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그 후, 손배폭탄이 남았다

파업에 ‘불법’ 딱지 붙이는 법원…30건 중 4건에만 “합법”

2022.08.29 21:17 입력 2022.08.29 21:18 수정

③ 노조엔 ‘엄격’ 기업엔 ‘관대’한 법원의 이중잣대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6월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대형 선박 안에 설치한 1㎥ 크기의 철제구조물 속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은 임금 인상 타결로 마무리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으로 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간 이렇게 제기된 소송에서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반면, 기업의 주장엔 관대한 경향을 보여왔다. 민주노총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6월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대형 선박 안에 설치한 1㎥ 크기의 철제구조물 속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은 임금 인상 타결로 마무리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으로 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간 이렇게 제기된 소송에서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반면, 기업의 주장엔 관대한 경향을 보여왔다. 민주노총 제공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문 30건 분석…18건이 기업 승소

복합프린트기 렌털비용 500만원,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렌털비용 191만원, 소독·방역 비용 82만원, 방호 용역비용 8억7900만원…. CJ대한통운이 올해 초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한 택배노조를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서 주장한 손해 중 일부다.

CJ대한통운은 모든 손해를 더하면 피해액이 100억원을 웃돌지만 일부만 청구하겠다고 했다. 과로사하지 않게 해달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며 이어간 파업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따져물은 20억원짜리 ‘손배 폭탄’에는 ‘렌털비용’부터 ‘훼손된 기업가치’까지 반영됐다.

헌법이 보장한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노동조합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해 쟁의행위를 보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은 법을 우회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불법파업’ 주장을 앞세워 거액의 손실을 산정한 후 배상을 청구한다.

법원은 기업의 주장대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이 아닌가….” 2003년 손배 소송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 한탄을 2022년 경향신문이 만난 노동자들도 되풀이했다.

1990년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배 책임을 처음 인정한 후 법원은 다수 파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불법’ 딱지를 붙여왔다. 경향신문이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이 제기한 손배 청구 소송 판결문 30건을 분석한 결과 1심에서 60%(18건) 이상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노동자가 파업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쟁의행위를 정당하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한 경우는 4건에 그쳤다. 법원은 사용자의 책임에 대해선 대체로 관대하게 판결했다. 그러는 사이 기업들 사이에선 파업을 한 노동자가 평생 벌 수 없는 막대한 액수를 손실로 청구한 뒤 법원 판단을 기다리거나 노조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편리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시민단체 손잡고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노동자에 대한 누적 손배 청구 금액은 658억원에 달한다.

사측 ‘협상 불응’ 책임 안 묻고
점거행위 불법성만 따져
“노동자가 손해배상해야”
정수기·비데 비용까지 포함

■ ‘합법파업’은 하늘의 별 따기

노동자는 왜 불법파업을 하는가. 노동자가 파업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지만 합법으로 가는 길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법원은 노조법 제3조에서 ‘이 법에 의한’에 방점을 둔다. 법에 의한 ‘정당한 쟁의행위’일 때 손배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이다. 주체·목적·절차·수단 중 하나라도 정당하지 못한 파업에는 ‘불법’ 딱지가 붙는다. ‘불법’이 되는 순간 기업은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많은 파업은 ‘목적’부터 불법이 된다. 노동자의 생존권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리해고를 두고 파업을 하면 불법이다. 법원은 2009년 쌍용자동차, 2011년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각각 33억원, 59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민영화, 비정규직, 회사의 잘못된 경영에 대한 파업 역시 불법이다. 임금 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만 합법으로 인정된다.

간접고용이 확산하고 특수고용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선 ‘단체교섭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라는 기준이 합법파업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다.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원청의 결정 사항인 경우가 많지만 법원은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를 중심으로 쟁의행위의 적법성을 따진다.

법원은 2010년 불법파견 해결을 요구하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과 관련해 현대차가 제기한 11건의 손배 소송에서 모두 노동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현대차가 단체교섭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도 직접계약 관계가 아니라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은 불법이라는 현대차 주장을 받아들였다. 2007년 기아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에 대해서도 똑같이 판단했다.

‘실질적 교섭권’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은 노동권 위축으로 이어진다. 법원이 기업의 손배 소송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원청으로서 교섭을 거부하던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CJ대한통운과 하이트진로 역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택배·화물기사들 파업에 손배 소송을 내면서 “계약관계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이자 교섭 대상이라는 판례가 나왔지만 현실에 자리 잡지는 못했다.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 판결에서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서 “사용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후 같은 취지로 확정된 후속 판결이 많지 않다. 고용노동부도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교섭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2O18년 택배노조가 분류작업을 거부하는 이른바 ‘공짜노동 거부’ 파업을 했을 때 CJ대한통운이 제기한 손배 소송에선 택배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근거가 돼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됐다. 사측 청구를 모두 기각한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사용자성 여부를 따지는 법적 다툼을 이어가며 소송전을 되풀이하고 있다.

