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카페를 식당 삼고, 공원을 마당 삼으니…집을 넘어 ‘서식지’가 되다

2020.01.10 17:00 입력 2020.01.10 17:14 수정
이인규

(3) 1인 공동체를 위한 주거 실험

1인 가구의 집은 어떤 형태일까? 고시원·옥탑방·반지하·원룸? 비좁은 공간에 빼곡히 몰아넣은 싱크대·냉장고·세탁기…
청년들이 결혼하기까지 한시적으로 머무르는 ‘과정적 주거’로 바라보던 1인 주거, 이제는 ‘완성형 주거’로 바라봐야 한다
마음을 둘 수 있는 동네 가게나 산책할 수 있는 길을 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면 좁은 공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개방감 있는 설계를 더해 답답함을 느끼기 힘든 ‘청운광산’. 품질 좋은 공유주택을 위한 과감한 시도가 돋보인다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완공한 소규모 공동체 사회주택 ‘청운광산’은 집이 가진 작은 공간의 한계를 근처 공원과 동네의 가게가 보완해주면서 거주자에게 ‘충분한 서식지’를 만들어낸 사례다. ⓒSTUDIO texture on texture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완공한 소규모 공동체 사회주택 ‘청운광산’은 집이 가진 작은 공간의 한계를 근처 공원과 동네의 가게가 보완해주면서 거주자에게 ‘충분한 서식지’를 만들어낸 사례다. ⓒSTUDIO texture on texture

■ 1인 가구의 시대

1인 가구의 증가는 이제 거스르지 못하는 흐름이 되었다. 혼밥, 혼술 등을 즐기며 자발적으로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는 ‘혼족’이 늘어나고 있고,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비혼’의 증가도 눈에 띄는 큰 변화다. 2019년 연말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이제 1인 가구가 전국적으로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 되었다고 한다. 1인 가구(598만7000가구, 29.8%)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596만2000가구, 29.6%)의 수를 앞지른 것이다. 그동안 1인 주거는 청년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 이전에 한시적으로 머무는 하숙집, 기숙사 등의 ‘과정적 주거’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1인 가구 자체를 ‘완성형’의 단위로 바라봐야 한다. 가구의 구성은 이토록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집’은 이러한 흐름을 얼마나 따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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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광산의 공유주방은 한 군데지만 1층 레스토랑까지 ‘공유공간’이 되면서 입주자의 영역이 넓어졌다(위). 공원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 설계 덕분에 작은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아래).  ⓒMo studio 양성모

청운광산의 공유주방은 한 군데지만 1층 레스토랑까지 ‘공유공간’이 되면서 입주자의 영역이 넓어졌다(위). 공원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 설계 덕분에 작은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아래). ⓒMo studio 양성모

1인 가구의 주거 실태를 검색해보면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 방 쪼개기 등 열악한 주거환경을 우려하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아직 자본을 쌓지 못한 청년기에 자의 혹은 타의로 독립한 이들이라면 이러한 열악한 공간을 당연히 겪고 지나가야 하는 관문처럼 여기고 있다. 이러한 동세대의 문제를 ‘스스로 조금씩 바꿔보자’라는 생각에서 ‘서울소셜스탠다드’를 설립한 김하나 대표를 만나 1인 주거의 변화와 그동안 그들이 진행한 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서울소셜스탠다드를 시작하던 2012년 즈음만 해도, 1인 가구의 주거 문제를 그저 일시적인 사회현상 정도로 여기거나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청년들의 주거 실태가 현격히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사회 각계에서 더 나은 1인 주거를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으니 그래도 짧은 시간에 꽤 많은 것이 바뀐 듯하다. 서울소셜스탠다드(공동대표 김하나·김민철 www.3siot.org)는 도시와 건축 관련 리서치부터 공유주택 개발, 시행, 운영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기업으로 정림건축문화재단의 ‘통의동집’ 개발 및 위탁관리 진행, ‘어쩌다집@연남’, 신림동의 ‘소담소담’에 이어 최근 궁정동에 개장한 ‘청운광산’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 초1인의 시대, 변화되는 삶의 방식

