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발생하고 나서, 많은 국민들이 거의 매주 탄핵촉구 촛불시위에 나설 때 외친 말은 ‘이게 나라냐’였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아가며 탄핵촛불시위에 동참한 많은 국민들은 당리당략을 뛰어넘었고,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국민들은 ‘최소한의 염치’를 알았다. 그랬기에 일부 수구세력들의 극렬한 저항을 뚫고 대한민국은 불가능해 보이던 탄핵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부족주의 진영논리를 극복한 결과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정확히 5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가 2년째 전 세계를 할퀴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대선경쟁에 선 양강후보들 그리고 그 지지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염치도 없어 보인다. ‘공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염된 지 오래다. 두 후보에 대한 본인, 가족, 주변인사들의 비리의혹과 도덕성 시비가 연일 터지는데도 양쪽은 내로남불이다. 자신의 비리와 의혹을 물타기 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기획된 비리의혹도 다반사이다. 묘서동처(猫鼠同處)라 했던가? 편향된 평론가들과 지식인인 체하는 이데올로그들도 서로서로 한편이 되어 후안무치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을 넘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보려는 기세들이다. 예측건대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가 될 가능성이 높고 당선자도 역대 최저의 득표율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통상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여태까지 터진 의혹, 비리, 언행만으로도 두 후보는 대통령은커녕 조그마한 공공기관의 장도 못할 사람들이다. 국민들의 평균적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되겠다고 한다. 저잣거리의 많은 국민들은 이들이 통상의 청문회과정을 거친다면 진작에 사퇴했거나 지명철회되었을 후보들로 보고 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탄핵이라도 하면 되지만 후보들은 탄핵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형의 부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아들의 성매매 의혹까지 불거진 사람이 여성표를 구걸하는가 하면, 부인과 장모의 비리 의혹이 연일 터지는 사람이 공정과 상식을 말하고 있다. 대통령은 수만명의 공직자와 공공기관의 장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데 차제에 그들에게 유사한 비리의혹이 제기되면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이들의 사과를 보면 진정성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사과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사과하면서 기자와 국민들을 훈계하는 후보도 있다. 어차피 ‘우리 지지자들은 나를 지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오만함이 구석구석 묻어난다. 경선과정에서도 여러 번 드러났지만 국민들과 지지자들을 진심과 논리로 설득하는 대신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빠져나간다.

여당의 이재명은 조삼모사와 말 뒤집기를 여러 번 했다. ‘범주형 기본소득’이라는 말장난으로,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나누어주는’ 게 핵심인 기본소득을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한’ 현금수당으로 치환하였다. 불로소득을 근절하겠다고 하면서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과도한’ 종부세를 경감시키고 양도소득세 ‘중과’도 추가로 유예해주겠다고 한다. 이는 먹튀를 공개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말이다.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을 막기 위해 다주택자와 일주택자를 구분하지 말자는 주장은 이미 재정개혁특위 시절부터 제기되었던 내용이었다. 당시 이에 반대하면서 ‘다주택자=투기꾼’이라는 억지 공식을 적용하여 밀어붙였던 인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캠프 내에 부지기수인 그들은 지금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의 변신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불리한 유주택자들의 민심을 만회해보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부동산 가격급등에 청년들의 빚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선거공학만 눈에 보인다.

야권의 윤석열캠프는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경제정책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주변을 보면 정치적 복권을 노리는 박근혜키즈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유세의 성격을 갖는 종부세를 순자산세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세율조정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총부채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설명은 전혀 없다. 약자와의 동행을 얘기하지만 반노동·반인권적 발언은 계속 나오고 있다.

후보들은 국민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중남미를 괴롭혀온 포퓰리즘의 망령들이 대한민국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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