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지휘관, 41년 만에 민주묘지 찾아 광주 시민에 사죄

2021.05.21 18:52 입력 2021.05.21 21:04 수정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지휘관이 41년 만에 처음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21일 오후 신순용 전 육군 소령이 옛 광주교도소 관련 열사의 묘비를 붙잡고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21일 오후 신순용 전 육군 소령이 옛 광주교도소 관련 열사의 묘비를 붙잡고 사죄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기념재단은 계엄군 지휘관이었던 신순용 전 육군 소령이 21일 광주를 찾아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고 밝혔다. 그는 3공수여단 11지역대대장으로 1980년 5월19일 부대원들과 함께 서울 용산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로 투입돼 교도소 방어작전과 광주 고립 및 봉쇄 작전 등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날 신 전 소령은 묘지 입구에서부터 “미안합니다”라고 수십차례 말했다. 또 참배단과 교도소 관련 사망 열사의 묘역 앞에서는 2차례 절을 하며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는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뿐”이라면서 “5·18 당시 떳떳하지 못한 군인의 행위로 고통 느끼신 분께 너무나 죄스러워 진심으로 묘역 참배해야겠다고 생각해 찾아왔다”고 말했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21일 오후 신순용 전 육군 소령(오른쪽 두번째)이 사죄의 뜻을 나타내자 김영훈 5·18 유족회장(왼쪽 두 번째)이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21일 오후 신순용 전 육군 소령(오른쪽 두번째)이 사죄의 뜻을 나타내자 김영훈 5·18 유족회장(왼쪽 두 번째)이 그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신 전 소령은 민주화운동 때 광주교도소 앞에서의 작전을 잊지 못했다. 당시 계엄군은 차를 타고 접근하는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3명을 숨지게 하고, 1명의 다리에 관통상을 입혔다. 그는 부하 대대원을 막지 못했다.

계엄군은 고속도로 인근 참호에서 접근하는 차량을 나눠 타고, 순차적으로 접근하는 시민들에게 2시간가량 조준 사격했다. 신 전 소령은 이로 인해 3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들을 교도소 참호 인근에 암매장한 목격담을 여러 차례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용산에서 광주로) 내려올 때는 폭동을 진압하러 간다고만 알고 왔다”면서 “폭도라고 (스스로) 생각해 스스럼없이 행동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을 죽이고 묻는 꿈을 꾸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렇게 안 해도 됐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후회와 죄책감에 괴로웠다”고도 했다.

신 전 소령은 “41년간 5·18 진상규명 과정을 지켜보며 진실이 왜곡되는 것 같아, 2016년부터 직접 증언에 나섰다”면서 “진실이 밝혀지면 이에 동조하는 동료 증언자도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날 신 전 소령과 함께 묘지를 참배한 김영훈 5·18 유족회장은 “큰 용기를 내줘서 감사하다”면서 “(신 전 소령에게) 지난 41년이 얼마나 피 마른 시간이었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화해의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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