법원이 파업을 뭉뚱그려 ‘불법행위’로 규정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업 과정에서 일부 발생한 폭력이 파업의 정당성과는 무관할 수 있는데도 법원은 파업 자체를 불법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법원은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파업을 하지 않았어도 발생했을 손해까지 배상액에 넣는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29일 “파업 자체와 파업 중에 일어난 위법한 행위는 구분해야 하고, 그로부터 발생한 손해도 구분해 산정해야 한다”며 “파업은 합법적인 헌법상 권리의 행사이고 권리남용이 있을 경우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순서로 (손배 책임을) 따져야 하는데 지금 법원 판단은 거꾸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에 30억원 물린 KEC
부당노동행위 유죄 받아도
노조 배상액은 4400만원 그쳐

■ ‘30억’과 ‘5000만원’, 불공평한 책임 가리기

법원이 노동자에게 손배 책임을 물을 때 파업 및 점거에 이르게 된 사정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예컨대 사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아 발생하게 된 점거 농성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사측에도 책임이 있는데, 법원은 점거 농성 행위의 불법성만 따져 노동자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불법파견’이라는 사측의 중대한 책임 사유가 있었음에도 파업의 대가로 거액의 손해 배상액을 떠안았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2010년 대법원이 하청노동자 최병승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자 특별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나중에 불법파견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법원은 파업의 목적과 방식에 정당성이 없다며 ‘불법’ 딱지를 붙였다.

법원은 현대차가 교섭거부 등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고려해 노동자 측 배상 책임 비율을 60~70% 수준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청구액은 피해 일부에 불과하다”는 현대차 주장을 받아들여 청구액 대부분을 인용했다. 총 11건의 손배 청구액은 약 194억원, 법원에서 인정한 배상액(미확정 사건 포함)은 약 189억원으로 집계된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불법행위로 규정되곤 하는 전면적·배타적 점거일지라도 배경이 된 원인이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은 아닌지, 노조가 그전까지 합리적인 방법을 취해왔는지 사안별로 판단을 달리해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로 유죄를 받았는데도 노동자에게 손배 책임을 묻기도 한다. 2010년 공장점거를 이유로 회사로부터 301억원의 손배 소송을 당한 KEC 노동자들은 2016년 ‘30억원 배상’이란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형사재판에서 노조파괴 문건 작성 등 파업 과정에서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고, 사측은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손배 조정에 따른 급여 압류는 3년간 그대로 진행됐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사측은 얼마나 금전적 책임을 물을까. KEC 노조가 회사와 경영진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 결과는 법원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얼마나 관대한지 보여준다. 법원은 KEC 경영진에게 노조와해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노조에 400만원, 노동자 100여명에게 각각 약 4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데 그쳤다. 3년간 급여를 압류당한 이미옥씨(52)는 “회사의 노조 탄압을 시작으로 파업과 점거까지 이어졌다. 수백명이 퇴사하고 30억원을 갚았지만, 법은 그런 과정은 들여다보지 않는다”며 “노동자에게 묻는 책임은 가혹한 반면 사용자에게 묻는 책임은 관대한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기업이 주장하는 손배 액수
법원, 구체적 입증 요구 안 해

■ 손배 청구하는 기업이 믿는 구석

기업이 청구한 손해 배상액에 대해 법원이 꼼꼼한 입증을 요구하지 않는 점 역시 기업의 손배 소송을 부추긴다.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파업 기간 소요된 각종 고정비와 부대비용을 노조가 물어야 한다는 기업의 주장을 들어주고 있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010년 12월9일 파업을 해 55분간 공장이 멈췄다며 현대차는 노조를 상대로 5600만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 고정비 5000만원이 손해에 포함됐다. 1·2심 법원은 고정비에 대한 손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환송했다. 파업이 없었다면 올렸을 매출과 그 기간 동안 지출된 고정비를 모두 쟁의행위 손해로 판단한 1993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고정비에는 차임, 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이 포함됐다. 대우조선해양이 하루 매출 259억원 전부를 손실로 주장하고, CJ대한통운이 정수기 렌털비용부터 본사 건물의 차임까지 손해 산정에 포함시키는 배경이다.

판사 출신인 최우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법한 쟁의행위 중 지출된 고정비용의 배상에 관한 검토’ 논문에서 “대다수 제조기업이 재고를 보유하는 등 예측하기 곤란한 판매량 저하 위험에 대비하는 점을 감안하면 쟁의행위로 생산량이 떨어지더라도 판매량 저하까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생산량 저하가 판매량 저하로 이어진다는 개연성을 적용하면) 손배 범위를 기업 측에 유리하도록 지나치게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부풀린 배상액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기업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기업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거액의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반면 노동자는 재판을 거치는 동안 강하게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부품 회사 상신브레이크는 사측이 손배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한 사례이지만 노동자들은 길어진 재판으로 피해를 입었다. 회사는 2010년 파업을 이유로 노조 간부 5명을 상대로 10억원의 손배를 냈다. 법원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고, 파업으로 손해도 없었다고 판단됐다. 다만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노동자가 승소한 셈이다. 그러나 2017년 확정 판결 때까지 7년간 노동자들은 4억1000만원 상당을 가압류당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사측은 재판에서 한 번도 파업에 따른 손해를 입증한 적이 없었으나 주장만으로 재판이 3심까지 갔다”며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인정되지 않아도 사측은 재판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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