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셈법

2018.08.13 20:51
정은경 | 문화평론가

프랑스 현대시를 전공한 그는 문학의 자율성 안에서 자족할 법도 하지만, 언제나 문학과 현실과의 관계를 묻는 일에 각별했다. 가령, 말라르메의 시에 대해 현실을 무한히 제거하며 순수를 지향하는 뺄셈의 시학이라고 칭하고, 한용운의 ‘임’을 들어 무한히 긍정하는 덧셈의 시학이라고 부를 때, 또는 초현실주의자의 소량현실론을 언급하고 사실주의자들의 인식의 전복을 강조할 때 그는 문학이 현실과 관계하는 방식에 대해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낯선 시들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도 그들이 “자신들의 말로 현실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설]밤의 셈법

그는 문학이나 드라마가 현실을 지우는 것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문학이 다른 현실을 꿈꾸고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에 희망을 거는 진정한 문학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문학적’이라는 상투화된 문법, 혹은 키치화된 문학을 경계했을 뿐 아니라 세상의 거창한 이론과 체계들을 구체적 경험이 깨부술 수 있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순진한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던 그는 이러한 희망이 언제나 꿈과 현실이 어긋나는 실패의 자리에서 변화와 함께 피어난다고 설파했던 견인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실패의 그 구체적 경험은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이 난초분을 기를 때의 무의식과 자식을 키우는 무의식, 혹은 투표의 무의식처럼 완강한 현실에 스며들어 다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 변화를 후천개벽이나 혁명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종교나 종파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죽이지는 않는” 사회의 도래에서 보았고, 전쟁이나 5·18민주화운동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그 누구도 해줄 수 없지만, “그들이 바라던 세상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것만이 복수라면 복수”라고 믿는 희한한 진보주의자였다.

그는 밤마다 깨어 달의 시간과 타자를 품는 몽상가였지만 낮과 밤의 시계를 재는 엄정한 학자였고, 그 낯선 것들을 이끌고 와 낮의 대지 속에 끊임없이 빚어넣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문학이 현실을 더하고 빼면서 현실을 교정하고, 현실이 봉인된 문학을 열어젖히면서 풍요롭게 한다는 믿음을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평소에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이런 모순에 갑자기 의문이 생기는 순간을 나는 문학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시간은 대부분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사회적 주제와 연결될 때 그것은 역사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또한 미학적 시간이고 은혜의 시간이고 깨우침의 시간이다.”(<사소한 부탁> 서문)

그는 문학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이 구체적 현장에서 포개지는 그 은혜의 시간을 칼럼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주었다. 가령, 보들레르의 악마 이야기를 세월호의 악마에 겹쳐놓을 때, <나의 청춘 마리안느>의 세상 끝으로 향한 청년 뱅상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의 식민주의를 비판할 때 그의 글에는 여러 층의 현실과 인식이 함께 포개진다. 나는 이러한 겹의 글쓰기를 그의 말을 좇아 ‘종합적 언어’라고 칭한 바 있다. 과거-현재-미래, 혹은 한국과 프랑스, 밤과 낮, 문학과 현실이 순차적으로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함께 공존하는 것, 그의 칼럼은 <컨택트>의 외계인의 동시성의 언어를 닮아있다. 거기에서 랭보와 말라르메, 그리고 봄의 소금인지 가을 소금인지를 아는 소금 맛의 귀신들, 곤반불레와 만주 오리찜이 이물스럽지 않게 다정히 앉아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현실을 들려준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시인은 랭보와 김수영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랭보의 시가 “현실을 지우는 황금빛과 황금빛을 지우는 현실을 동시에 바라”보았고, 김수영의 시가 “현실의 언어로 현실을 진솔하면서도 절박하게 그리는 가운데 다른 삶을 전망하고 끌어당”겼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이 현실을 몰라도, 현실을 받아쓰기’해도 안된다고 했으나 인간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정치적이고, 문학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몸소 이행하던 실천가였다. 무엇보다 그가 김수영에게 바쳤던 헌사의 한 자락, ‘그는 현실을 직설하였지만, 그가 맨땅에 내던진 말에는 심정의 특별한 깊이가 아닌 것이 없었다’는 그 자신, 황현산이라는 비평가의 순정한 언어에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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