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에는 없는 남성혐오

2016.08.04 14:59 입력 2016.08.04 15:04 수정
현정

">" target=_blank> ‘메갈리아’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집니다. 작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티셔츠 사태와 웹툰 작가, 메갈리아와 미러링,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향이네에 보내왔습니다. 향이네는 기고를 1일부터 7회에 걸쳐 싣습니다. 토론을 위한 반론도 환영합니다. h2@khan.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target=_blank>

넥슨 게임 클로저스에서 김자연 성우의 목소리가 삭제되었다. 그가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에서 진행한, 페이스북 소송 비용 모금에 참여하고 받은 티셔츠를 SNS에 올렸기 때문이다. 웹툰 작가들을 비롯한 여러 창작자가 이것이 부당한 조처라고 목소리를 냈고, 사상검증과 연재 중단 같은 사태가 뒤따랐다. 이게 전부 “남성혐오 범죄 집단”인 메갈을 지지하는 이들의 밥줄을 그냥 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상검열이나 사적제재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 메갈리아4는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 메르스갤러리를 조상으로 두는 다른 커뮤니티들과 달리 미러링을 하지 않고 조롱과 막말을 금지하며 점잖기 그지 없는 말투로 여성주의를 말하는 페이지라는 점, 그리고 심지어 메갈리아도 인터넷 상의 막말 외에는 범죄 사실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메갈 식 미러링과 “남성혐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기타뉴스]메갈에는 없는 남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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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거울에 비추면, 원래 모습과 똑같고 좌우만 뒤바뀐 상이 보인다. 여성혐오를 “메갈 식 미러링”이라는 거울에 비추면, 남녀만 뒤바뀐 여성혐오가 보인다. 이것을 “남성혐오”로 부를 수는 없다. 애초에 남성혐오가 여성혐오의 거울상이 아니므로, 여성혐오를 미러링한다고 남성혐오가 되지는 않는다.

김치녀·된장녀는 왜 여성혐오일까? 여성을 싸잡아서? 그렇다면 남성을 싸잡는 김치남·씹치남·한남충은 남성혐오인가?

아니다. 김치녀·된장녀는 “사치스러운 여자”라는 오래된 여성혐오 담론을 재생산하는 무수한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 1970년대에도 고려대 남학생 40명이 이화여대 정문에서 사치향락을 중지하라는 “사치성배격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 이화가 짊어진 여성혐오의 무게, 된장여에서 김치녀까지) 이때 등장한 “당신의 낭비 속에 민족은 굶주린다”, “사치와 향락은 망국의 근원”이라는 플래카드 구호와, 이화여대생을 향한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어라”, “다방과 다과점으로 향하는 그대들의 발걸음을 서점으로 돌려라”, “귀부인과 같은 손가락으로 쌀을 씻어라”, “달랑거리는 핸드백을 내던지고 두툼한 책가방을 들어라”라는 요구는 2010년대에 “김치녀, 된장녀, 개념녀”를 외치는 여성혐오자들의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김치녀·된장녀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여성혐오의 표상으로서, 이미 존재하던 여성혐오 담론을 재생산·재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명품을 사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한국 여자”에서 “여자”를 “남자”로 바꾼다고 “사치스러운 남자”라는 남성혐오 담론이 “뿅!” 하고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김치남·씹치남·한남충은 심지어 “명품을 사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한국 남자”를 뜻하지도 않는다. “사치스러운 남자”라는 혐오 담론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갈리안들은 김치남·씹치남·한남충을 “여자를 강간하고, 때리거나 칼로 찔러 죽이고, 몰카를 찍고, 여자에게 염산을 붓는다”고 욕한다. “가사분담률은 꼴찌고, 데이트폭력·가정폭력을 저지른다”고 욕한다. 이 일반화는 남성혐오적인가? “김치남·씹치남·한남충”이 남성에 대한 어떤 혐오 담론을 어떻게 (재)생산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태생부터 폭력적이므로 여성보다 열등하고, 중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 같은 주장이 통용되기라도 하는가? 그렇지 않다. 강간과 살해, 몰카, 염산테러 등을 일방적으로 당하는 집단의 구성원이 가해자집단 구성원들에게 드러내는 반감과 분노를 “남성혐오”라고 부름으로써 여성혐오와 동격으로 놓을 수는 없다.

강간범, 몰카범, 염산테러범이 아닌 남성은 “가해집단 구성원”으로 싸잡히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아니다. 남자들은 스스로 무고하다 여기며 억울해 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만연한 강간문화가 남성의 여성 강간을 조장하고 있으니, 남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당신은 강간문화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몰카범죄의 만연을 부정하고 몰카범을 “나 같은 일반인과는 다른 미친놈 한둘”로 여기는 당신의 태도가 몰카범죄를 조장하며, 한국 남성의 낮은 가사분담률이나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광고, 만화, 게임 등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당신의 태도가 우리 사회의 여성억압적 구조를 떠받친다.

여성에게 ‘허벌XX, 갈색XX’ 등 그의 성기를 들먹이는 모욕을 하는 것은 왜 여성혐오일까? 남성에게 ‘실OO, 6.9, 소추소심’이라고 하는 것은 남성혐오발언일까?

