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

2019.07.07 20:35 입력 2019.07.07 20:36 수정

“단도직입적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여러분은 지금 그냥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이 최근 펴낸 생태사상론집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스웨덴의 청소년인 그레타 툰베리가 던졌다. 툰베리는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앞으로 존재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질문했다.

[하승수의 틈]기후위기와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

이런 우려대로 지구는 심각한 기후위기를 맞고 있다. 7월4일 북극에 가까운 미국 알래스카의 기온이 섭씨 32.2도에 달했다. 초여름인데도 인도 기온이 50도를 넘어섰고, 프랑스도 45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전 지구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합의된 마지노선은 450PPM이다.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 수치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5월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 천문대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414.8PPM이었다. 작년 5월보다 3.5PPM 상승한 것이다. 450PPM이라는 숫자는 너무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위기를 모든 나라들이 동일한 강도와 형태로 겪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나라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겪을 수도 있고, 어떤 나라는 공동체 유지가 어려울 정도의 상황을 겪을 것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국토가 물에 잠기는 나라, 식량수입을 외부에 의존하는 나라가 가장 심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은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일단 먹는 것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식량자급률이 48.9%, 가축이 먹는 사료까지 포함해서 계산한 곡물자급률은 23.4%대에 머무르는 국가가 대한민국이다(2017년 기준). 게다가 삼면이 바다이고, 바다를 통하지 않으면 식량을 외부에서 들여올 수 없는 구조이다. 만약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지고 식량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이다. 식량은 외부에서 수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자기 나라 국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다른 나라로 수출할 식량이 어디에 있겠는가? 2010년 러시아에서 극심한 가뭄과 산불로 인해 밀 생산이 감소하자, 러시아 정부가 밀 수출을 금지시켰던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이런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그린란드 바이킹 얘기가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그린란드에 정착해서 살던 바이킹족은 한때 번성했지만, 유럽이 소빙하기를 맞으면서 추워지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 같은 그린란드에 살던 이누이트족은 살아남았지만, 바이킹족은 사라진 이유가 단지 기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린란드 바이킹족의 지배층이 다가오는 위기에 대비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했기 때문이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이 쓴 <파란하늘, 빨간지구>에 나오는 이 얘기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이 예측되는데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득권 세력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기후위기가 닥쳐도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폭염에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농민들, 노동자들의 처지를 그들이 생각할 리 없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돈과 권력으로 자신과 가족만의 안위는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위기’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기후위기는 생존과 안전의 문제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전기생산, 교통, 산업구조, 건축, 먹거리, 폐기물, 농업 등을 바꿔야 하고, 모든 정책의 초점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와 기후위기 대응에 둬야 한다. 마치 전쟁이라는 위기상황을 맞은 국가가 전쟁물자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기후위기를 막고 대처하는 것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치’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은 앞의 책에서 “지금 인류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환경위기가 아니라 정치의 위기이다”라는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말을 인용한다. 정치를 바꾸는 것이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관련된 또 하나의 진실은,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가 소선거구제를 택한 국가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살로몬 오렐라나(Salomon Orellana)의 연구에 따르면,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선거제도를 택한 국가는 1990년에서 2007년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45.5% 증가한 반면, 비례대표제를 택한 국가는 9.5%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에서는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이 배분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정당투표를 할 때 정책을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유권자들은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보듯이 녹색당 같은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면 경쟁자 입장에 있는 다른 정당들도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을 내놓게 된다. 정치에서 다루는 주제가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지금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제도 개혁안의 통과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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