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거북이의 임시 치아

2015.08.02 21:40 입력 2015.08.02 21:55 수정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배철현의 심연]새끼 거북이의 임시 치아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거북이는 다른 모든 생명들이 그러하듯 신비하기만 하다. 수십 개의 조그만 생명체가 모래 속에서 꿈틀거리며 위대한 생명을 시작한다. 태어난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새끼 거북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아는 것처럼, 저 멀리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태양빛에 반사된 빛의 파장을 따라 바다를 향해 단호하고도 후회 없이 힘차게 나아간다. 새끼 거북이의 인생 여정은 어미 거북이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미 거북이가 바다를 횡단해 자신의 고향 해안까지 헤엄쳐오는 여정은 매 순간 죽음과의 사투다. 호시탐탐 상어와 고래가 노리고 있고, 인간이라는 동물이 막강한 무기로 언제든 자신들을 포획해 죽일 수 있다. 어미 거북이는 바다의 파고가 제일 높은 날,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 거칠고 높은 파도를 가르며 2300㎞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땅 해변에 도착한다. 5~6주 전에 임신한 알을 낳을 셈인 것이다. 이는 거북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므로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도착해 바닷물이 닿지 않도록 해안으로부터 수십m 떨어진 후미진 모래사장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어미 거북이는 자신의 몸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30㎝ 정도 모래를 판 다음, 그 안에 들어가 머리만 모래사장 위로 삐죽 내놓고는 사방을 둘러본다.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해변이지만 모래사장 밑에서는 바쁜 발길질이 시작된다. 뒷지느러미로 더 깊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다. 비로소 거북이 알이 안주할 공간이 마련되면 어미 거북이는 그곳에 50~2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뒤 어미 거북이는 곧바로 모래로 둥지를 덮어놓는다. 맹금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점액이 마르지 않도록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세 시간여 동안 이 모든 일을 마친 어미 거북이는 다시 바다로 간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뒤 후회 없이 다시 바다로 가는 것이다.

2개월 정도 지나면 모래 속에 낳아놓은 알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신비롭게도 새끼 거북이는 알 속에서도 자기 생존을 위한 무기를 만든다. 그 무기는 ‘카벙클(carbuncle)’이라는 임시치아(臨時齒牙)다. 새끼들은 카벙클로 알의 내벽을 깨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이 자신의 자유를 억제한다면 스스로 자신만의 카벙클을 만들어야 한다. 이 벽을 깨지 못하면 새끼 거북이는 자신을 억누르고 규정하고 정의하는 환경이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다 빛 한번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을 것이다.

새끼 거북이가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다. 알을 깨느라 카벙클이 부러져 피가 난 새끼 거북이를 맞이하는 것은 아빠 거북이도 엄마 거북이도 아니다. 어미 거북이가 알을 낳기 위해 덮어놓고 간 30㎝가 넘는 두께의 모래다. 어미 거북이가 얼마나 단단하게 다져놓았는지 이 모래성은 웬만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새끼 거북이들이 이 모래를 뚫고 나오기까지는 3일에서 7일 정도가 걸린다. 새끼 거북이의 몸무게는 알을 깨고 나올 때에 비해 30% 정도 줄어든다.

새끼 거북이들은 섣불리 모래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모래 위에서는 바다 갈매기, 독수리, 그리고 사람이라는 괴물들이 이들의 연약한 목숨을 한순간에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새끼 거북이들은 숨죽이고 때를 기다린다. 한밤중이 되면 새끼 거북이들은 운명의 질주를 시작한다. 한순간에 쏟아져 나온 새끼들은 ‘자석 컴퍼스’라는 본능적인 감지 장치에 따라 자신들이 가야 할 길을 향해 일제히 움직인다. 이 과정은 바다에 도착하기 전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매우 위험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새끼 거북이들은 바다라는 생명을 만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저 높이에는 이러한 새끼 거북이의 행진을 응시하는 갈매기와 독수리가 있다. 아직도 촉촉한 새끼 거북이는 이들의 점심으로 제격이다. 갈매기와 독수리들이 쏜살처럼 하강한다. 신기하게도 그들의 돌진을 감지한 새끼 거북이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사지를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집어넣는다. 갈매기와 독수리가 백사장에서 발견한 것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껍데기뿐이다. 새끼 거북이들은 본능적으로 생존력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이러한 자발적이며 순간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바다는 새끼 거북이에게 천국인 동시에 지옥이다.

새끼 거북이는 바다에 입수한 뒤 48시간 동안 미친 듯이 수영을 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다의 가장 밑바닥 심연(深淵)이다. 이곳에는 자신들을 위협하는 큰 물고기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새끼 거북이의 인생을 시작한다. 바다거북의 첫 1년간 바다 생활을 관찰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시간은 ‘실종의 기간’이다. 이 1년을 홀로 살아남아야지 비로소 ‘거북이’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그 후 그들은 대개 떠다니는 미역에 몸을 실어 영양을 보충한다. 그리고 20년 정도가 지나면 짝짓기를 하고, 암 거북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새끼 거북이가 어른 거북이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확률은 0.1%다. 천 마리 중 한 마리만 생존하고 대부분은 이 기나긴 과정에서 죽는다.

나는 경계에 서 있다. 내가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굳어진 세계관을 깨야 한다. 그 편하고 단단하고 나를 길러준 알이 이제는 나를 감금하여 죽게 만드는 무덤도 되기 때문이다. 나를 감싼 세상이 알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내 입안에서는 임시치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수많은 모래 중에 하나라는 절실한 깨달음이 나의 임시치아다. 연약하지만 이 치아로 편견, 상식, 전통, 흉내, 부러움이라는 알을 깨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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