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금관의 예수’

2020.12.21 03:00 입력 2020.12.21 03:03 수정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노래의 탄생]김민기 ‘금관의 예수’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김지하가 쓰고 김민기가 만든 이 노래는 마치 찬송가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기독교 민중가요의 효시가 된 노래로 교회 안에서도 많이 불렀다. 1973년 시인 김지하는 희곡 <금관의 예수>를 써서 원주 가톨릭회관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동생처럼 따르던 김민기에게 연극무대에서 쓸 노래를 부탁했다. 김민기는 원주로 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이 곡을 썼다.

그 당시 공연을 주선한 이는 훗날 서강대 총장을 지낸 박홍 신부였다. 그는 김지하에게 교회의 자기비판이 담긴 희곡을 주문했다. 김지하는 예수에게 가시면류관 대신 금관을 씌워 권력과 타협하는 종교를 풍자했다. 거지, 문둥이, 창녀를 돕는 수녀, 이들을 등쳐먹는 경찰과 악덕 업주, 이들을 외면하는 대학생과 신부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희곡 <구리 이순신>, 담시 ‘오적(五賊)’ 등으로 유명한 김지하는 이 희곡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김지하의 부탁으로 노래를 만든 김민기도 무사하지 못했다. 카투사로 미8군에 입대한 김민기는 집회 현장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바람에 최전방으로 쫓겨갔다. 그곳에서 퇴역하는 선임하사를 위해 만든 노래가 ‘늙은 군인의 노래’였다. 이 노래는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제목 때문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제목으로 순화되어 양희은이 불러 발표했다.

다시 세밑이다. 신나는 캐럴이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기 힘들다. 어쩌면 낮은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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