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학회는 뉴라이트인가

2013.06.08 16:16 입력 백철 기자

한국현대사학회 출신이 중심이 된 새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5월 31일 경향신문은 뉴라이트 인사들이 참여한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교학사)가 검정 심의를 통과했다고 최초로 보도했다. 이후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도 이 사실을 잇달아 기사화했다.

이 보도는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일각의 역사왜곡 시도와 맞물려 파장을 빚었다. 네티즌들은 이 교학사 교과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폄하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야권도 교학사의 새 교과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지난 2일 국회 정론관 논평에서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교과서의 일부 알려진 내용들은 경악할 수준”이라며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4·19 혁명은 ‘학생운동’으로 폄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학회 측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6월 3일 성명서를 통해 “한국현대사학회에 대한 모략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자신들과 뉴라이트는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학회 관계자들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인터넷에 돌고 있는 ‘역사왜곡’ 시도는 없었다며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를 최초 보도한 경향신문이 앞장서서 인터넷 상의 유언비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31일 한국현대사학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 주관한 ‘교과서문제를 생각한다’ 토론회에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검정심의 통과한 새 역사교과서 주도

한국현대사학회는 2009 교육과정 개정 논의가 한창이던 2011년 5월 20일 창립했다. 학회 측은 자신들과 뉴라이트 세력의 연계를 부정했지만, 한국현대사학회와 교과서포럼은 인적으로 상당히 겹친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은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존재하던 2008년 ‘한국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를 직접 펴내기도 했다. 또한 한국현대사학회는 지난 2011년 7월 4일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국사편찬위원회에 건의한 바 있다. 국사편찬위가 이 건의를 받아들였고, 현재 한국사 집필 기준에는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이 들어가 있다

한국현대사학회 측의 주장대로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인 권희영 학회장(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한국근대사 전공)은 뉴라이트라고 보기 어렵다. 권 교수는 2006년 말 뉴라이트싱크넷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한 적은 있지만, 이후 교과서포럼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다른 뉴라이트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도 없다.

하지만 권 교수와 더불어 교학사 교과서의 필자로 참여한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교과서포럼 운영위원을 지낸 바 있다. 또한 이 교수는 뉴라이트 교육운동 시민단체인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사학회는 성명서에서 자신들을 ‘뉴라이트 계열’로 소개한 경향신문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명희 교수 외에도 한국현대사학회 임원진에 이름을 올린 뉴라이트 인사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를 감수한 차상철 충남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현대사학회 이사로 나온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집필자 중 한 명인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현대사학회 경제경영분야 비상임부회장이다. 이외에도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 주익종 서울신용평가정보 이사, 안양옥 교총 회장,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등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학회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가 나간 5월 31일에 한국현대사학회-아산정책연구원 공동주관, 조선일보 후원의 ‘교과서문제를 생각한다’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사회자를 맡은 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교과서포럼 집필진이었다. 또한 개회사를 맡은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감수를 맡은 바 있다.

한국현대사학회 측도 앞서 언급한 성명서에서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 중에) 대안교과서(집필)에 참여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면서도 “한국현대사학회에 개인적으로 뉴라이트에 참여했던 사람이 있기는 하다”고 밝힌 바 있다.

임원진에 뉴라이트 인사 적지 않아

강규형 교수는 자신이 한때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한국현대사학회를 뉴라이트로 몰아가는 것은 빗나간 시각”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나만 해도 한때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했고 현재도 여운형·조봉암 등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존경하는 사람”이라며 “나는 뉴라이트 출신이지만 학회 안에 뉴라이트에 굉장히 비판적인 학자도 있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학회가 2011년 출범했을 당시 여러 언론은 이 학회와 뉴라이트의 관계를 집중 보도했다. 또한 한국현대사학회에 역사 전공자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과서문제를 생각한다’ 학술회의 발표자는 전원 역사 전공자로 채워졌다.

