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

2020.10.22 03:00 입력 2020.10.22 03:04 수정

[조광희의 아이러니]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

어떤 글의 초고를 수정하면서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글 속의 어느 인물을 ‘대상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인물을 글의 전개를 위해 소모했을 뿐, 정작 깊이 연구하지 않았고 큰 관심도 없었다. 그런 ‘대상화’는 내가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대상화’를 많이 극복했거나 주의 깊게 피해간다고 내심 자신하고 있었다. 그건 오만이었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대상화’라는 알쏭달쏭한 말은 무슨 뜻일까. 사전적 정의로는 “어떠한 존재를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 말이 사용된 예들을 살펴보면, “인격적인 존재에서 인격적인 부분을 박탈하여 물건처럼 다루며, 대상화하는 대상을 자신과 달리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결여한 것으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성적 대상화’라는 표현은 수많은 인간적 특성을 지니고 다양한 관계망에 놓인 한 인간을, 단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취급하는 것이다.

‘대상화’는 더 어려운 말인 ‘타자화’와 깊이 연관된다. ‘타자화’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대상화하고 물질처럼 다룬다’는 의미로서 ‘대상화’와 비슷하게 사용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대상화’나 ‘타자화’는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말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쓴 글을 발견했다. “타자화란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한다’는 이른바 ‘조물주 의식’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는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다.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 되고 만 것일까. 거듭 고민한 끝에 혐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대상화’는 기득권자의 특권이다. 나는 ‘경상도 집안 출신’으로, ‘서울에 살며’, ‘자기 집이 있는’, ‘중년’의,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성’으로서 겹겹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당연하게 생각한 조건들이 하나같이 기득권이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쓰던 글을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글로 저지르는 ‘대상화’보다 심각한 ‘대상화’가 현실 세계에서 수없이 벌어진다. 못난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업가는 노동자와 소비자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대상화’한다. 권력에 취하고 승진에 목을 맨 검사는 피의자를 수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어떻게든 잡아넣으려 한다. 올망졸망한 정치인은 국민을 지위와 권력을 가져다 줄 표로만 계산한다. 구도가 아닌 기복의 화신이 된 종교인은 신자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다.

인간은 줄기찬 노력 없이는 늘 ‘대상화’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위대한 가르침들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거나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고 설파한다. 모두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다른 이를 나처럼 존귀한 주체로 대하라는 말이다.

‘대상화’의 극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기에, 사회는 점진적으로 제도를 마련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을 권력의 도구가 아닌 주인으로 세운다. 노동법은 노동자가 기계가 아님을 선언한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철폐하는 많은 입법들이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여전히 온갖 ‘대상화’가 차고 넘친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서로가 서로를 극단적으로 ‘대상화’하여 높은 효율과 성장을 달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세계가 놀랄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몸과 마음을 다쳤다. 사람들은 내 아이가 살아가면서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접받으리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효율성과 성과는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갈 물질적 기반을 이룬다. 그러나 서로의 한숨과 절규에 귀 기울이며 서로가 서로를 목적으로 대접하지 않을 거라면, 우리가 굳이 모여 살 무슨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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