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레터

🍓아기를 버리고 싶은 엄마는 없다

6분 2023.07.14

영아 유기 임신중지권 출생통보제 작업복 할미넴

🧡 Season3 🧡

VOL 21 . 2023.07.07~07.13

이번주 플랫 PICK

한주간 중요하게 볼 이슈는

아기를 버리고 싶은 엄마는 없다

범죄로만 접근하면 비극은 반복될 겁니다. 이번 '영아 유기'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지난달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알려지면서 대대적인 미신고 영아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살인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분명히 짚으면서, 동시에 이번 레터에선 사건의 배경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윤기은 기자가 취재한 비혼모들의 시선으로 '영아 유기' 사건을 살펴봐요. 10대, 20대에 아이를 출산해 키우는 비혼모들은 "아기들이 유기되는 사회적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고 말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한 비혼모는 가정에서 학대를 당하다 가출해 고등학생 때 임신 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도망쳤고, 쉼터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이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자립하는 방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홀로 떠안은 임신, 출산, 육아의 짐. "그럼에도 아이를 키워야지" 라고 말한다면, 동시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자립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설명이 뒤따라야 할 겁니다. 영아를 살해하고 유기한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높다는 점 역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호'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임신 사실을 가족에게 숨기고 화장실에서 출산한 뒤, 유기해 아기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례까지 들으면 참담한 심정입니다. 한편으론 궁금합니다. 만약 '안전한 임신중지권'을 누릴 수 있었다면, 아이를 낳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일이 일어났을까? 임신중지권을 행사했을 것 같거든요. 임신중지권은 플랫레터에서 간단히 다룬 적이 있었는데요. '낙태죄'가 폐지된 지 4년이 넘었는데도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공백' 상태입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선택지도 쥐여주지 않고, 사실상 빼앗고✔️, '원치 않는 임신'의 책임을 여성에게 떠맡긴 상황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여성들이 아기를 유기하는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는 뒷전으로 미루고 여성만 죄인으로 모는 현실은 가혹합니다. 게다가 같은 논리라면 양육을 포기한 아빠도 같이 벌 받아야죠. (ㅂㄷㅂㄷ,,)

📌임신중지권 이슈는 지금 이 시점에서, 더 공론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신중지권과 관련해선 미국에서도 뜨거운 이슈인데요. 지난해 연방대법원에서 임신중단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이든 대통령이 "정부는 계속해서 출산 여성의 건강 접근권을 보호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질문을 던질 수 있겠습니다. 한국 정부는 '여성의 건강 접근권'을 위해 뭘 하고 있나?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이후 9일 만인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출생통보제가 통과됐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료인이 국가에 출생을 알리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앞서 2011년 유엔에서 한국의 출생신고 제도 개선을 권고했는데, 10년 넘게 미적대다가 부랴부랴 통과됐습니다. 뒤늦게나마 통과된 건 다행이지만, '병원 밖' 출산 등 '사각지대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 아이를 안전하게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 조성, 책임을 회피한 생부에 대한 처벌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넓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합니다.

📌여성 직원만 '붙는 치마' '5cm 구두'…같은 일, 다른 작업복

'차별'을 입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 이야깁니다. 작업복으로 보는 성차별 문제, 세 번째 이야기 전해드려요.

호텔, 항공사, 백화점 등. 주변에서 만나고 지나친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을 떠올리며 기사를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을 생각하면, "걸을 때 불편한 건 물론이고 허리를 숙이면 치마가 딸려 올라가" 업무에 지장 받았을 고충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불편한 유니폼'이 문제적인 건, 그 원인이 '성차별' 때문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옷 자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복장 지침'이 문제입니다. 호텔리어로 일한 한 여성 노동자는 "여성 직원들은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지침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신발도 "(굽높이가) 5cm 이상인 구두를 신어야" 했습니다. 바지는 개별 구매해도 된다고 했는데, 막상 사비로 바지를 입고 출근한 날 망언을 들어야 했답니다.

"치마 안 입었네? 다리에 문신이라도 했나?" 이 한 문장에 비뚤어진 성차별적 시선이 그대로 함축돼 있다고 봅니다. 제3자인데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당사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계속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성별 구분 없이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여성만 복장 지침이 달라야 하는 것인지. 왜 선택권조차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인지 말입니다. 작업복은 일하는 노동자들이 입는 거잖아요.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고요. 성차별에 따른 복장 통제는 '인권 침해'이자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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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 유선희 기자 yu@khan.kr

광고·협업 문의는 flat@khan.kr

한눈에 보는 젠더이슈

놓치지 말아야 할 뉴스

📌 2023년 현대자동차 생산직(기술직) 공개채용 합격자 중 처음으로 여성 합격자가 나왔습니다. 기술직 공채에 합격한 인원 200명 중 6명이 여성입니다. 현대차는 창사 이래 기술직 신입 공채에서 단 한 명의 여성도 채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여성 합격자 인원 자체는 적은 숫자이지만, 노조는 "회사 창립 후 여성 노동자에게 처음으로 열린 기술직 공채의 문"이라는 점에 의의를 뒀습니다.

