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쓰고 귀농(8)

소는 누가 키우나 [밭]

2021.11.18 19:37 입력 2021.11.18 23:37 수정 이재덕 기자

사표 쓰고 귀농⑧

충남 천안에 위치한 ‘효덕목장’의 이선애 농부(오른쪽)와 이재덕 기자가 지난 4일 축사에서 임신한 젖소들에게 소 사료를 주고 있다. | 채용민 PD
“무슨 농사를 지으려고?” 귀농을 꿈꾸는 내게 직장 선배들이 물었다. “글쎄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어요.” 쉽고 편한 농사가 하나도 없다. 괴산으로 귀농한 농부는 “자신에게 잘 맞는 농사가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고추가 잘 맞아요. 쪼그려 앉아 일하고 따는 걸 잘하거든. 근데 참깨, 들깨는 안 돼요. 잔손이 너무 많이 가고 갈무리가 힘들어.” 한 가지 확실한 건 귀농을 한다고 해도 쉬지도 못하고 매일 일만 하는 농사는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농한기가 있는 편이 낫겠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샛별을 보며 일해야 하는 농사는 피하고 싶다.

그런데 이 모든 걸 해야 하는 농사가 젖소를 키우는 ‘낙농’이다. 하루도 못 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젖을 짜야 하고, 매일 소들을 돌보고 건강 상태를 살펴야 한단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런 노동을 감내하며 젖소를 키울까. 낙농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일은 고되지만 수입은 다른 농사에 비해 낫지 않을까. 목장을 찾아 일손을 도우며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어미 소의 온도인 38도로 데운 우유를 먹고 있는 생후 1개월 된 송아지. | 채용민 PD

지난 11월4일 충남 천안 성남면에서 ‘효덕목장’을 운영하는 이선애·김호기씨 부부를 만났다. 효덕목장은 1986년 젖소 4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100마리를 사육하는 목장으로 커졌다. 송아지를 출산한 젖소들만 우유를 생산할 수 있는데, 효덕목장은 이런 ‘착유소’들을 평균 60마리가 되도록 관리한다. 착유소 60마리가 매일 1200ℓ의 우유를 생산한다.

이날 목장 입구의 작은 축사에는 태어난 지 한 달 된 얼룩무늬의 홀스타인종 송아지 다섯 마리가 있었다. 이씨가 38도로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든 2ℓ 젖병을 가져오자 송아지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애들마다 무늬가 다 달라요. 이 아이는 ‘디귿이’예요. 이마에 거꾸로 된 ‘디귿’ 무늬가 있죠? 우유 못 얻어먹는 아이가 없도록 잘 구별해서 줘야 해요.” 젖병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어깨흰점이’(어깨에 하얀 점이 있는 송아지)와 ‘하트’(이마에 하트 무늬가 있는 송아지)에게 물렸다. 한 달 지난 애들의 젖 빠는 힘에 손에서 젖병을 놓칠 뻔했다. ‘젖 먹던 힘’이라는 게 이렇게 센 거였구나.

젖소들에게 주기 위해 사료포대를 뜯는 ‘효덕목장’ 이선애 농부. | 양다영 PD

■치솟는 사료값, 풀 농사짓는 목장들

지난 8월 농가들이 우유업체에 납유하는 원유(原乳) 가격이 ℓ당 21원 올랐다. 원유가격은 2013년 시행된 ‘원유가격연동제’에 따라 생산비를 반영해 정해지는데, 젖소들이 먹는 수입산 풀(건초)과 곡물 사료의 가격이 오르면서 올해 원유가 인상이 결정됐다. 우유업체들도 지난 10월 우유 소비자가격을 ℓ당 평균 140원 올렸다. 원유가 인상분에 인건비·자재비·물류비 상승 등을 반영한 것이다.

원유가격연동제 도입 후 원유값은 2013년(106원 인상)과 2018년(4원 인상) 두 차례 인상됐고, 우유업체들도 소비자가격을 200원 이상 올렸다. 2016년에는 원유 가격이 18원 떨어졌지만, 서울우유를 제외한 우유업체들은 이를 소비자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선애 농부가 말했다. “정작 많은 금액을 올린 건 우유업체들인데, 다들 ‘농가들이 욕심부린다’며 저희를 비난해요. 생산비는 자꾸만 올라가는데 원유 가격을 동결하라는 건 농가들에게 생산비 인상분을 다 떠안고 감수하라는 것과 같아요. 농가들은 뭐 먹고 살라는 건가요?”

