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무원들의 저승사자 왕치산

2014.10.16 21:06 입력 2014.10.26 15:18 수정
홍인표 국제에디터·중국전문기자

중국 송나라 인종 때 포증(包拯·999~1062)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가 워낙 강직하고 청렴한 탓에 청렴한 관리라는 뜻인 청천(靑天)을 붙여 포청천이라고 불렀다. 특히 대만과 홍콩에서 만든 드라마 <포청천>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감찰 업무를 맡은 감찰어사로 있으면서 파직을 시켰거나 사법처리를 하게 만든 대신만 30명이 넘었다. 그는 탄핵 상소를 황제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늘어졌다. 인종 황제의 총애를 받던 후궁의 큰아버지(張堯佐)가 1년 동안 4번이나 벼락승진한 끝에 나라의 재정과 인사 조직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다. 포청천은 탄핵 상소를 여섯 번이나 올려 끝내 그를 황제가 파면하도록 만들었다.

[홍인표의 차이나 칼럼]중국 공무원들의 저승사자 왕치산

송나라 때 포청천이 있었다면, 지금은 왕치산(王岐山)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있다. 중앙기율검사위는 중국 공산당 최고의 사정기관이다. 8000만명이 넘는 당원들의 비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그동안 사정이나 감찰 관련 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지만 2012년 11월 선출 이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반부패 정풍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원래 그는 경제 전문가였다. 후진타오 주석의 제4세대 지도부에서는 금융과 통상 담당 부총리를 맡았다. 물론 특급 소방수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위기 상황마다 긴급 투입돼 문제를 해결했다. 2003년 베이징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번지면서 민심이 흉흉했을 때, 그는 하이난성 서기에서 베이징 시장으로 전격적으로 발령을 받아 사스 위기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가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로 있던 지난 700일 동안 성장·부장급(장관급) 이상 고위 간부 50여명이 낙마했다. 이 중에는 공산당 최고 지도부였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출신의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를 비롯해 군부 최고 실력자였던 중앙정치국원 출신의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쑤룽(蘇榮)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과 같은 거물 호랑이까지 들어 있다. 저우융캉 사법처리는 전·현직 정치국 상무위원은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공산당의 불문율을 깼다는 데 의미가 있다. 반부패 투쟁에는 성역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역대 최강 중앙기율검사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는 최고 책임자인 그가 주도면밀하게 일처리를 진두지휘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저우융캉 전 서기 비리사건만 해도 지난 1년반 동안 200명이 넘는 그의 가족과 측근들에 대한 비리 조사를 마무리한 다음 그를 사법처리했다. 잡음을 최소화한 것이다. 지방 관리들의 비리 적발에 많은 공을 세운 중앙순시조라는 이름의 암행감찰반 운영에서도 왕치산 서기의 솜씨가 돋보였다. 그동안 중앙순시조가 있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고 암행감찰을 해 성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왕 서기 체제의 중앙순시조는 조장과 부조장이 누구인지 밝혔고,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성과를 거두면 중용하겠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책임을 지우겠다는 실명제 감사를 도입했다. 왕 서기는 자신을 보좌하는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 8명 전원을 중앙과 지방, 군부의 감찰 담당 유경험자나 법률 전문가로 포진시켰다. 주요한 비리 적발 사실이 있으면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보도했던 것과는 달리 중앙기율검사위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공개하고 있다.

반부패 정풍운동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왕치산 서기와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인 인연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왕 서기는 1948년생으로 시 주석보다 다섯 살 많다. 그들은 베이징에서 중학교(시 주석은 공산당 간부들의 자제가 많이 다녔던 베이징 101중학, 왕 서기는 베이징 도심의 명문학교인 베이징 35중학을 다녔다)를 다니다가 문화혁명 당시 서북지방 산시(陝西)성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은 인연이 있다. 시 주석이 베이징을 오갈 당시 왕 서기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정도다. 왕 서기가 현재 권력 서열 6위지만 시 주석에 이어 사실상 당내 2인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에다 시 주석의 신임이 두텁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대외활동이 가장 적다. 더욱이 그가 공개활동을 하지 않을 때면 거물 관리들의 낙마 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제2의 호랑이를 잡을 것인가. 왕 서기는 좀 기다려보면 알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국의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한 호랑이 잡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중국 공무원 사회가 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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