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웃자고 한 얘기, 죽자고 달려들지 맙시다

2017.11.19 20:59 입력 2017.11.19 21:03 수정
이소영 |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유머의 정치

사회적 금기들을 깨뜨리는 웃음, 유머가 갖는 정치성의 핵심은 함께 웃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에 있다. 권력은 대중의 이 웃음에서 정치성을 파악했고, 그리하여 대중의 웃음조차 ‘건전사회’를 위해 통제하거나, ‘명랑사회’를 위해 동원·관리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사진은 한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됐던 정치풍자 코미디 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

사회적 금기들을 깨뜨리는 웃음, 유머가 갖는 정치성의 핵심은 함께 웃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에 있다. 권력은 대중의 이 웃음에서 정치성을 파악했고, 그리하여 대중의 웃음조차 ‘건전사회’를 위해 통제하거나, ‘명랑사회’를 위해 동원·관리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사진은 한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됐던 정치풍자 코미디 프로그램 <여의도 텔레토비>.

여러 해 전 겨울, 군부대 제설작업을 소재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한 ‘레 밀리터리블’이 유튜브 조회수 500만을 넘기면서 큰 화제가 됐다. 원작의 주연배우 러셀 크로가 이를 언급하고, 프랑스의 한 라디오방송도 ‘화제’로 다뤘다는 기사에 필자는 뒤늦게 영상을 찾아보았다. 원작에서의 ‘죄수들의 합창’을 눈 치우는 장병들의 합창으로 바꾼 설정이나 절묘하게 개작된 노랫말에 연이어 웃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러셀 크로가 여러 작품에서 군인 배역을 맡아봤을지라도 예비군훈련이나 ‘군대 가서 삽질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갖는 특유의 맥락이나 그것이 유발하는 웃음은 알지 못할 것이라고…. 비록 서사의 기저에 흐르는 체제순응적 메시지는 불편했지만, 웃음의 코드들을 공유하는 어떤 ‘우리’ 안에 속해 있음을 체감했던 경험이다.

■ 건전웃음 vs 저질웃음 : 통제의 정치

유머가 갖는 정치성의 핵심은 이렇듯 함께 웃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일 것이다. 웃음의 코드들은 당대 문화와 정치에 대해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정들을 드러내 보인다. 이때 웃음은 동음이의어나 특정한 발음, 은유적·중의적 표현 등 언어의 빈틈 자체에서 비롯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권위를 하찮게 만들거나 신성한 가치의 모독 등 공동체의 금기를 깨뜨리는 쾌감에서 기인한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정치권력이나 도덕적 규율에서부터 혼인·제례의 관습이나 논리적 사유방식에 이르기까지 사회 안에서 억압돼온 충동들이 농담을 통해 어떻게 분출되는지 보여줬다. 농담은 그 코드를 알아듣고 함께 웃는 이들로 하여금 경계를 해제시켜 일순간 한편이 되도록 만든다.

그런 견지에서 권력이 대중의 웃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규제·관리하고자 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다. 특히 “명랑사회 구현”이라는 명제가 사회문화를 규율하던 발전주의시기에, 대중적 전파력이 큰 라디오·TV 코미디 프로그램들에는 종종 ‘씩씩하고 활기 넘치는 건전문화를 발전시켜가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저질프로’라는 딱지가 붙곤 했다. “조잡한 말들의 나열과 불순한 상상력의 동원” “저속하고 무가치한 언어” “쓴웃음을 자아내는 애드리브” 등이 이른바 저질 코미디의 세부표지들이었다.

방송윤리위원회에서 1966~1971년의 ‘연예오락방송저촉사항’을 형태별·내용별로 분석한 것을 보면, 총 저촉건수 319건 가운데 코미디가 125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적된 내용은 언어순화에 유해한 표현(59), 불쾌감을 주는 표현(44), 인간생명체를 모독하거나 인간을 비하한 표현(35), 성적호기심을 유발하는 표현(34), 외설적인 소재 및 표현(33) 등이었다. “저속의 낙인이 찍힌 코미디언을 퇴출시키고 코미디 프로를 일시적으로 정지”할 것을 요청하거나(서울신문, 1966·9·15), “퇴폐풍조를 배격하고 소비성향을 지양하며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공서양속을 해치는 코미디 방영이 재고되어야 함을 주장하는(동아일보, 1971·12·13) 등 웃음의 ‘저급성’을 비판하는 기사들도 주기적으로 확인된다.