효덕목장은 4만5000평 논밭을 빌려 소들이 먹을 청보리나 귀리(연맥), 제주피 따위의 사료 작물을 재배한다. 밭에는 귀리와 제주피 나락들이 흩어져 있었다. | 채용민 PD

건초와 곡물 가격이 오른 건 주산지인 미국 등에서 한파, 가뭄 같은 이상기후로 사료 작물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등의 사료 수요가 늘고, 기름값 상승과 물동량 증가로 해상 운임비가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날 효덕목장을 찾아온 이웃 농부들은 “소들이 먹는 건초는 구하기가 힘들 정도(‘풍요목장’ 이성진 농부)”라고 했다. “예전에는 업체에 전화해서 ‘5t트럭으로 건초를 보내달라’고 하면 바로 보내줬는데 요즘은 전화를 해도 ‘건초가 충분치 않다’는 답이 돌아와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용문목장’ 김용문 농부)

일부 농가들은 사료값을 줄이기 위해 직접 건초 농사를 짓는다. 효덕목장도 성남면 일대 이곳저곳에 흩어진 4만5000평 논밭을 빌려 청보리나 귀리(연맥) 따위의 사료 작물을 재배한다. 이씨를 따라 목장 옆 언덕길을 올라가니 경사로에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씨는 “최근 귀리를 베어냈다”고 했다. 귀리를 말린 뒤 기계로 둥글게 말아 흰 곤포 사일리지(Silage)로 만든다. 효덕목장의 어미 젖소들은 600~700㎏ 되는 곤포 사일리지 두 개를 하루에 해치운다.

밭에는 시커멓게 썩어버린 나락들도 널려 있었다. 지난 여름에 파종한 사료 작물 ‘제주피’다. “제주피를 거둬들여야 하는 시기(9월)에 한 달 내내 비가 왔거든요. 겨우 베어 놓은 피들을 (곤포 사일리지로) 둘둘 말아 가져가야 하는데 농기계가 밭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결국 다 썩어버린 거예요. 이게 다 젖소 먹이인데…. 지금도 귀리를 수확해야 하는데 이번주에도 비가 온다고 하니까 마음이 급해져요.” 한여름 벼가 심어진 논에서 농부들이 쓸모없는 잡초라며 뽑아버리는 ‘피’를 젖소 농가에서는 귀하게 여기고 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선애 농부가 베어낸 귀리(연맥)를 들어 올리고 있다. | 채용민 PD.

귀리를 수확하면, 그 자리에 겨울을 나는 월동 작물인 청보리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심을 계획이다. 목장서 나오는 소똥을 발효시켜 거름으로 뿌린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넣지 않는다. 목장 앞 작은 논에선 벼농사도 한다고 했다. 여기서 나오는 볏짚도 젖소 먹이로 쓰인다. “이렇게 하면 사료값이 절약돼요. 소들은 건강한 풀을 먹을 수 있어요. 소 분변도 버려지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땅심도 회복되죠.”

이선애·김호기 농부가 목장 인근 논에서 재배한 볏짚 뭉치 | 채용민 PD

임신한 소와 송아지 40여 마리가 사는 우리 앞에는 곤포 사일리지 비닐을 벗겨낸 건초 뭉치가 놓여 있었다. 위아래가 통으로 붙은 작업복을 입고 돌돌 말린 건초를 한 아름씩 꺼내 임신한 소들에게 주었다. 발효된 건초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건초 놓을 자리에 떨어져 있는 소똥 덩어리들은 한데 모아 손으로 치워냈다. 이씨가 “똥 만지면 부자 된대요”라며 웃었다. 송아지용 사료 포대를 뜯어 송아지 앞에 부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댔다. 건초와 사료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재덕 기자가 젖소들이 먹을 볏짚을 나르고 있다. | 채용민 PD

■수십만원씩 거래, 납유 권리금 ‘쿼터’

오후 4시 반. 착유소 60마리가 사는 축사의 문이 열렸다. 젖소들이 착유장 앞에 줄을 섰다. 착유소들은 12시간 간격으로 젖을 짜야 한다. 대부분의 농가들이 새벽 4시에 한 번, 오후 4시에 또 한 번 착유 작업을 한다. 6마리씩 착유장으로 들어갔다. 착유장에선 젖을 소독한 뒤 착유기를 물리고, 다시 젖을 소독하고 소들을 내보내는 일이 수없이 반복된다. 이렇게 나온 원유는 각종 검사를 거쳐 우유업체에 납유된다.

