야’라고 낙인 찍는 것과 같다.

정소영=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겪고 나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얘기할 때 차별과 혐오에‘예민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심미섭= 이번 대선 결과를 보고 이런 한줄 평을 남겼다.‘세상은 더디게 변하지만 우리는 돌이킬 수 없게 변해버렸다’라고. 여성민우회에서도 이번에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주제로 해시태그 운동을 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변하지 않은 것은 이 세상, 변한 것은 나’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

정소영=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현진=걱정되는 것은 국가가 조현병 혐오, 정신장애 혐오로 이런 흐름을 덮고자 한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성범죄가 발생하는데 지금의 혐오와 폭력, 살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국가가 방조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한다. 어찌보면 국가는 강한 ‘정상성’이란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조현병을 이용했고, 성별 분리 화장실을 얘기함으로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위한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타깃이 정신장애인이지만 다음번에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성소수자라서’, ‘장애인이라서’ 라고 얘기하면서 계속 소수자 권리를 점점 축소할 지도 모른다. 이 사회가 변화지 않는다면.

페미당당 정소영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페미당당 정소영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이가현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 더 많은 차별에 반대할수록 더 급진적”

-왜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를 부정한다고 보나.

심미섭=혐오의 주체는 기득권인데 ‘이것이 여혐 사건이다’ 얘기하면 자신의 기득권을 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혐문제야’라고 하면 ‘우리사회에 여혐이 있어? 뭔데?’라고 되묻는다.‘아, 부장님. 부장님이 저한테 치마가 짧다 하시는 거요.’ 하고 답을 하면 얼마나 싫겠나, 부장님이.(일동 웃음)

-활동하면서 두렵거나 불안한 적은.

정소영=최근엔 ‘나는 ( )대통령을 원한다’라는 손피켓으로 나눠주고 빈 곳을 직접 작성해 사진으로 찍어 페북에 올리는 활동을 했다.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이 얼굴과 함께 SNS에 올라간 뒤 어디엔가 그 링크가 공유됐는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한꺼번에 악플을 달고 갔다. 그걸 보면서 힘들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또 이런 걸로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팀원들이 다 알고 있지만 충격이 컸다.

심미섭=내용이 전부 얼평(얼굴평가)이었다.

정소영=촌스럽고 무식한 종류의 악플이었는데 그것의 양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미섭= 타격이 있었다. 일부 구성원은 ‘야 나 못생겼어?’ 이렇게 얘기하면서 울고. 우리는 페미니스트니까 그런 것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또 심지어 그런 것을 힘들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까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20여년을 이미 살아 왔다. 외모에 대한 비판이 우리에게 여전히 크게 작용한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면서 이중으로 힘들었다. ‘어, 나는 여기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되는데’, ‘페미니즘 덕분에 이제 영향 안 받는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타격을 입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정소영=그런 것으로 타격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론적으로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지만 어쨌든 자라온 환경과 사회를 벗어나서 온전히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안현진=악플로 끝나면 다행인데 실제로 인터넷에 사진 한 번 뜨고 나면 위협을 가하겠다는 얘기도 듣게 되니까. 강남역에서 자유발언을 할 때도 ‘너네 어떻게 하겠다’ 이런 댓글이 많았다. ‘핑크 코끼리’ 사건도 있었고.

이가현=저도 자유발언대에 몇 번 갔었는데 공격하려는 남성이 많았다. 손팻말을 들고 자유발언대를 훼방 놓기도 하고.‘어제까지 자몽에이슬 빨고 빽다방 가서 커피 마시던 년들이 나와가지고 피해자 코스프레 하냐’ 이런 얘기를 들었고 사진도 찍히고 하면서 ‘그냥 길을 가다가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죽을 수 있겠구나’하고 느꼈다. 거기다가 ‘말을 하면 더 죽기 쉽겠구나’하고 두려움이 극대화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니 공포, 목숨에 대한 위협이 계속 있다. 저희도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기자회견을 했는데 기사에 ‘무릎 색깔을 보니 까만 것이 남자들에게 봉사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쟤는 몸매가 좋아서 나의 성노예로 삼고 싶다’ 이런 댓글이 달렸다. 강남역10번출구와 여성민우회, 민변과 함께 고소했는데 결과는 불기소나 기소유예가 대부분이었고 두 사람만 벌금을 받았다.

심미섭=페미존 활동 때는 아저씨들이 와서 ‘아우, 미스코리아네’ 하면서 사진 찍으려고 하고 ‘뭐 예쁜 애들이 시집가서 공부나하지 여긴 왜왔냐’라고 말한 적도 있다. 저희가 페미존에서 배부한 스티커를 앞에서 찢어버리기도 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뒤 해산하면 아저씨들이 ‘아유, 보기 좋다, 한 번 더 해라’ 이런 말도 하고. DJ DOC의 가사에 항의했을 때는 ‘쟤네는 무슨 단체인데 (주최측이) 쟤네 요구를 들어주냐’며 ‘단체로 대준 듯’이라는 악플도 달렸다.

이가현=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지치는 사람이 늘어난다. 에너지는 소진되는데 치유가 안되는 거다. 이전까지 쌓여온 혐오나 폭력의 경험을 너무 잘 자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에 잘 대처하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안현진=과거에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겪은 친구들의 경우, 자기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활동하면서 비슷한 사건을 계속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살아나는 것이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이것을 마주해야 하지만 또 치유에는 시간도 필요한데 계속 비슷한 일을 접하다 보니 치유가 안되고 상처만 곪게 되고. 지속적으로 운동하면서 이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서 서로를 소외시키지 않고 배제시키거나 고립시키지 않는 것이 우리에겐 즐거우면서 힘든 과제다.

