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9일 자매는 용감했지만···

2019.07.29 00:01 입력 2019.07.29 00:31 수정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이경숙, 이숙자 전 총장 자매

이경숙, 이숙자 전 총장 자매

■1999년 7월29일 두 자매 나란히 대학총장에

형제 자매 중 누군가가 뛰어나다는 건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하지만 학업이나 예술적 재능이 골고루 나눠진 집도 있죠. 일곱 남매 중 세 사람이 세계적 클래식 음악가가 되었고, 나머지도 교수·의사 등으로 성장한 정트리오(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가족처럼요.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나란히 대학총장으로 일하게 된 자매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성신여대 신임 총장으로 선임된 이숙자 교수는 당시 6년째 숙명여대를 이끌고 있던 이경숙 총장의 동생이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자매는 거의 같은 길을 걸어 총장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2남4녀 중 다섯째와 여섯째로 다섯 살 터울로 태어난 두 사람은 숙대 정외과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거쳤습니다. 언니가 열어놓은 길을 동생이 따라간 셈이죠.

언니는 76년에 숙대 정외과 교수가 됐고, 94년에 13대 총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동생은 82년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에 임용돼 99년에 총장으로 선임됐습니다. 동생으로서 교수는 언니보다 1살 늦게, 총장은 같은 나이에 된 셈인데요.

자매 총장은 이들이 국내 처음으로 기록됐습니다. 형제 총장으로는 고 김호길(포항공대 총장)·영길(한동대 총장) 형제가 먼저 기록을 세웠습니다.

1999년 7월29일 경향신문 6면

1999년 7월29일 경향신문 6면

이전까지는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총장이 된 이후의 길은 조금 달라집니다.

동생인 이숙자 총장은 초장부터 성신여대 교수들의 강한 반발을 마주하게 됩니다. 성신여대는 90년부터 교수들 대상으로 총장직선제를 실시해왔고, 그 최다 득표자를 이사회가 임명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숙자 총장은 총장선거 차점자였고, 이사회가 재단의 입맛대로 사람을 골랐다는 비판이 나온 겁니다.

교수들은 캠퍼스에 ‘총장 사퇴하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장기 천막농성을 합니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과 총동문회도 가세합니다. 학내 분규는 1년 넘게 이어졌고, 전투경찰이 교내로 투입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이사회는 결국 이 총장의 해임을 의결하고 면직처분합니다. 학내 분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죠. 퇴진을 요구해온 교수평의회와 학생들은 이 결정을 환영했지만 이 총장 측은 “교수총회를 열어 다시 총장의 신임여부를 물으라는 이사회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면직처분한 것은 명백한 교권침해”라고 반발합니다.

이 총장 측은 학교법인을 상대로 면직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냈고 결국 ‘해임처분 무효’ 판결을 받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총장 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학생들도 교수들도 이사회도 등을 돌린 상황이 쉽지만은 않았겠죠.

언니인 이경숙 전 총장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4년간 순탄한 총장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내 행사에서 활약해 ‘춤추는 총장’이라는 별명도 얻었죠. 총장으로서의 성공적 업무는 소망교회 인맥을 발판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끝나게 됐는데요.

인수위원장 시절엔 구설에도 종종 올랐습니다. 대통령에게 '굿모닝'으로 인사한다거나, ‘프레스 프렌들리’를 외치고서 ‘프레스 후렌들리’라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남다른 ‘영어 사랑’을 표시해왔는데요.

그 중 대표사례는 '오륀지'였습니다. “미국에서 ‘오렌지’ 달라고 말했더니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오륀지 이러니깐 “아, 오륀지!” 하면서 가져오더라”라고 했던 발언이죠. 자신의 유학시절 경험과 함께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는데요.

이 발언은 이명박 정권의 영어 공교육 추진 정책과 맞물려 ‘아륀지 정권’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이후 “공청회 자리에서 어떤 학부모가 영어 발음 표기를 원어민에 가깝게 할 수 없냐는 질문에 동조해 준 내용이었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한 집에서 두 명의 대학총장을 배출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떠나는 뒷모습까지 존경받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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