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신은 어디에 있을까

천상의 절대자와 무력한 인간
인간의 고통을 방관하는 신
20세기 신학 고통받는 신 강조
신성은 인성의 반대말 아니라
고통받는 자와 함께하는 본성

코로나 시대, 신(神)은 어디에 있을까? 철학적 전통에서의 절대자는 인간에게 고통을 허용하고 그저 바라보거나 정죄하고 심판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무력한 인간을 닮은 신의 모습이 기독교 신학자들에게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바로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에서의 유대인 학살경험이 그 촉발제 역할을 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엘리 비젤(Ellie Wiesel) 교수는 자신의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밤(Night)>을 출간해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소설에서 자신이 있었던 수용소에서는 장대 위에 사람을 매달아 죽이는 형벌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마치 예수가 처형된 골고다 언덕을 연상하게끔 세 개의 장대 위에서 사람들을 죽였던 것이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학 교수

비젤은 어느 날 중간 장대에 한 어린아이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목도했다. 안타깝게도 어른보다 더 오랫동안 죽지 않고 장대 위에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매달려 있는 아이를 본 비젤의 일행은 함께 고통스러워했다. 그중 한 명이 외쳤다. “도대체 하느님은 무얼 하시는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 연이어 외침이 들렸다.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거냐고?” 비젤은 그때 자기 안에서 외치는 분명한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느님이 어디 계시냐고? 바로 여기 계시지. 그는 바로 저 아이와 함께 죽어가고 있다.”

20세기 적잖은 신학자들이 비젤의 글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희랍철학이 제기하는 신성과는 전혀 다른 신성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제한성과 무력함은 인성의 특징이자, 20세기 이후 현대 기독교가 보여주는 새로운 신성의 신비스러운 속성이 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신적인 본성은 인간의 유한한 인성과 정반대가 아니라, 서로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불안한 인간을 위해 가장 바닥까지 내려와 스스로 유약해진 신과 만나는 장소였다. 신은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모습이 아니라, 함께 고통받고 함께 죽어가는 방식으로 인간과 연합하고 일치감을 경험한다. 내가 보기에 십자가는 반드시 예배당에 가야만 경험할 수 있는 인간 구원의 매개물이 아니다. 십자가는 인간과 신이 고통 가운데 연합하는 치유의 장소다.

나치 정권을 반대하고 저항의 목소리를 외치다 39세에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가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다. 본회퍼는 당시 시대적 맥락 속에서 고통받는 신의 내재적 속성을 몸소 실천했던 위대한 신학자다. 그는 성서를 진지하게 읽다보면 우리로 하여금 결국 신의 무력함과 신의 고통으로 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에 본회퍼는 당대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이 지지한 나치 정권에 대항하여 예수처럼 기꺼이 고통받는 유대인들과 함께 죽어가길 선택했다. 지금도 그는 많은 현대 신학자들에게 고통 가운데 연합하는 신성을 보여준 혁신적인 신학자로 기억된다. 광화문집회 때마다 전광훈 목사가 신학자 본회퍼의 이름을 들먹이며 대통령의 하야를 위해 순교하겠다니 기가 막힌다.

신성은 바로 인성과 긴밀하게 연결된 신비한 속성이다. 신성은 절대로 인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신적인 속성은 우리 자신만 챙기도록 하지 않고 이웃과 연합하고자 하는 영혼의 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타인과 함께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우리를 낮추고 자신을 비워내는 순간 우리는 숨겨진 신성을 회복한다. 티끌 같은 자신의 용돈을 모아 마스크를 기부하는 아이들에게서 이런 거룩한 본성이 빛난다.

인류사에 있어서 집단적인 고통의 순간 영혼의 하나 됨을 경험했던 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패배자로 기억되지 않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용감한 혁신가로 기억된다. 그들은 인성과 신체가 비참하게 부서지는 순간에도 신성이 가진 연합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대, 종교인, 비종교인 모두 이런 거룩한 본성을 회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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