불꽃페미액션 이가현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불꽃페미액션 이가현씨. 이준헌 기자 ifwedont@

■1주기 추모제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1주기 추모제 준비 어떻게 하고 있나.

안진현=사실 지난 겨울부터 고민했다. 우리가 1주기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살아남은 우리는 대체 뭘 해야하지, 다시금 기억을 되새기는 것도 의미가 크다. 논의끝에 제목을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로 했다. 강남역10번출구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변화가 컸다. 이런 얘기를 나눌 페미니스트가 주변에 많이 생긴 것도 큰 행복이고, 용기도 얻었고. 처음 자유발언대를 할 때만 해도 여성분들의 발언이 너무 안 나왔다. 발언을 해 달라고 하면 남자분들만 손을 들었다. 그래서 사회자가 끊임없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여성들의 경험을 듣고자 하니 양해해 주시라, 여성분들의 발언을 기다리겠다’. 침묵 속에 한참을 기다리고. 그러면서 사회자가 참 말을 잘 하게 됐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웃음) 이 사회의 여성혐오와 폭력에 대해 증언을 하면서도 여성들은 ‘내가 이 얘기 해도 될까’ 망설이며 손을 든 것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면 또 그것을 보고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 1년을 맞게 됐다. 그래서 ‘우리의 두려움이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라고 제목을 정했다. 17일에는 피해자에 대한 추모의 뜻으로 헌화와 묵념을 진행한다. 이후에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집어던지는 퍼포먼스 하려고 한다. ‘더이상 사회에 침묵하지 않겠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미로. 젠더폭력의 경험을 얘기하는 자유발언대 행사도 진행한다.

정소영=어제 페미당당에서 1주기 세미나를 했다. 한 친구가 얘기하길, 지난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강남역 10번출구에 가서 포스트잇을 읽다 눈물이 나서 우는데 옆에서 같이 울던 여성이 휴지를 건네줬다 하더라. 그렇게 ‘건네어진 휴지로 공유한 슬픔’이란 경험이 ‘강남역 10번출구’가 갖는 의미인 것 같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의 얘기를, 아픔을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것. 여자로 나서 살면서 경험하는 끊임없는 두려움, 신체적 위협, 많은 아픔들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것이니 그만큼 서로 공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것 같다.

이가현=처음에 1주기 행사를 조그맣게 하려고 했는데 다른 여러 단체들이 손잡게 돼 일이 커졌다. 제일 감동한 것은 천주교 인권위원회와 조계종 사회노동위가 함께 해 주시기로 한 것이다. 전화를 주셔서 ‘스님과 같이 갈게요’ 하시더라.(웃음) 불꽃페미액션이 올해 3, 4월 ‘페미들의 성교육’을 하면서 예수회 학교에서 강의실을 빌리려 했다가 ‘낙태죄 폐지 주장이 종교와 안 맞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한 편에 있는데 같은 종교 내에서 또 젠더폭력에 맞서 싸우고자 연대를 하는 곳도 있고. 작년과는 좀 다르게 (운동의 주체가) 확장이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1주기 추모제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이 페미니즘 운동이란 것이 정말 힘들고 많이 지치고 공격도 받지만 오래 갈 수 있게, 더 널리 퍼지고 팽창될 수 있게 하는 기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다.

-여성혐오에 어떻게 맞서 나갈까

안현진=젠더폭력 활동도 많이 하고 있지만 성소수자 의제도 같이 고민하고 있다. 소수자의 존재를 폭력과 혐오로 지워내려는 행동에 맞서 어떤 행동을 할까 고민을 계속 하고 있고. 교차하는 폭력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희는 이름이 이름인지라 활동할 때 조심스런 측면있다. 강남역10번출구란 이름의 무게가 크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도 결국 정신장애 혐오와 맞물렸듯,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문제를 같이 푸는 것이 여성혐오에 맞서는 저희의 고민이자 자세다.

정소영=여성이 서로 연대하고 위로해 줄 수 있고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페미당당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페미니즘 내러티브에 기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욱 예민할 수’ 있도록.

이가현=저희는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차별에 반대할수록 더 급진적’이라고 생각한다. 더 급진적인 페미니즘과 세상을 만드는 데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야할 것 같다. 물론 내가 살아남을만 한 정도로(웃음). 요즘 제 인생 목표가 ‘살아남기’, ‘살아있기’다. 다같이 행복합시다.

심미섭=우리는 절대 불행하게 죽지 않을 것이고 행복하게 페미니스트로 살다가 행복하게 죽어서 정말 얼마 없는 페미니스트 롤모델이 될 거예요.

사진 왼쪽부터 ‘불꽃페미액션’ 류현아씨와 이가현씨, ‘강남역10번출구’ 안현진씨, ‘페미당당’ 심미섭씨와  정소영씨가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집담회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사진 왼쪽부터 ‘불꽃페미액션’ 류현아씨와 이가현씨, ‘강남역10번출구’ 안현진씨, ‘페미당당’ 심미섭씨와 정소영씨가 15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집담회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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