김하나 대표는 시대의 변화 흐름을 ‘초1인의 시대’로 설명했다. 기술의 발달로 1인의 생산성이 극대화되면서 노동의 방식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누군가와 연대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는 줄어들고, 혼자서 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고용의 형태나 근무지도 고정적이기보다는 변동적이며, 노동 공간과 시간 또한 유연해졌다. 이에 따라 점점 일터와 삶터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한편 전통적인 집의 기능도 집 바깥에 생겨난 많은 대체지로 옮겨가고 있다. ‘씻는 행위’가 집보다 헬스장이나 수영장에서 더 자주 일어나기도 하고,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식 대체품) 사업이 발전하면서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기보다는 사먹거나 외부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키친리스(kitchen-less)’의 삶이 익숙해지고 있다. 실제로 공유주택에서는 새벽에 식자재와 반조리 식품을 배송해주는 업체의 택배 상자가 높이 쌓이고, 집을 보러 올 때도 (빌트인 냉장고의) 냉동실 크기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에서 이러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청운광산은 좋은 품질의 임대주택을 목표로 국내에서 잘 사용되지 않던 ‘조립식 목구조’ 공법을 도입했다.  ⓒMo studio 양성모

청운광산은 좋은 품질의 임대주택을 목표로 국내에서 잘 사용되지 않던 ‘조립식 목구조’ 공법을 도입했다. ⓒMo studio 양성모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존의 인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유주거를 바라보게 된다. 청년들이 제한된 경제력 때문에 ‘마지못해’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관점이 아닌, 삶의 방식 자체가 변화함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삶의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인 가구가 주로 사는 전형적인 원룸은 비좁은 공간에 싱크대, 냉장고, 세탁기 등을 빼곡하게 넣어 삶터의 기능을 과도하게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눈에 모든 사생활이 노출되는 원룸의 공간 구조 때문에 요즘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일터로서의 공간 활용은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1인 청년 가구에는 어떤 공간이 필요할까?

■ ‘집’을 넘어서는 ‘서식지’의 개념

“모든 주거가 주택은 아니다.” 김하나 대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간이 기존 ‘주택’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운영했던 공유주택 ‘통의동집’의 입주자를 관찰하며 이 같은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통의동집’ 사람들은 지하에 있는 공용 주방으로 지인을 초대하며 누군가에게 맛있는 걸 만들어 대접하는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바로 앞에 있는 카페 MK2를 ‘우리집 거실’이라 부르기도 한다. 집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이야기할 땐, 집으로 향하던 동네 길의 풍경을 함께 떠올린다. ‘집의 경험’은 사적 영역인 각자의 방에만 머물지 않고 함께 공유하는 공적 영역과 집 밖의 동네를 넘나든다.

ⓒ구보건축<br><b>[청운광산]</b>서울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7-2 용도 : 공유주택(11가구), 레스토랑 공간기획·운영 : 서울소셜스탠다드건축 : 구보건축가구 디자인 : 프래그먼트 스튜디오시공 : 코아즈건설산업 https://collectivemine.modoo.at/

ⓒ구보건축
[청운광산]서울 종로구 자하문로26길 17-2 용도 : 공유주택(11가구), 레스토랑 공간기획·운영 : 서울소셜스탠다드건축 : 구보건축가구 디자인 : 프래그먼트 스튜디오시공 : 코아즈건설산업 https://collectivemine.modoo.at/

서울소셜스탠다드에서 제공하는 공유주택은 개인의 전용공간과 공유공간을 넘어 저층부의 열린 공유공간과 동네 골목의 공공공간까지를 포함한다. 집은 조금 더 공적이 되고, 동네는 조금 더 사적으로 변화한다. 경계가 모호한 공간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맺는 경험이 ‘소셜(사회적인)’ 감각을 발생시키는 변화의 시작이 된다. 사적인 공간으로 여기던 집에 타인을 초대하는 경험, 바깥이라고 생각하던 공간을 점차 나의 영역·우리 동네라 여기며 아끼고 관리하게 되는 경험이 바로 그러한 변화다. 김 대표는 집 주위에 산책할 수 있는 길이나 공원, ‘마음을 둘 수 있는 가게’ 등 거주하는 이가 자신의 ‘서식지’라고 여길 수 있는 동네 환경이 집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 작지만 충분히 실험적인, 청운광산

