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숨길 수 없는 자리

2021.10.13 03:00 입력 2021.10.13 03:02 수정

[송혁기의 책상물림]마음을 숨길 수 없는 자리

용인시 처인구에 이 일대의 옛 이름을 딴 남곡재(南谷齋)가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거하며 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고려 유신 이석지를 기리는 재실이다. 그는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이른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이다.

남곡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석지의 동년 급제자인 이색의 <남곡기> 덕분이다. 이 작품은 이석지가 남곡에 사는 것이 은거인지 출사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선비는 도리가 실현될 만한 세상을 만나면 출사하여 많은 이들과 선을 함께하고 그렇지 않으면 은거하여 홀로 선을 행해야 한다고 여겨왔기 때문에, 은거와 출사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색은 이석지가 은거하는 것도 출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의아한 답변을 내놓는다. 정치권력과 이권에서 완전히 떠나 자족적인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심을 오가고 많은 이들을 만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은거를 부러워하면서 그의 출사를 기대하는 이색의 복잡한 심경이 읽히는 글이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철저하게 숨겨야 진정한 은거다. 반면 출사하는 사람은 몸을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그 마음 역시 언행으로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색의 기대와 달리 이석지는 때를 만나지 못해 은거로 생을 마감했고, 목은(牧隱)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이색은 끝내 은거를 감행하지 못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명으로 사신 가기를 자원하며 고려왕조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이색은 결국 정쟁의 와중에 아들까지 잃고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과분한 임무를 이미 맡고 있다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끝내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의 이야기로 연일 뉴스가 넘쳐난다. 성인군자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마음을 숨길 수 없는 자리에 나섰다는 두려움은 가졌으면 한다. 이석지가 숨길 수 없었던 마음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직언과 백성에게 끼친 사랑으로 드러났다. 그런 이석지가 출사할 만한 세상이 오기를 바란 이색의 소망이 지금도 간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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