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신당’, 천개의 눈을 가졌는가

2023.10.25 20:27 입력 2023.10.25 20:29 수정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익히 알려진 자유민주연합, 열린우리당, 국민의당도 총선 전 등장했다. 이합집산 정치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첫째, 권력자의 자기 세력화에 대한 욕망이다. 소수 정권일수록 ‘대통령의 당’은 참기 힘든 유혹이다. 16대 총선 3개월 전인 2000년 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내각제 배제 문제로 자민련과의 공조가 파기된 터라 여소야대 한계를 자력으로 극복하려 했다. 86그룹·전문가를 영입하고, 이인제의 국민신당도 규합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했다.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개혁국민정당, 민주당 개혁그룹, 한나라당 탈당 세력이 헤쳐모여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호남 기반의 왜소한 여당을 바꾸는 것에 공감했지만 당을 깨는 것엔 회의적이었다. 그러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당 정체성을 계승하고, 정치개혁·전국정당을 선언하자 신당의 구심으로 섰다.

둘째, 한쪽이 결집하면 다른 쪽도 결집하고 한쪽이 분열하면 다른 쪽도 분열했다. 19대 총선 때 ‘박근혜 비대위’ 중심으로 뭉쳤던 새누리당, 시민사회세력(혁신과통합)과 합친 민주통합당 사례는 결집 효과다. 2016년 총선 때 야권이 새정치민주연합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지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진박감별사·옥새파동 여파로 극심한 갈등을 겪은 것은 분열 효과다.

셋째,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보수진영은 판을 흔드는 데 소극적이다. 내부 싸움에서 이긴 쪽이 자산 대부분을 차지해, 진 쪽이 당 밖에서 뭘 해보려 해도 대부분 실패했다. 그러니 비주류와 지분 협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지역·가치 중심 연합체인 진보진영은 지분 협상에 능하다. 합당, 신당 창당 때 힘의 균형이 맞지 않아도 5 대 5 지분을 주고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과정에서 비주류도 수시로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내년 총선은 어떨까. 이합집산 규칙에다 현재 정치 환경을 더하면 상시 격변기가 될 것 같다. 양극화 정치가 제3세력 공간을 넓히고, 선거법이 바뀌지 않으면 다수 비례·위성정당 시대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여야 모두 비주류 리더라는 행위자 요인은 내분의 틈을 벌리고 있다. 다만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해온 보수가 먼저 움직이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이미 5~6개 신당이 꿈틀거리고, 그 선두에 윤석열 신당이 있다. 이대로는 안 되니 국민의힘 변화가 필요한데, 마땅한 구심도 없어 대통령 중심으로 총선을 준비하려는 것이고, 윤 대통령 입장에선 친위 세력을 다수파로 만들어 ‘대통령의 당’을 완성하고, 총선도 승리하면 금상첨화다.

‘윤석열 신당’의 여러 갈래 중 리모델링 방식이 있다. 참신한 인물을 공천해 여당 색깔을 바꾸고, 주류 교체도 이루자는 것이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 장악력이 크지 않고, 인요한 혁신위도 당 회생을 이끌 구원투수로는 한계가 있다. 재창당이 대통령 사당화를 심화할 뿐이라는 비주류 반발이 강해 목표를 달성할진 지켜봐야 한다. 신인규 전 상근부대변인 탈당,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의 혁신위원 거부는 심상치 않은 저항을 예고한다.

신설 합당은 유력한 경로다. 국민의힘 바깥에 세력을 조직화한 뒤 당 대 당으로 합치는 방안이다. 당내에선 공천 이탈을 최소화하고, 당 밖 조직엔 국민의힘 직행을 주저하는 범야권 인사들이 합류할 수 있다.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역할론과 밀접한 방식이다. 김 위원장은 “신당 창당 생각도, 총선 역할도 없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띄우고, 11월 국민통합위 지역조직과 간담회를 추진키로 한 것은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부각되는 것에 “여권 기득권의 반발”(당 고위 관계자)이 강하고, 당 외연 확대에 도움되는 세력도 마땅치 않아 실행을 속단하긴 이르다. 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 국정기조 쇄신을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제한적 역할만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탈당한 뒤 신당을 만드는 시나리오는 고려할 것 같지 않다. 30%대 지지율로 탈당 동참 세력을 모으기란 쉽지 않다.

보수 재편의 큰길은 누구도 제대로 가본 적 없어 고단한 여정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 출발선부터 갈팡질팡하는 데는 윤 대통령 책임이 9할 이상이다. 대통령의 불통·배제 리더십이 집권여당 위기를 불렀고, 정치 위기를 키운 것 아닌가. 여권의 새출발이 순항하려면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정치도, 세상도 ‘한 개의 눈’으로 좁게 보지 않겠다고, ‘천 개의 눈’(브레히트)으로 넓게 살피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구혜영 논설위원

구혜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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