허벌XX·갈색XX는 곧바로 걸레·창녀로 연결된다. 섹스를 많이 하면 허벌XX·갈색XX가 된다는 망상과, 섹스를 많이 했다는 것이 여자에게 모욕이라는 여성혐오적 믿음이 허벌XX·갈색XX가 비하어가 되게 한다. 창녀혐오라는 도구를 써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구속하고 통제해온 역사는 유구하며, 허벌XX·갈색XX를 풀어쓰면 “문란한 년”이다.

실OO·6.9는 걸레·‘창놈’과 연결되는가? 아니다. “뭐라고? OO가 작아서 잘 안 들려.” 같은 말이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구속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지니는가? 아니다. 저 말은 오히려 남성성 부재를 조롱한다. “남자답지 못한 놈”이라는 말이다. “소추소심”은 “대추대심”이라는 말도 낳았는데, “대추”(남자다움)와 “대심”(넓은 아량)을, “소추”(남자답지 못함)와 “소심”(쪼잔함)을 연관짓는 것은 메갈의 발명품도, 전유물도 아니다. 메갈은 “허벌XX”를 미러링하려다가, “남자새끼가 쪼잔하게…”라는 흔한 발화를 “너는 쪼잔한 걸 보니 OO가 작구나(남자답지 못하구나).”라는 형태로 재생산했을 뿐이다. “대추”로 대표되는 남성성은 메갈에서(조차)도 긍정적인 가치로 여겨진다. 아량이 큰 OO에서 나온다는 생각은 남근주의나 남성성 찬양에 가깝지 않은가? 남성혐오 커뮤니티였다면 “OO는 없는 것이 좋고, 있다면 작을수록 덜 싫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여성숭배도 여성혐오라는데, 남성숭배는 남성혐오가 아닌가? 아니다. 여성성에 대한 숭배가 거의 항상 여성혐오적인 것과 달리, 남성성에 대한 숭배는 남성혐오적이기 어렵다. 여성숭배가 남자(=인간)와 다른, 타자(≠인간)에 대한 숭배인 것과 달리, 남성숭배는 타자화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은 거의 항상 보편인간으로서 숭앙받아 왔으며, 남성성은 인간 대접을 받으려면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가치였다.

미러링 잡지 ‘사심’ 창간호는 여성 납치’ ‘트렁크 시체 유기’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물의를 빚었던‘맥심’ 남성잡지를 거침없이 찢고 구겨버리는 여성을 표지 모델로 삼았다.

미러링 잡지 ‘사심’ 창간호는 여성 납치’ ‘트렁크 시체 유기’를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물의를 빚었던‘맥심’ 남성잡지를 거침없이 찢고 구겨버리는 여성을 표지 모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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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혐오는 여성혐오와 그 성격과 위치가 다르지만, 존재하지 않는 개념은 아니다. 여성혐오사회의 구성원이 운동전략으로 남성혐오를 채택하기도 하며, 실제 남성혐오자들도 있을 것이다. 여성혐오로 굴러가는 사회에서 전략적 남성혐오는 비판의 대상이지 금지나 처벌의 대상은 아니다. 사회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메갈이 미러링 전략을 사용한다길래, 나는 이들이 여성혐오를 남성혐오로 되갚아줄 줄 알았다. “남성호르몬 유전자조작이 필요하다. 옥수수도 유전자조작이 가능한데, 남자는 더 쉬울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메갈 식 미러링에서 나는 남성혐오를 거의 읽을 수 없었다. 각종 혐오가 넘쳐 흘렀던 공간이었는데도 그렇다. 거의 모든 글이 여성혐오에 관해 말하고 있었으며, 미러링 글을 보면 얇디얇은 남녀반전 필터 뒤로 정제되지 않은 여성혐오가 들여다 보였다. 미러링 과정에서 거르지 못한 성소수자혐오와 인종혐오, 장애인혐오도 보였으며, 메갈리안 자신들이 가진 혐오도 없지 않았다. 메갈은 한국사회 안에 존재하는 곳이고, 우리 모두 여성이나 성소수자, 타민족·인종, 장애인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곳에서 자라며 저 혐오들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자신 안의 여성혐오에 대한 여성주의자의 고백이 흔한 사회다.

여성혐오가 이렇게 디폴트인 것, 무의식적인 것, 자연화된 것인 데 비해 남성혐오는 전략적인 것, 의식적인 것, 인공적인 것이다. 아직 남성상위시대를 사는 우리가 남성혐오라는 전략을 채택하려면, 존재하지 않는 혐오를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내야 한다. 디폴트인 여성혐오와 달리 남성혐오는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 메갈리안들이 여성혐오를 미러링함으로써 남성혐오를 생산하고 행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전략적 남성혐오를 채택했다면, 그 부분에서는 실패한 것 같다. 여성혐오를 드러내고, 시스헤테로여성의 욕망을 큰 소리로 내뱉는 데는 성공했으나, 메갈은 남성혐오를 만들어내고 행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메갈은 남성혐오집단”이라는 비난이 더 쓰다. 남성혐오에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남성혐오”라는 비난을 받는 미러링과, 실제로 존재하는데도 “혐오 아닌데요?”라는 소리나 듣는 여성혐오를 비교하지 않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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