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러낸 바이러스의 역습

2020.03.07 13:19 입력 2020.03.07 13: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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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화난 수산물도매시장(우한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력한 발원지로 꼽힌다. 지난 1월 중국질병통제예방센터(CCDC)는 시장 내 야생동물 판매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우한 시장에서는 박쥐와 오소리, 사향고양이와 같은 다양한 야생동물이 일반 가축과 함께 거래된다. 여기 모인 동물들은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도축된다. 이 과정에서 신종 바이러스는 가축 또는 인간과 친숙한 매개체(중간 숙주)를 통하거나 동족 간 뒤섞임을 통해 변종이 돼 인간에게 온다. 쉽게 넘을 수 없는 ‘종간 장벽’은 인간과 잦은 접촉으로 허물어진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이런 ‘우한 시장’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신종 바이러스 근원지로 지목된 이상 언젠가 전 세계 ‘우한 시장’들은 폐쇄될 것이다. 야생동물을 잡아다 무차별 도축하는 행위도 시간이 지나면 근절될 가능성이 높다. 비위생적인 시장의 폐쇄는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세계 곳곳의 비위생적인 ‘우한 시장’

‘위험한 시장’이 사라지면 신종 바이러스 발생도 줄어들까. 바이러스를 품은 보유 숙주(야생동물)는 여전히 인간 곁에 있다. 이들에게는 약이 없다.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한다 해도 야생동물에게 투약할 수 없는 노릇이다. 치료제와 백신은 인간의 몸에서만 서식하는 바이러스에 한해 유효하다. 인간이 천연두와 소아마비 정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들 질병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숙주로 지목된 종을 없애는 방식은 어떨까.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시작된 사스는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다. 발병 초기 연구자들은 사향고양이를 사스 바이러스의 보유 숙주로 지목했고, 이후 중국 당국은 1만 마리가 넘는 사향고양이를 살처분했다. 그러나 사향고양이는 보유 숙주가 아니었다. 심지어 중간 숙주가 아닐 수 있다는 연구결과(2015년 홍콩대학 수산나 라우 연구팀)도 나왔다. 이후 인간은 메르스로 대가를 치렀고, 코로나19는 치르고 있다.

알려진 대로 코로나바이러스의 보유 숙주는 박쥐다. 박쥐의 전체 종은 1240여 종인데 전체 포유동물 종의 약 25%를 차지한다. 박쥐의 멸종은 큰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특정 종의 멸종은 복잡한 먹이사슬로 유지되고 있는 생태계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어떤 경우든 인간은 생태계에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쥐 날개 덕에 날아다니던 바이러스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대륙 간 장벽을 넘나든다. 바이러스 학자 스티브 모르스는 “바이러스는 뛰지도, 걷지도, 기어다니지도 못한다. 하지만 다른 것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국경 봉쇄로 바이러스 유입을 막을 수는 없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확인했듯 봉쇄는 바이러스 이전을 늦출 수 있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신종 감염병은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됐다. 팬데믹(대유행)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지난 2월 2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북극곰의 동종포식 현상에 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세베르초프생태진화연구소의 북극곰 연구자 일리야 모르드빈체프 선임연구원은 “북극곰의 먹잇감이 부족해지면서 덩치가 큰 수컷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암컷을 습격하고 있다”며 “전에는 발견하기 어려웠던 동족포식이 자주 확인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북극곰의 이상 행동은 기후변화와 북극권 난개발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다. 먹이와 서식지를 잃은 북극곰은 동족을 잡아먹는 한편 사람이 사는 거주지로 내려와 인간과 접촉한다. 지난 2월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주 지방정부는 대규모 북극곰 출몰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19 이후 발생할 또 다른 대형 감염병의 징후로 볼 수 있다. ‘1:29:300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1건의 대형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29건의 재난 사고와 300건의 사건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북극곰의 이상 행동도 사건에 속한다.

전 세계적 규모의 감염병의 발생주기는 기후변화 문제가 대두된 1990년대를 기점을 짧아지고 있다. 90년대 이전 대규모 감염병을 보자. 1918년 발생해 2년간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과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에 이어 1981년 에이즈가 있다. 90년대 이후는 양상이 다르다. 1994년 호주 헨드라,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 2002년 사스, 2009년 돼지독감, 2012년 메르스, 2013년 에볼라, 2015년 지카,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까지 2~5년 주기로 대형 감염병이 발생한다. 여기에 1997년 이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조류독감까지 따지면 대형 감염병은 국경을 넘어 일상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에 앞서 방호복을 입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에 앞서 방호복을 입고 있다. 연합뉴스

점점 빨라지는 감염병 발생 주기

인수공통감염병(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한 전염병)은 환경파괴가 불러온다. 기후변화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모기 등 곤충 매개 감염병이 확산된다. 더운 지역, 모기 서식지가 확대되면서 모기가 몰고 다니는 바이러스도 함께 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지카와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는 아메리카로 전파됐다.

의학 학술지 <랜싯>은 기후변화로 인해 말라리아와 뎅기열 등의 질병을 전파하는 모기가 번식하기 적합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2019 연례보고서). 앞서 국내 연구진도 기후변화로 인해 과거보다 전염병 발생 건수가 증가할 것을 전망한 바 있다(200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기후변화에 따른 전염병 관리 분야 적응대책). 폭염 등 이상 기온 현상은 영구동토층을 녹여 그 안에 갇혀 있던 병원체를 깨운다. 실제 2016년 시베리아 툰드라 지대에서는 순록 2300여 마리가 탄저균에 감염돼 떼죽음을 당한 바 있다.

산림·밀림 훼손을 동반한 난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은 점점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인간과 야생동물의 잦은 접촉은 신종 전염병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야생동물이 가지고는 있지만 인간에게 노출된 적 없는 신종 바이러스가 도시로 침투하는 것이다. 공장식 밀집사육으로 길러진 가축들은 중간 숙주 역할을 하기에 알맞다. 지난 80년간 유행한 전염병의 약 70%는 야생동물로부터 왔다.

환경단체들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의료 분야 이상으로 환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코로나19 국면 속에서도 정치권에 기후위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이유다. “정치권에 기후위기 관련 정책질의를 하고 답을 받았는데 양당(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의 답변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녹색당 선거대책본부장은 “감염병은 기후위기와 무관한 재난이 아니다”라며 “환경과 재난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을 만들 국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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