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애인의 날

온라인 쇼핑 꿈도 못 꾸는 디지털 강국의 시각장애인

2023.12.03 13:47 입력 2023.12.03 14:18 수정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5년 흘러도

‘웹 접근성’ 보장 안돼 선택권 제한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의 한 회의장에서 김훈씨가 스크린 리더 기능을 킨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하고 있다. 배시은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의 한 회의장에서 김훈씨가 스크린 리더 기능을 킨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하고 있다. 배시은 기자

“똑같은 앱인데 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도 못 주는구나 싶을 때는 우울하죠”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만난 전맹 시각장애인 김훈씨(51)가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기능을 시연하며 말했다. 김씨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스크린 리더’ 기능을 활용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김씨가 오른손 검지로 핸드폰 화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자 1.5배 정도로 빨리감기 된 여성의 목소리가 차례로 앱의 이름을 읽어줬다. 음성이 ‘카카오톡’이라고 말하자 김씨가 화면을 두드려 앱으로 접속했다.

이후부터가 난관이었다. 김씨가 카카오톡 선물하기 페이지에서 미스트를 골라 ‘선물담기’에 넣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제 페이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결제 페이지를 알려주는 음성 메시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결제페이지로 넘어가는 버튼을 찾으려 손가락으로 화면 이곳저곳을 연달아 눌렀지만 허사였다. 음성 메시지는 상품 페이지 화면만 반복적으로 읽어줄 뿐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김씨는 카카오톡 고객센터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주변 비장애인분께 부탁해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의 한 회의장에서 김훈씨가 스크린 리더 기능을 킨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하고 있다. 배시은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의 한 회의장에서 김훈씨가 스크린 리더 기능을 킨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하고 있다. 배시은 기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5년이 흘렀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웹 접근성은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다. ‘웹 접근성’은 웹사이트나 앱에서 제공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이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 문자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공공기관 외 일반 기업에서 만든 앱이나 웹이 접근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부과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들은 마우스 대신 키보드 ‘탭(Tab)’ 버튼을 이용해 ‘대체 텍스트’를 찾게 된다. 대체 텍스트는 아이콘 등 이미지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스크린 리더가 읽어주는 문구를 뜻한다.

문제는 사이트에 대체 텍스트가 삽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여러 상품을 비교해보고 사야 할 때는 불편이 더 커진다. 대체 텍스트 없이 시각장애인이 상품의 외양을 파악할 방법은 없다.

시각장애인들은 웹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소비자 선택권의 제한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김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체 텍스트가 없어 상품을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구매를 주저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생필품까지 비대면으로 쇼핑하는 것이 기본이 된 세상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무엇이 장애인의 웹 접근성을 가로막고 있을까. 웹사이트 및 앱 개발자들은 여러 직군과 협업해야 하는 개발 업무의 특성상 웹 접근성을 고려해 서비스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개발자가 독자적으로 웹 접근성 기능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13년 차 웹 개발자인 조경숙씨(34)는 “보통은 디자이너가 완성한 디자인을 보고 개발자가 코딩을 하는데, 웹 접근성 구현하는 코딩을 하려면 디자인 단계부터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며 “완성된 디자인을 보고 웹 접근성을 고려하여 디자인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촉박한 마감 시간도 웹 접근성을 막는 장애물이다. 17년 차 웹 개발자인 정찬명씨(48)는 “웹 접근성을 구현하는 개발 과정에도 시간이 들어가고, 기획자·디자이너와 소통하는 과정에도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작은 기업에서는 웹 접근성이 개발자 개인의 열정이나 업무량에 따라 좌우된다”고 했다. 특히 빠른 속도로 개발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선 웹 접근성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시각장애인들과 개발자들은 “완벽한 웹 접근성 보장을 위해서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개발자들이 지침대로 개발을 해서 웹 접근성을 갖춰 놓았다고 해도 당사자가 사용하면 꼼꼼하게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협조해서 서비스를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벌금과 제재 등 법적인 수단보다는 당사자·서비스제공자·정부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조씨는 “장애 당사자를 섭외해 웹사이트가 편한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일개 개발자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더라”며 “장애 당사자와 IT업계가 만나 사용자 조사를 하는 단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년 12월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를 점검하고, 장애에 대한 이해를 촉진해 장애인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한 기념일이다. 유엔이 1981년 12월3일 제37회 유엔 총회에서 ‘장애인에 관한 세계 행동 계획’을 채택한 데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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