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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①

[텃밭일기①] 코딱지만 한 땅에 뭘 심지?[밭]

지난 4월 초, 도시텃밭을 분양받았다. 너비 1.2m, 길이 8.5m 쯤 되는 3평 넓이 밭이다. 아내에게 “회사 그만두고 귀농할까” 했다가 “농사는 무슨 농사야, 텃밭 농사도 안 해 본 사람이···”란 말에 발끈해 신청한 텃밭인데, 덜컥 됐다. 분양과 당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일 줄 알았는데···. 함께 사는 처가 식구들이 더 관심을 보였다. 장모님은 고추와 토마토, 파프리카를 심자고 했다. 누군가 이미 다이소에서 열무와 대파, 시금치 씨앗을 사다 놓았다. 아내는 고구마를 심자고 했다. 6살 아이는 감자튀김을 먹겠다며 감자를 심자고 했다. 아니, 코딱지만 한 땅에 뭘 그렇게 많이 심어?

텃밭에 심은 상추, 고추,가지, 토마토 모종들.

텃밭에 심은 상추, 고추,가지, 토마토 모종들.

지난 4월 4일 일요일, 모종을 사러 전통시장에 있는 종묘상에 갔다. 오른쪽이 장모님과 6살 아이.

지난 4월 4일 일요일, 모종을 사러 전통시장에 있는 종묘상에 갔다. 오른쪽이 장모님과 6살 아이.

텃밭 농사 첫날, 장모님과 아이와 함께 전통시장에 가서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상추, 적겨자 모종 등을 2만원 어치 사와 텃밭에 심었다. 씨앗 한두 개는 꼭 토종으로 구해서 심고 싶었는데 이미 장모님 손에는 ‘다이소 씨앗’이 들려 있었다. 아이가 씨앗을 통째로 쏟아 부었다. 호미질한 땅에 동글동글한 코발트블루 색 열무 씨앗과, 뾰족뾰족한 빨간 시금치 씨앗이 뒤섞였다. 당근과 열무가 다닥다닥 붙어 자랐는데 솎아내고 옮겨심느라 후에 고생을 좀 했다. 납작하고 퍼런 대파 씨앗도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씨앗이 형형색색인건 종자 회사에서 영양제와 농약을 씨앗에 코팅해놓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런 씨앗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까봐 한참을 설명했다. 파종한 대파에서 싹이 났는데 너무 가느다래서 이걸 언제 키워 먹나 싶었다. 대파가 비싸니 대파를 더 심어야 한다는 아내와 장모님 주장에, 시금치 솎아낸 땅 일부를 대파밭으로 만들었다. 집에 있던 대파를 잘라 그대로 심었다. 이때만 해도 파밭이 돈밭으로 보였는데, 며칠 뒤 ‘금값 대파, 이제는 똥값 우려’ 라는 기사가 나왔다.

장모님이 아이에게 열무 씨앗을 주었다. 약품 처리를 해서 열무 씨앗들이 코발트블루 빛이 난다.

장모님이 아이에게 열무 씨앗을 주었다. 약품 처리를 해서 열무 씨앗들이 코발트블루 빛이 난다.

빨갛게 약품 처리를 한 시금치 씨앗. 자칫 장화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자. 뾰족해서 엄청 아프다.

빨갛게 약품 처리를 한 시금치 씨앗. 자칫 장화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자. 뾰족해서 엄청 아프다.

길이 8.5m 텃밭에서 6m 구간의 주도권을 그렇게 장모님이 가져갔다. 2.5m 구간이 남았는데 여기에는 감자를 심기로 했다. 감자는 장모님과 내가 유일하게 합의를 본 작물인데, ‘금쪽’ 같은 아이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텃밭에서 콩을 길러 콩밥을 먹겠다는 내 의지가 그나마 받아들여져서 감자 심은 곳 사이 사이에 얼룩강낭콩을 심었다. 밭 작물 중 내 강낭콩이 차지한 면적을 보니, 가족 내 서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서글퍼졌다. 서열 최상위 아내가 원했던 고구마는 ‘덩굴 식물은 남의 밭에 피해를 주니 가급적 키우지 말라’는 텃밭 규칙에 따라 제외됐다.

