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빵 간식빵

2014.11.06 20:53 입력 2014.11.06 21:22 수정

우리나라 제빵 시장이 대단히 커지고 있다.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모 기업은 매출 규모가 웬만한 대기업을 웃돈다. 외국에 진출해 성과도 올리고 본고장에도 들어갔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식사빵 간식빵

우리의 빵 시장은 화교의 진출과 맥을 같이한다.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빵집이 전해졌다. 흔히 개항과 함께 중국식당이 들어온 것으로 알지만, 사실과 다르다. 처음에는 빵집이 선도적이었다. 그 후에 자연스럽게 요리사가 들어와 식당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장면보다 빵이 먼저 들어온 것이다. 그 시절의 빵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몇몇 지방의 중국식품점이나 식당에서 파는 계란빵이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한·중 관계사의 아주 중요한 상징인 음식이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빵은 면모를 달리했다. 유럽을 통해 빵을 받아들인 일본식 빵이 전해진 것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단팥빵과 ‘카스테라’가 그 시절의 유산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유럽의 빵을 받아들일 때 철저하게 자국의 입맛으로 바꿨다. 겉이 딱딱한 빵을 싫어하자 보드랍게 굽고 발효제로 쓰이는 서양 이스트의 향에 거부감을 보이자 청주의 누룩으로 대체했다. 원래 속에 달콤한 것을 넣지 않는 담백한 유럽 빵은 일본에서 인기가 시들했다. 속에 모치처럼 단팥을 넣어 입맛을 바꾼 것은 바로 일본인들의 아이디어였다. 지금도 도쿄에는 그 시절의 유산 같은 단팥빵집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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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제빵기술자에게서 빵을 배웠다. 일본인들이 자본을 대서 아예 전국에 빵집을 열었다. 식민지는 영원할 것처럼 보였고, 이미 조선은 거대한 일본제국의 땅이었을 테니까. 전남 순천에는 아주 오래된 빵집이 있다. 이름도 일본식이다. 일본인이 버려두고 간 적산시설을 당시 그 빵집에서 일하던 한국인 직원이 인수, 가게를 크게 키웠다. 지금 대를 물려 영업하는 이 가게의 역사는 곧 우리 제빵의 역사이기도 하다. ‘로루’(롤케이크)와 모치를 팔았고, ‘고로케’와 ‘빙수’가 인기 품목이었다.

한동안 프랜차이즈점에 의한 동네빵집의 몰락이 화제였다. 그러고는 식사빵과 간식빵 논쟁이 일었다. 간식으로 주로 먹는 우리 제빵은 ‘촌스러운’ 일본식이고, 식사로 먹는 유럽식 정통 빵이 진짜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우리 빵산업은 일본에 의해 잉태되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우리가 다 수용하고 인정해야 하는 역사다. 역사 없는 새로운 미래는 없다. ‘앙꼬빵’이 우리 빵의 기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장면이 화교로부터 받아들였다고 해서 배척받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겉이 딱딱하고 단맛이 없는 유럽식 빵을 선호하는 것도 하나의 문화일 뿐, 달콤한 빵은 정통이 아니라는 주장은 도대체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모르겠다. 일본식 빵이라고 부를 것도 없다. 이미 우리에게 전해진 지 100년의 세월 동안 그것은 하나의 우리 빵문화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동네빵집에서 단팥빵을 사서 먹는다. 기름 발라 반짝반짝한, 달콤하고 구수한 단팥의 맛을 즐긴다. 내 몸에는 이 빵의 유전자가 있다. 그럼 된 것이다. 우리 빵이다, 이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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