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후 3년…경찰 디지털성범죄 전담 수사 인력 단 10명 늘어

2022.09.20 21:05 입력 2022.09.20 21:26 수정

‘엘 성착취 사건’ 등 범죄 증가에도

내년 예산안 관련 비용 70% 삭감

‘부실 대응’ ‘늑장 수사’ ‘전문성 부족’….

디지털성착취 범죄가 공론화할 때마다 수사기관인 경찰이 받는 비판이다. 최근 불거진 ‘엘 성착취 사건’도 경찰이 8개월째 주범을 잡지 못해 늑장 수사 논란이 일었다. 디지털성착취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활동가들은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 등을 문제로 꼽으면서도 전담 인력·예산 부족이 근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n번방 사건이 있던 2019년부터 3년간 전국 시·도경찰청 디지털성범죄 전담 수사 인력은 ‘10명’ 증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디지털성범죄 관련 전담 수사 인력 현황’을 보면, 전국 18개 시·도경찰청 디지털성범죄 수사전담팀(전담팀) 인력은 2019년 99명에서 지난 6월 기준 109명으로 3년간 ‘10명’ 증원됐다. 연도별 인력 현황은 2019년 99명(정원 95명), 2020년 105명(정원 101명), 2021년 105명(정원 101명), 지난 6월 109명(정원 107명)이다. 지역별로는 지난 6월 기준 서울 17명, 경기남부 12명, 부산 10명, 경기북부 7명, 대구 6명, 인천·대전·울산·전북·경북·경남 5명, 광주·강원·충북·충남·전남·제주 4명, 세종 3명 순이다.

전담팀은 2018년 경찰청과 전국 시·도경찰청에 신설됐다. 정원이 반영된 것은 이듬해부터다. 온라인상 불법촬영물 유포 등에 대한 수사를 전담한다. 일선경찰서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해와 국제공조를 요하는 디지털성범죄 특성상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될 경우 각 시·도경찰청 전담팀에 사건 이관을 요청할 수 있다. 지난해 9월24일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업무도 전담팀이 맡는다. 현재 위장수사 업무를 담당하는 수사관은 37명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n번방 사건 이후 여론이 잠잠해지고, 사이버 도박이나 테러 등 범죄에 관심이 쏠리면서 시·도청 전담 인력에 대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의 인력도 타 수사팀 정원을 당겨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성범죄 발생률은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디지털성폭력 범죄는 2019년 2698건에서 지난해 4349건으로 61% 증가했다.

‘영상 유포 전까진 여청과에서 담당’…모호한 업무 분장에 수사 차질 빈번

인력 사정이 이렇게 열악하다보니 일선에서 접수하는 디지털성범죄 사건 수사를 시·도청 전담팀으로 일원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선서에서는 모호한 업무 분장으로 수사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엘 성착취 사건이 비근한 예다. 지난 1월 사건 접수 이후 경기 파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여청과)가 수사를 담당했다. ‘영상 유포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사이버수사과가 아닌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를 담당한다’는 경찰 내부 사무 분장 규칙에 따른 것이다.

엘 성착취 사건 용의자가 이용한 페이스북 IP는 사용자 특정이 어려운 ‘유동 IP’였다. 여청과로선 용의자 추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개월째 진척이 없던 수사는 지난 8월 서울경찰청이 주도하는 전담팀이 맡고서야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청과 관계자는 “증거 확보나 초동 수사가 중요한데 사이버 쪽에 비해 용의자 추적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인력 문제뿐만이 아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악성 성착취 범죄가 또 한 번 세상에 알려졌지만,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경찰청이 요구한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사업 예산의 70%를 삭감했다.

경찰청이 천 의원실에 제출한 ‘디지털성범죄 관련 장비 예산 요구 및 정부 예산안 반영 현황’에 따르면, 경찰청은 디지털성범죄 위장수사 지원 예산으로 5억1500만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에 책정된 액수는 1억5500만원에 그쳤다. 위장수사 지원 소프트웨어 구입 비용 3억3000만원, 위장수사관 전문 상담 및 적성검사 비용 3000만원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

천 의원은 “n번방 사건을 겪고도 경찰 전담 수사 인력이 제자리걸음이라는 현실은 충격적”이라며 “위장수사 관련 예산을 삭감한 정부의 행태도 문제”라고 했다. 이어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대처가 악성 성착취·불법촬영 범죄의 근본 원인”이라며 “경찰의 전담 수사 인력 증원을 포함한 충분한 예산·수사 장비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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