지난 4월 10일 토요일,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지난 4월 10일 토요일,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1.2m(너비) X 8.5m(길이) 이랑 한줄이 우리 텃밭이다. 한쪽에 두둑과 고랑을 만들어 감자를 심었다. 감자밭 사이에 심은 얼룩강낭콩이 싹을 틔웠다.  5월 1일 토요일 촬영.

1.2m(너비) X 8.5m(길이) 이랑 한줄이 우리 텃밭이다. 한쪽에 두둑과 고랑을 만들어 감자를 심었다. 감자밭 사이에 심은 얼룩강낭콩이 싹을 틔웠다. 5월 1일 토요일 촬영.

감자 농사는 제대로 지어보고 싶어 <텃밭 매뉴얼> 책을 구했다. ‘감자는 씨눈을 남겨둔 채 두세 조각으로 나눈다. 조각을 재에 버무려 그늘에서 하루 정도 말렸다가 심는다’라고 써 있다. 아니, 요즘 세상에 어디서 재를 구하나? 아는 농부님께 조언을 구하니 “감자의 잘린 부분에 재를 발라 소독하는 것”이라며 재가 없어도 최소한 하루 이틀은 말려야 감자를 심었을 때 썩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장모님은 감자를 반으로 잘라 바로 밭으로 가져갔다. 책에 ‘감자 심는 깊이는 10~15㎝로, 두둑이 아닌 두둑의 경사면에 묻는 게 좋다. 씨눈이 아래로 향하게 해야 많이 달린다’라고 써있다고 말씀을 드려도, 강원도 농부의 딸인 장모님은 개의치 않았다. 두둑과 고랑을 내고 두둑에 적당히 감자를 묻었다. 6월 중순부터 감자 잎사귀가 시들시들하더니 7월 말엔 줄기가 팍 주저앉아 버렸다. 죽었나 싶어 파봤더니 덩이 줄기에 용케 크고 작은 감자들이 달렸다. 반면 강낭콩은 쭉정이만 거둬들였다. 꼬투리가 채 여물기 전에 시들어 버렸다.

두둑에 심은 감자(길쭉한 잎)와 감자 사이에 심은 강낭콩(넓은 잎). 5월 23일 일요일 촬영.

두둑에 심은 감자(길쭉한 잎)와 감자 사이에 심은 강낭콩(넓은 잎). 5월 23일 일요일 촬영.

지난 7월 말 수확한 감자.

지난 7월 말 수확한 감자.

매주 주말마다 ‘파밍 메이트’ 장모님과 텃밭에 간다. 감자 수확한 자리엔 김장 배추를 심기로 했다. 장모님 의견에 큰 이견은 없었는데, 8월에 텃밭에 심을만한 게 배추나 무 따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봄 배추는 크기가 작아 120㎝ 너비의 땅에 3~4포기를 심지만, 가을 배추는 크기가 크다. 80cm 너비의 땅에 2포기를 심자’라고 돼 있지만, 장모님은 120㎝ 너비 텃밭에 씨앗이 들어갈 구멍 4개를 파고, 구멍 하나당 ‘다이소 배추 씨앗’ 3~4알을 넣었다. 장모님이 말했다. “이렇게 심고 나중에 솎아내면 돼.” 배추만큼은 매뉴얼대로 짓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글 · 사진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도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컬에서 다른 삶을 살아 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거나, 가게를 내거나, 농사를 짓습니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버티컬 채널 ‘밭’(facebook.com/baht.local)은 로컬에서 어떤 삶이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서울 말고 로컬’ 연재로 나만의 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facebook.com/baht.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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