한국현대사학회 관계자들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이명희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경향신문에서 선입견으로 취재하는 것 같다. 지금은 경향신문 측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학회 대외협력위원장인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에서 우리 학회에 역사학자가 적고 뉴라이트가 많은 것처럼 썼는데, 5월 31일 학술회의에서도 역사학 박사들이 나와서 토론하지 않았냐”며 “(역사학자가 적다는) 경향신문의 보도는 반론보도감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역사왜곡을 했다는 식으로 보도한 다른 매체의 기사들은 정정보도, 민사소송감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일정 부분 이유 있는 항변이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는 검정을 최종 통과하기 전까지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교학사 교과서가 일제 강점기 동안 한반도가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긍정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의심한다. 하지만 최신 역사 교육과정 집필기준은 “일제의 식민통치 방식과 경제수탈 정책의 내용을 파악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할 수가 없다. 4·19 역시 집필 기준에 ‘4·19 혁명’으로 쓰도록 명시돼 있다.

교학사 교과서의 모체로 의심받는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에서도 명백한 역사왜곡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도 5·16은 쿠데타로,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소개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널리 퍼진 ‘김구 테러리스트’ 부분도 마찬가지다. 대안교과서의 129페이지는 백범 김구를 묘사하면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 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백범 전문가인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그런(항일 테러활동) 표현은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백범일지에도 백범 스스로 ‘테로활동’을 했다고 썼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하지만 정확히 하려면 백범이 말한 ‘테로’의 맥락을 좀 더 써야 한다”며 “백범은 광복군과 같은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원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불가피하게 ‘테로’를 한 것으로, ‘테로’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 않았다. 백범의 ‘테로’와 테러활동 자체가 목적인 지금의 테러리즘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인 강규형 교수도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왜곡설’을 일축했다. 강 교수는 “5·16이 당연히 군사 쿠데타지 어떻게 혁명이 될 수 있으며, 5·18이 어떻게 폭동이 될 수 있느냐”며 “집필기준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따라 교과서를 만드는 것인데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현대사학회에 대한 주요한 비판 중 하나는 역사 전공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학회에서 공개한 주요 인사 61명 중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는 8명에 불과하며, 동서양사를 포함한 역사 전공자도 세 명 중 한 명꼴인 19명이다.

한국 현대사 ‘1호 박사’로 알려진 도진순 교수는 현재 한국현대사학회와 무관한 인사다. 도 교수는 “엄격하게 현대사를 꼭 전공자만 연구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국문학에서도 현대 국문학사를 연구할 수 있고, 다른 사회과학 분야도 정치사, 경제사 등이 있는 것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현대사를 다루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진보적인 학자들은 한국현대사학회 자체가 오히려 우편향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5월 31일 현대사학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뉴라이트가 교과서를 뒤집으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거 사실이다”(이인호 현대사학회 상임고문) “스탈린·김일성·박헌영이 공유하는 인식이 역사교과서 서술의 기본 프레임”(권희영 현대사학회장) “(독립운동에서) 공산주의 운동, 무장독립투쟁, 의혈투쟁이 과대포장돼 있다”(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소 연구교수)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진보성향의 역사학자로 꼽히는 주진오 상명대 역사컨텐츠학과 교수는 “이명희 교수가 최근 CBS 인터뷰에서 기존 한국사 교과서가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의 양분법으로 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일제 하에서의 현대적인 변화를 강조하자는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이 교수가 민주화운동의 서술 비중이 너무 크다고 했는데 반대로 독재시대의 경제성장, 반공논리를 더 내세우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08년 10월 이명희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현 한국현대사학회 연구위원장)가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자신들 신우파 단체라 부르는 것에 발끈”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주 교수는 “당연하다”며 “하지만 현대사학회 쪽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본인들의 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마찬가지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을 좌편향, 김일성·박헌영 교과서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검정을 거친 교과서인데 우편향은 몰라도 어떻게 좌편향이 가능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교육학 박사인 권재원 풍성중 교사도 미디어오늘의 기고글을 통해 “뉴라이트는 어떤 단체나 기관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경향성을 말하는 것”이라며 “그들(한국현대사학회)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체 앞에 거침없이 좌파라 불러왔다. (중략) 이들은 남의 단체, 남의 학설에는 멋대로 이름을 붙이면서 남이 자신들을 ‘신우파 단체’라고 부르는 것에는 발끈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2009년 교육과정 이전처럼 한국 근현대사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나오고 있다. 현재 역사 교육과정에 따르면 한국 근현대사 부분은 중학교 ‘역사’에서 전체 15단원 중 3단원에 불과하며,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도 6단원 중 2단원에만 편성돼 있다. 진보·보수학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북한 관련한 내용은 마지막 단원 중에서도 7분의 1 정도 서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9년 교육과정 이전까지는 중학교까지는 한국 전근대사를, 고등학교 때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게 되어 있었으며, 세계사는 별도 과목으로 가르쳤다.