얼마 전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완공한 ‘청운광산’은 집이 가진 작은 공간의 한계를 근처 공원과 동네의 가게가 보완해주면서 거주자에게 ‘충분한 서식지’를 만들어낸 사례다. 청운광산은 서울시의 토지임대부사회주택의 첫 번째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청와대 바로 앞이라는 특별한 입지를 ‘40년 장기 임대’로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임대가 가능해지면서 엄청난 토지비를 아낄 수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 매력적인 땅이 이제야 개발되는 데에는 입지 특성상 복잡한 심의 절차와 개발 제한으로 인한 낮은 사업성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좁은 필지에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를 낮게 책정하는 사회주택을 건설하다보니 개인에게 할당되는 공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실내 공간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바로 앞에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공원의 풍경을 적극적으로 실내로 끌어들인 개방감 있는 설계 덕분에 작은 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건물 전체에 공유주방이 한 군데라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는 거주자들이 건물 1층에 입점한 레스토랑 큔(Qyun)을 ‘우리집 식당’처럼 여기게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추진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인 가구의 삶의 방식 변화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청운광산’은 HUG(주택도시보증공사)를 통해 15년 장기 상환 대출을 받은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상환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대출금을 조금씩 천천히 갚아나갈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임대료 책정이 가능했다. 서울소셜스탠다드의 자체 시행 사업이었던 만큼 조금 욕심을 내서 다른 건축주의 사업에서는 진행하지 못했던 건축적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김 대표는 ‘임대용 저렴 주택’은 무조건 ‘저렴하게’ 지어야 한다는,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한다. 임대주택도 좋은 품질의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공유주택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닌 ‘여러 사람이 사용할 공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이 좋은 공간을 경험하게 하도록 투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국내에서 잘 사용되지 않던 건축 방식인 ‘조립식 목구조’ 공법을 도입하는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이는 기존 업계의 관행적인 건축 방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름’을 만들어내 보려는 실험이자, 동시에 안정적으로 거주 공간의 질을 확보할 방법이었다. 철근콘크리트와 목구조(HBE)를 혼합하여 적용하는 방식을 시도하면서 결과적으로 건축비는 상당히 들었으나, 목구조가 만들어낸 거주 공간에 대한 평가는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청운광산’은 이름부터 독특하다. 김 대표는 “이 근방을 넓게 이르는 ‘청운’이라는 지명에다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캐내는 새로운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광산’을 붙였다”며 “집은 주택이라는 한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영어로는 ‘Mine(광산, 나의 것)’이어서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소셜스탠다드가 입주자 관리까지 맡고 있는 청운광산에는 몇 가지 입주 조건이 있다. 1인 가구, 주택 및 자동차 미보유, 도시근로자 소득 70% 이하, 시민단체 봉사활동 경험자 등이다. 월 임대료는 39만원부터 시작되며 현재 45만원 입주 가구가 가장 많다.

■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

1인 가구의 특성은 제각각이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소셜스탠다드가 만들어낸 공유주거 모델이 결코 1인 가구를 위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다만 대안의 선택지를 늘려간다는 관점에서 그들은 발빠르게 실험을 시작했고, 나름의 실험 데이터를 쌓았다. ‘혼자이고 싶지만 또 함께이고 싶은’ 애매한 마음으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뒷받침할 집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다. 긴 시간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함께 나눈 고민은 ‘1인 가구가 많은 도시에서 커뮤니티의 중심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전통적으로 지역의 중심이었던 ‘학교 중심의 커뮤니티’를 이루는 ‘가족 공동체’가 ‘1인 가구’에 수적으로 밀리게 되었다는 통계청의 발표도 있었던 만큼, 지금부터라도 이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3)카페를 식당 삼고, 공원을 마당 삼으니…집을 넘어 ‘서식지’가 되다


▶필자 이인규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의 좋았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을 공동기획했다.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집에 대한 고정관념에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에 작은 의미를 느끼며, 이제는 비슷하게 ‘작은 균열’을 내는 이들을 찾아가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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