1977년에는 3대 TV 방송국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기로 결의한 일도 있었다. 이에 코미디언 구봉서가 대통령을 마주한 자리에서 “택시가 사람 하나 치었다고 택시를 없애냐”며 재고를 간청하고, 얼마 후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부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코미디 전체가 방송에서 강제 퇴출당하는 일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코미디 프로가 전근대적 작태로 억지웃음을 자아냈지만 다른 (교양)프로들을 통해서도 건전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던 당시 문공부 관계자의 변은 새 시대의 ‘건전’웃음과 구시대적 ‘저질’웃음의 이분법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이항대립적 사유는 코미디 프로그램 폐지안에 반발하던 사회인사들의 목소리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사람이 사는 데 밝은 웃음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건전한 코미디 프로는 꼭 있어야 한다. 코미디가 저질이라 해서 질을 높이려는 노력 없이 프로를 없앤다는 것은 졸렬한 처사다. 우리는 언제쯤 외국의 <보브 호프 쇼>와 같은 재미있고도 유익한 코미디 프로를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코미디 프로를 없앤 것은 무리한 일이다. 연기자, 제작실무자, 방송국이 합세해서 체질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해줬어야 할 것이다.”(동아일보, 1977·10·27).

이렇듯 대중의 웃음은 건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통제돼야 할 대상이자 명랑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동원되고 관리돼야 할 대상으로 간주됐다. 여기서 저급함을 판단하는 잣대는 다분히 자의적이어서, 권력자에 대한 풍자에 ‘불온함’ ‘괘씸함’ 대신에 ‘저질’이라는 수사를 붙여 규제와 단속을 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코미디언 이주일의 머리숱을 빗댄 코미디나 오리궁둥이 춤이 표면적으로는 ‘대통령의 외모에 대한 모욕’만이 아니라 “건전한 국민정서에 역행하며 어린이들에게도 위해하다”는 사유로 방송출연이 정지된 경우가 그러하다.

[금지를 금지하라](25)웃자고 한 얘기, 죽자고 달려들지 맙시다

1970~1980년대의 권력은 웃음도 ‘건전 웃음’과 ‘저질 웃음’으로 나눠 통제·관리했다. 또한 자의적 기준으로 ‘퇴폐’라는 낙인을 찍어 한국 사회에 갖가지 금기를 만들기도 했다.

1970~1980년대의 권력은 웃음도 ‘건전 웃음’과 ‘저질 웃음’으로 나눠 통제·관리했다. 또한 자의적 기준으로 ‘퇴폐’라는 낙인을 찍어 한국 사회에 갖가지 금기를 만들기도 했다.

■ ‘웃는 것을 허하노라’: 관리의 정치

체제가 대중의 ‘건전’한 웃음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려 한 사례 중 하나가 1차 세계대전 무렵 독일군에 유포된 이른바 ‘독일식 유머’다. 사회문제에 농담을 던질 때, ‘제대로 된 독일인’이라면 프랑스적인 혹은 유대인적인 유머처럼 상대방에게 상처 입히는 어법이 아니라 화합과 진실성을 지향하는 어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역사학자 케젤은 ‘한스 병사와 프란츠 병사의 참호 만담 시리즈’를 예로 들어, 당시 군사당국이 어떻게 병사공동체의 웃음을 관리하고자 했는지 보여줬다. 두 병사가 질 낮은 배급식량에 불평하며 “(음식 맛이 형편없는) 영국이 전쟁에 이기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겠어”, 딱딱하게 굳은 빵을 자르며 “부수기 어렵기가 꼭 독일 전선 같군”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나타나듯, 전시유머는 전시동원과 전투 의무 자체를 웃음거리로 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적극 유포됐다는 것이다.

대중적 웃음에 대한 관리는 권력이 스스로 희화화의 대상이 됨을 용인하거나, 더 나아가 이를 홍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른바 보통사람의 시대를 맞아 자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공식적으로 ‘윤허’한 일화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본인을 소재로 한 YS시리즈를 듣고 파안대소한 일화 또한 미담의 형태로 널리 유포됐다. 이른바 민주화 시기에는 정치풍자 콩트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노태우 집권 초기에 출간된 <대통령 아저씨 그게 아니에요> <영부인 마님 정말 너무해요> <각하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등이나 김영삼 집권 초기의 <YS는 못말려> <YS는 끝내줘> <YS는 대단해> 등이다.

