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1일 ‘국가부도의 날’ 대통령은 뭘 했나

2019.01.21 00:18 입력 2019.01.21 14:34 수정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7년 ‘국가부도의 날’,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나

[오래 전 ‘이날’]1월21일 ‘국가부도의 날’ 대통령은 뭘 했나

1997년 한국의 주요 대기업이던 한보그룹 부도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어 삼미그룹, 진로그룹,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졌습니다. 한국에 투자했던 외국 기업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으로 철수하거나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영향으로 외환보유고는 바닥나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대기업과 연관된 중소기업들은 줄도산했습니다. 대규모 실직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자살률이 치솟았습니다. 말 그대로 ‘국가부도의 날’이었습니다. 김영삼 정권은 1997년 11월21일 ‘국가 부도’를 인정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달러를 요청했죠. 대신 IMF의 요구대로 경제정책을 펴겠다는 각서를 제출했습니다.

20년 전 오늘(21일) 경향신문에서는 국가부도 시절 대통령과 경제 당국의 책임 방기를 지적하는 청문회 상황이 전해졌습니다.

1999년 1월20일 한국은행에 대한 경제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외환위기가 벌어진 지 약 2년 만입니다. 청문회는 외환위기 당시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이날 한국은행 보고에는 1997년 말 경제 관료들이 벼랑 끝에 몰린 외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힌 정황이 상세히 설명돼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 어디에도 김 전 대통령이 등장하는 부분은 없었는데요. 신문은 “서류 보고상 국정운영의 책임자인 YS(김 전 대통령)는 ‘뇌사상태’에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김 전 대통령은 국가가 부도가 날지 모른다는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언제 알았을까요. 전철환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보고서에서 1997년 11월10일 이경식 전 한은 총재가 김 전 대통령과 직접 전화를 통해 처음으로 외환사정의 긴급성과 IMF 지원의 불가피성을 보고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이미 그 2주일 전부터 신규차입이 전면 중단되고 외환시장의 거래마저 중단되자 ‘도저히 우리 자력으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 하에 10월28일과 11월7일, 11월9일 세 차례나 청와대에 IMF와의 협의 필요성을 건의했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보고가 차단돼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돼있었습니다.

이와 관련 전 총재는 끝내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은 강경식 당시 경제 부총리,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보고를 차단했을 것으로 추정했죠.

특히 강 전 부총리가 IMF구제금융 신청 사실이 집권당 대선후보에게 미칠 악영향을 의식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은폐하고 김 전 대통령에게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특위 위원들은 ‘만약 그 2주일 사이에 김 전 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실상을 파악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했다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만시지탄을 표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부도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기까지 ‘인(人)의 장막’에 가로막혀 전혀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던 김 전 대통령에게도 문제는 있었다는 것이 특위 위원들의 시각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는데요. 국민회의 장성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그때까지도 ‘IMF행’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며 김 전 대통령의 위기대응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해 11월10일 홍재형 전 부총리부터 ‘IMF행은 국가가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뜻’이라는 말을 듣고나서부터였다는 것이었는데요. 김 전 대통령은 그날 밤 9시 부랴부랴 이 전 한은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외환실태 점검에 나섰으나 상황은 이미 악화될대로 악화되고 난 뒤였다고 신문은 보도했습니다.

만일 김 전 대통령이 심각성을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경제 관료들이 김 전 대통령에게 정확하고 신속히 상황을 보고했다면 한국 사회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더라도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약했기에 외환위기는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이었을까요.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