✔'금녀의 벽'에 작은 균열일지라도…현대차 '생산직' 첫 여성 합격

📌 '신당역 스토킹 살인범' 전주환이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보복범죄는 형사 사법체계를 무력화하는 범죄로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전주환은 지난 1심에선 살해 등 혐의에 대해 징역 40년, 스토킹 혐의는 징역 9년을 각각 선고받았습니다. 이번 2심에선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고, 높은 형이 선고됐습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전주환 2심 무기징역…"참작 가능한 사정 없다"

📌 브라질 정부가 남녀 동일 임금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시행합니다. 동일한 가치의 작업을 수행하거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 임금 및 보수 기준을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을 직접 제안하고 선포한 룰라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이 법을 집행할 것이고, 노동부와 여성부가 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 제안, '남녀 동일임금 의무화 법' 추진한다

문화가 있는 플랫

이번주에 소개할 래퍼, '할미넴'

🎤 이것이 스웩(swag) 이죠! 랩 하는 할머니들 이야깁니다.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이 이번엔 래퍼로 등장했습니다. 역시 배움과 도전엔 끝이 없어요.👏 주인공은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입니다. 칠곡군 할머니들은 대통령의 글꼴로 알려진 '칠곡할매글꼴' 제작자이기도 해요.

래퍼와 힙합댄서로 변신한 칠곡 할머니들은 지난 9일 '1080 힙합 페스티벌'에 참가해 그간 갈고 닦은 랩 실력을 뽐냈습니다. 할머니들은 "손주와의 소통은 물론 마음만은 젊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청소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랩에 도전"하기로 하고, 지난해 9월부터 연습에 돌입했다고 해요.

“고추 따던 할매들. 땅콩 캐던 할매들. 우리도 랩을 해, 계속해서 뱉을래.”
“소밥 주다 개밥 줘. 개밥 주다 소밥 줘. 그래도 난 연습해, 랩을 매일 연습해.”

할머니들의 랩을 들으면 '이것이 인생이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칠곡 할머니들의 유쾌한 도전기를 보니 '순창 할미넴'이 떠올랐어요. 일찍이 전북 순창군 할머니들은 랩을 선보이며 진정한 '스웩'을 보여줬었는데요.:) 랩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할미넴'은 2020년 제48회 국제 에미상 결선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들의 랩을 들으면 처음엔 웃다가도 랩 가사에 담긴 절절한 인생사에 그만 눈물이 핑 돌아요.

개인적으로 '꽃샘 할매' 김영자(98) 할머니의 랩 가사가 인상적이었는데요.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이후 생계를 홀로 책임진 김 할머니의 인생이 담겼습니다.

"순창군에서 시집 셋방살이 3000원짜리부터 시작한 내 자린

남편과 헌 옷 팔이 힘들어도 버텨 자식들 보는 행복감에

아주 잠시 잠시뿐 시한부를 받았네

울고불고 당신뿐 슬픈 현실을 닫았네

힘든 홀로서기 버티자 내 새끼 배고플까

눈물 닦고 정신 차리자 내 새끼 밥 거를까"

또 어떤 스웩 넘치는 할머니들의 도전이 이어질까요? 기대됩니다.🤗

플랫 우체통

우리 대화 나눠요

💌 To.Flat

지난회차 레터를 읽은 독자분들의 피드백입니다.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여성과 젠더 관련 이슈에 대해 정리된 뉴스레터를 읽는 것만으로도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 부천영화제에 간 지인이 이번호 소개된 영화 <블레이즈>를 보고 왔는데요, 지인도 줄거리를 보고 흥미를 느껴 관람했는데 강간 살인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물론 충격적 장면을 선택한 감독의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폭력에 대한 시각적 재현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와 노력 등이 있어서인지, 폭력을 왜 그렇게만 표현해야 했을까 의아했습니다.

💌 From.Flat

1.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된다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열심히 제 역할을 해 볼게요!💪

참고로 지난 1일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영상도 나왔어요.

공유합니다.:)

2. 저도 영화 전체를 다 보진 못해서 다 관람하고

확실한 의견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의견 주신 것처럼 폭력 재현 부분은

분명히 신중하게 표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지점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