착유장으로 이동하는 젖소들. | 양다영 PD

목장은 생산한 원유를 모두 우유업체에 팔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원유를 많이 납유한다고 수익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우유업체들이 목장 원유 생산량을 ‘쿼터’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쿼터는 농가들이 원유를 제값 주고 납유할 수 있는 하루 생산량을 말한다. 효덕목장이 우유업체와 계약한 쿼터는 ‘1400ℓ’다. 하루 1400ℓ 생산량까지는 정해진 원유가격(지난해 평균 ℓ당 1083원)을 받고 팔 수 있지만, 쿼터를 초과한 생산량은 ℓ당 100원에 팔린다.

이선애 농부(오른쪽)와 이재덕 기자가 착유소들이 사는 축사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양다영 PD

농가와 우유업체의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이 되는데, 지난해 일부 우유업체들이 ‘우유 소비가 줄어 경영이 힘들다’는 이유로 쿼터를 줄였다. 효덕목장의 쿼터는 10%가 깎였다. 업체의 요구로 쿼터가 줄었지만 보상은 없다. “ ‘합의’로 쿼터를 줄였다고는 하지만, 사실 일방적이죠. 우유업체가 쿼터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데 따를 수밖에 없어요. 업체가 살아야 농가도 사니까요.”(김호기 농부).

쿼터는 재산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농가가 쿼터를 많이 보유할수록 많은 원유를 제값에 팔 수 있다 보니 농가들 사이에서는 쿼터가 비싼 값에 거래된다. 우유업체별로 쿼터 가격이 다르지만 1ℓ에 50만~90만원 수준이다. ‘용문목장’의 김용문 농부도 지난해 쿼터 200ℓ를 사서 총 쿼터를 1600ℓ로 늘렸다고 했다. 하루 200ℓ 원유를 더 납유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1억원을 썼다.

이재덕 기자가 젖소들이 먹을 사료 포대를 나르고 있다. | 채용민 PD

농부들에게 ‘귀농하고 싶다’고 하자 김용문 농부가 말했다. “낙농을 하시겠다고 하면 저는 뜯어말릴 거예요. 먹고살려면 하루에 원유 1t은 팔아야 하는데 1t을 납유할 ‘쿼터’를 사는 데만 5억원이 들어요. 땅 사야지요. 시설 투자해야죠. 소도 사야죠. 무조건 최소 10억원이 투자돼야 해요. 그런데 저희 목장은 제가 처음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부모님이 하신 축사를 받아서 그나마 운영하고 있는 거거든요.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전부 빚이에요. 부모님 빚까지 물려받았어요.”

한국낙농육우협회가 2020년 8~10월 동안 국내 낙농가 538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부채액은 4억2440만원에 이른다. 농가들은 쿼터를 매입(40.4%)하거나, 시설투자(25.2%)를 위해 빚을 냈다고 응답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의 우유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원유 생산비를 반영해 가격이 결정되는 현재 원유 가격 시스템을 전면 뜯어고치겠다고 밝혔다. 한국처럼 가축 사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의 원유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우유 소비자가격은 더 낮다. 유통 마진을 줄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비상시에 대비해 사료를 비축하는데, 덕분에 사료 수입이 어려워져도 국내 수급에는 큰 지장이 없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사료값 증가율은 37.8%였다. 같은 기간 한국의 사료값 증가율은 87.32%에 달했다.

젖소들이 건초를 먹고 있는 모습. | 채용민 PD

김호기 농부는 “우유 생산비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런 걸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농가들에게만 가격을 낮추라고 한다. 우유는 공산품처럼 생산량이나 생산비를 쉽게 조절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농부들은 “젖소 농가를 물가 상승의 주범인 양 몰아가는 시선들이 견디기 힘들다.”(이성진 농부), “이런 비난을 들으려고 소를 기른 게 아닌데 자괴감이 든다”(김용문 농부)고 했다. 이들마저 떠나면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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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재덕 기자, 사진·영상 채용민·양다영 PD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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