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버튼에선 ‘가짜뉴스’가 자란다

2021.10.02 12:08

한국은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 Unsplash

한국은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 Unsplash

“백신이 질병 감염률을 줄이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삭제하겠다.”

유튜브는 지난 9월 29일 회사 공식 블로그에 코로나19를 포함한 모든 백신의 접종을 반대하는 채널이나 영상 콘텐츠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유튜브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에 나선 것은 ‘안티 백신’ 운동을 벌이는 진영에서 배포하는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의 압력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에 반대하며 자연치유를 주장하는 내용이 주가 된 의료분야 가짜뉴스는 정치 관련 가짜뉴스, 혐오 표현을 동반한 가짜뉴스와 함께 비율 면에서나 위해성 면에서 ‘3대 가짜뉴스’ 분야로 분류된다.

유튜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1년간 13만건에 달하는 코로나19 백신 반대 영상을 삭제한 데 이어 이번에는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모든 콘텐츠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얼핏 봐서는 문제가 되는 가짜뉴스 콘텐츠에 적절히 대처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좀더 복잡하다. 백신 반대 여론이 한국에서는 그리 큰 힘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유튜브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극성 백신 반대론자들이 나름의 영역을 탄탄하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튜브의 이번 조치가 사회적 필요에 비해 너무 늦게 실시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번에 유튜브가 채널을 폐쇄한 유명한 백신 반대론자 중에는 자연치유를 주장하는 의사 조지프 머콜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인 변호사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등이 포함됐다. 특히 머콜라는 미국의 사이버증오대응센터(CCDH)에서 꼽은 코로나19 백신 가짜뉴스를 퍼뜨린 12인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지목된 인물이기도 했다.

■한국은 ‘유튜브 뉴스’ 소비 대국

유튜브가 영상을 비롯해 이용자들의 댓글 등을 삭제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때문이다. 이와 같은 행태는 가짜뉴스를 포함해 뉴스 성격의 콘텐츠를 소비·공유하는 통로로 유튜브를 택하는 이용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상황과 맞물려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간행한 ‘디지털 뉴스리포트 2021’을 보면 한국은 뉴스 신뢰도 조사에서 46개국 가운데 38위를 기록했다. 2019년과 2020년 연속 꼴찌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나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순위에 머물렀다.

반면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를 접하고 공유하는 채널로 유튜브를 가장 선호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한국에선 44%에 달해 전체 조사대상국 평균 20%보다 크게 높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페이스북과 왓츠앱 등을 통해 텍스트 기반 뉴스 콘텐츠를 소비한 데 비해 한국에선 유독 영상 기반 뉴스 플랫폼의 선호도가 높다. 보고서는 “한국에서 뉴스 소비자들 가운데 80%가 단지 뉴스만을 보기 위해선 돈을 내지 않으려 하지만, 유튜브 프리미엄 등 복합적인 콘텐츠 제공 서비스에는 기꺼이 이용료를 지불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뉴스를 제공하는 기성 매체에 대한 신뢰도가 여전히 낮은 상황에서 유튜브를 선호하는 추세가 굳게 유지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역설적이다. “우리는 유튜브만 믿어. 유튜브가 진실이야.” 지난 5월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씨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 등장한 한 시민의 발언은 유튜브와 가짜뉴스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양면을 보여준다. 당시 손씨를 추모하는 목소리와는 별개로 사인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이례적으로 수사 진행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래도 경찰 수사까지 믿을 수 없다던 의심의 목소리는 수개월 동안 잠잠해지지 않다가 손씨의 친구 A씨 측이 가짜뉴스로 입은 피해를 두고 법적으로 강경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히면서 점차 사그라들었다. 불과 1년 전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에서는 ‘허위 정보 유통이 가장 우려되는 온라인 플랫폼’ 1위로 유일하게 유튜브를 꼽았던 한국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기성언론 겨냥한 가짜뉴스 규제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유튜브를 꼽으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사실을 향유할 권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가짜뉴스 관련 법제화 움직임 속에서도 발견된다. 2019년 10월 민주당 허위조작정보대책특별위원회가 발표한 ‘허위조작정보 종합대책’에는 가짜뉴스 유통을 방치한 유튜브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매출액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이 포함된 바 있다. 해당 대책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개발(R&D)사업 예산을 ‘팩트체크 자동화 시스템’ 개발 등에 투자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특위는 독일도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도록 플랫폼 사업자를 강력 규제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가짜뉴스 유통 규제 법안을 발의해두고도 논의에 별 진척이 없던 사이, 기성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논의 지형이 바뀌었다. 유튜브를 비롯한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언론중재법을 민주당이 한동안 강행 처리할 방침을 내비쳤던 탓에 순식간에 규제의 대상으로 지목된 기성언론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여야의 정치적 대립과 맞물려 ‘가짜뉴스 규제’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대신 일방적 규제 또는 반대만 내세우는 소모적인 논쟁만 더해지고 말았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가짜뉴스가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고 악플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더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만 반복될 것”이라며 “표현행위에 주의와 책임성을 강조하는 것이 명분은 좋지만, 자기검열이 심화될 수밖에 없고 공론장이 위축되는 결과를 부른다”고 말했다.

유튜브가 가짜뉴스 대처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결국엔 업체가 자발적으로 콘텐츠 유통을 자율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처럼 언론중재법을 비롯한 국내의 가짜뉴스 대처 법안들도 자율규제와 가짜뉴스 감시 지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짜뉴스 자체를 박멸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언론이든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든 최대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강화하는 쪽이 알맞다는 지적이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아무리 순도를 높여도 정보에는 일부 불순물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불순물을 기준으로 언론을 제약하면 언론의 자유가 금방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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