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쿠데타, 성공할까

2015.10.16 21:26 입력 2015.10.16 21:55 수정
백병규 | 시사평론가

말 그대로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막무가내의 밀어붙이기다. 못할 일이 없다. 자신들이 정한 교육과정도, 자신들이 검정한 교과서도 이제 와서는 모두 잘못됐다고 우긴다.

[세상읽기]역사 쿠데타, 성공할까

북한의 주체사상을 전파하고 있다고,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 여론을 호도한다. 다양하고 균형 잡힌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다며 국가가 정한 하나의 교과서로만 가르쳐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반대의 목소리가 아무리 거세도 자신들의 뜻대로 교과서를 다시 쓰겠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4대강을 그랬던 것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의 자연스러움과 그 다채로운 생태를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둑으로 막아 무미건조한 죽음의 강으로 정비해 버린 것처럼. 복잡다단한 역사의 물줄기를 국가의 이름으로 재단하고 정비하면 어떤 역사책이 나올까. 그 결과는 너무 뻔하다. 이른바 뉴라이트 교과서,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의 재판이 되리라는 것은 예정돼 있는 수순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정부·여당의 자가당착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국정화를 발표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의 시정과 교과서의 ‘이념적 편향성’에 따른 사회적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제껏 자신들이 만들고 적용해온 교육과정과 검정 심사가 잘못됐다는 자인이다. 이런 ‘실패한 국가’가 직접 교과서를 만들겠다니 자신들의 실수와 실패를 감추기 위해 아예 검정 심사 기준을 없애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더 큰 실수와 실패가 예견되는 까닭이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이 2013년 내놓은 ‘한국사 교과서 관련 정책리포트’는 국정교과서가 결코 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리포트는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권위주의 내지 독재국가”라고 못박았다. “우리나라도 검정제로 발행한 고교의 ‘한국근현대’ 교과서가 내용이나 제작 기술 면에서 국정제로 만든 ‘국사’보다 질적 수준이 제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 리포트는 “국어나 사회(역사 포함), 도덕(윤리) 교과목처럼 가치관과 이념의 문제, 사회적 합의가 매우 중요한 과목은 국정제로 운영할 수도 있으나 소수의 제한적인 집필자 참여로 교과서의 다양성이나 수준이 매우 낮다”는 점을 지적하고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할 가능성, 국가주의적 편향, 지나친 이념 홍보, 특정 정권의 치적 미화 등의 폐해를 열거했다. 그 단적인 사례로 “유신시대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과서를 보면 유신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독재정권을 옹호하였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예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적 논쟁을 불식시킬 수 있나. 이미 더 큰 분란과 갈등만 낳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이 이 무리한 국정화를 강행하는 이유는 국정화의 최종 종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란 것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이 역사교과서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는 것은 그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 또한 분명해지고 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의 주체다. 온전히 그 대화는 역사가의 몫이다. 물론 그것이 역사가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삶을 사는 데 있어, 또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데 있어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며,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역사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역사가적 자질이다.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또 역사적 사실에서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방향과 교훈을 찾고자 하는 ‘직시와 성찰의 미덕’이다. 그것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의 치열한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일 터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오로지 자신의 부친과의 대화에만 몰입해 있는 듯하다. 독재자 박정희라는 역사적 사실과 평가를 지우고 싶은 욕망이 국가의 이름으로 교과서를 다시 쓰겠다는 만용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과의 대화는 안중에도 없다.

성공할까. 불행히도 국정교과서 하나로 대적하기에는 불살라야 할 역사책들이 넘쳐나고, 묻어야 할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 또한 너무 많지 않은가.

국정, 다시 해보라. 그것은 곧 다시 쓰여질 운명임을 그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어쨌든 고통스럽지만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오늘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