현직 교사인 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근현대사가 역사 교과서에서 워낙 뒤쪽에 있다 보니 기말고사가 끝난 후 진도가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 교사들이 아예 안 가르치기도 한다”며 예전 교육과정처럼 고등학교에서는 근현대사 중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5·18을 예로 들며 “5·18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이었는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수업하려면 최소 1시간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사학회의 강규형 교수도 “예전에는 최근의 사건은 역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아예 근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다”며 “많은 논란이 있다보니 근현대사 교육을 줄인 것 같은데 사실 역사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근현대사다”라고 말했다.

<현대사학회 주도하는 권희영과 이명희는 누구>


5월 31일 현대사학회 학술회의에 참석한 이명희 교수 / 홍도은 기자

내년부터 사용될 예정인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은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인 권희영 교수와 이명희 교수가 집필했다. 권 교수와 이 교수는 현대사학회에서 각각 학회장과 연구위원장을 맡으며 학회를 주도하고 있다. 이 교과서의 전근대사 부분을 집필한 다른 4명의 필진은 현직 교사들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과 학회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두 사람 중 이명희 교수는 ‘뉴라이트’라 할 만한 활동을 했다. 1960년생인 이 교수는 2005년 7월 1일 뉴라이트 교육운동 시민단체인 자유교육연합 창립에 참여해 상임대표직을 맡았다. 당시 이 교수와 함께 자유교육연합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이다. 2010년 이 교수가 자유경제원(원장 전원책)과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노무현 정부의 출범이 이 교수에게 모종의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전교조로부터 편향된 이념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균형을 되돌려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1998년 일본 쓰쿠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한동안 일본의 교육과정과 지역사 교육방법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이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교육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대안교과서를 지은 교과서포럼의 운영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한국현대사학회 대외협력위원장인 강규형 교수는 “저도 시대정신 편집위원이었으니 뉴라이트이고, 이명희 교수도 뉴라이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학회 전체적으로는 뉴라이트가 아닌 분들이 더 많다”며 “(학회 발기인인) 박효종 교수, 전상인 교수 등도 교과서포럼에 참여했지만 현대사학회 활동은 전혀 안 한다”고 말했다.

학회장인 권희영 교수의 경우 한때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도 있는 인물이다. 1956년생인 권 교수는 1974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입학할 당시 서울대는 박정희 유신독재 철폐를 외치는 학생들의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권 교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학생운동가들이 긴급조치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감옥에 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권 교수도 1975년 서울대 인문대 운동권 학생들이 만든 미인가 학회 ‘문맥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가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5월 31일 현대사학회 학술회의에 참석한 권희영 교수 / 홍도은 기자

한 학회원은 “학생 때 권 교수는 레닌주의자를 표방한 굉장한 좌파 운동권이었다. 그래서 파리에서 유학할 때도 소련사를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권 교수의 주된 연구 주제는 소련 사회주의, 소련 내의 민족문제 등이었다.

한편 권 교수가 역사교육 문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시기는 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한 학회원은 “권 교수가 소련을 연구하던 주제 중에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가 있었다.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로 죽어나가는 것을 배우면서 좌파적인 성향을 버렸던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권 교수에게 직접 한국사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연락을 시도했지만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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