물론 이런 기획이 대중의 웃음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할 수 있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앞서 언급한 ‘참호 만담 시리즈’의 경우, 전세가 기울면서 재빠르게 ‘독일 유머란 바로 독일인에게는 유머가 없다’는 자조적 냉소에 입각한 패러디물로 변형됐다고 한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초기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다수의 정치풍자 콩트물들 또한 ‘정상궤도를 이탈한 개인을 피상적으로 부각시켜 웃음을 자아냄으로써 정작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희석시킨다’는 비판의 과녁이 됐다. ‘건전한’ 유머문화를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심어 넣으려 할수록 도리어 역방향으로 패러디화될 여지가 높아지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적 거리나 현실적인 긴장감이 부재한, 미담 형태의 개그 또한 웃음공동체 내에서 대통령이 킥복싱 시범을 보이는 화보기사에 “지랄 옆차기 하네”라는 베플이 달리는 식으로 전유될 수 있다. 공동체의 웃음은 이렇듯 규제의 그물망에도, 조종의 기획에도 온전하게 포획되지 않으며, 지배체제의 허울을 조각내 보여주는 동시에 그 공동체가 찢겨지지 않도록 이어붙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웃을 자유’에서 ‘못 웃게 할 권리’로

한편 웃음의 이러한 집단적 속성은, ‘(누군가와) 같이 웃는(laugh with)’이라는 포섭의 측면을 갖는 동시에 ‘(누군가를) 두고 웃는(laugh at)’ 배제와 폄하의 기제가 되기도 한다. 농담은 보다 직접적인 괴롭힘이나 차별이 법에 의해 제약받는 상황에서 특정한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적대감정을 우회적으로 표명하는 한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머는 공동체성을 상기시키고 소속감을 구축하는 동시에 우리의 안과 바깥의 경계선을 긋는다고 할 수 있다. 한바탕 웃음으로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웃는 우리’와 ‘웃지 못하는 너희’ 사이에 경계선이 그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근래에 ‘일베’로 통칭되는 악의적인 유머공동체의 혐오표현과 극우의 역사부정에 대한 사법적인 규제논의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강자의 권위에 대한 저항을 표상하는 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그러한 저항을 탄압하는 검열권력을 표상했던 기존의 논의구도는 급격한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다. 집단적 웃음의 대상이 강자가 아닌 약자인 상황에서 인권법적인 관심이 ‘웃을 자유’로부터 ‘웃지 말아달라고 할 권리’로 옮아가는 이러한 양상 또한 주목해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리즈 끝>

■연재를 마치며…

‘지금, 여기’에서 금지 또는 금기시되는 여러 가지 것들로부터 출발해 그 역사와 문화·정치의 맥락을 짚어보려는 의도로 기획한 <우리 안의 블랙리스트-금지를 금지하라> 연재가 25회로 막을 내린다.

근·현대문학사, 법사회사, 문화연구 등 서로 다른 전공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집필진은 단지 금지된 것들의 합법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차원을 넘어 정상·비정상과 건전·불온을 가르는 잣대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떠한 연원을 갖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노조금지와 금서·검열, 반공주의 등 한국 사회의 치명적인 정치적 금압의 쟁점들과 장애인 이동권이나 동성애 혼인 등 인권 문제, 더불어 복장이나 취미, 권위, 공식기억에 가려진 ‘다른 기억’과 같은 미시적인 소재들도 다뤘다.

아울러 문신이나 도박, 대마와 낙태 등 제도적으로 금지된 대상들과 함께 부랑인과 청소년처럼 주체성을 배제당한 주체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아직 다루지 못하고 남겨둔 주제들 또한 많다. 가령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우리’라는 마음의 단단한 울타리를 문제화하거나 ‘죽을 권리’처럼 아직 생성 중인 권리들을 가늠하고 쟁론하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꼭 필요할 것이다. 이번 연재가 집필진에게 그러했듯 독자들에게도 일상의 금기들을 세심히 살피며 ‘자유·평등의 제도적 총량뿐 아니라 개인적 분량도 늘려가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한다.

▶필자 이소영

[금지를 금지하라](25)웃자고 한 얘기, 죽자고 달려들지 맙시다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다. 법학을 전공했고, 법사회사와 법문학·법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법을 통한 과거청산’ 문제와 한국 발전주의 시기 규제·단속의 법사회사가 근래 연구관심이다. 주요 논문으로 <‘건전사회’와 그 적들: 1960-80년대 부랑인 단속의 생명정치> <법문학비평과 사회적 기억의 구성: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법을 통한 과거청산의 아포리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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