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정치와 이재명 리스크

2024.03.03 20:05 입력 2024.03.03 20:08 수정

한국사회는 불평등도 불공정도 모두 참기 어려운 지경이다. 하지만 공공선을 저버리는 사익 추구와 위선적 내로남불로 자살골을 차는 이상한 정치가 전개되면서 조건의 평등보다 공정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그리하여 여야 할 것 없이 말로는 공정 약속을 무수히 해왔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공정 약속조차 저버리고 배신을 때렸다. 청와대, 거대 양당 모두 사익에 눈멀고 공정을 배신하는 경쟁에 몰두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이는 나라와 국민이 그 비용을 전가받아 병들게 한다. 그들은 전 국민이 빠져든 배신감, 불신감, 우울감, 무력감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한국정치는 변화무쌍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에 오차범위 밖으로 앞섰다는 소식이다. 최대 요인으로 민주당 공천파동과 민심이반이 손꼽힌다. 사법리스크를 잇는 이재명의 ‘공천 리스크’가 ‘김건희 리스크’를 앞섰다는 말도 있다. 둘째, 재정건전성과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일변도였던 윤석열이 뜻밖에 의대증원정책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 국정지지율이 상승했다. 이는 보수권력이 공공성을 자기의제로 가져갈 때 어떤 확장정치를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여야가 진작 각종 공공성 의제를 놓고 경쟁했으면 어땠을까. 여권의 무책임 개발공약에 아무 견제 역할도 못하고 합세까지 한 민주당은 의대증원 의제에서도 뒤졌다. 작년 말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후 경제·민생·안전에 바닥을 보인 대통령 직무수행능력,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등으로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우세했었는데 충격적 반전이다.

문재인 정부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윤석열 정부가 공정 문패를 달고 집권했듯 다시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의 공천 자충수와 방향감 상실이 상대편에 반사이익을 주고 있다. 이재명은 이렇게 근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통합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 정당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당을 확실하게 만들겠다.” 그런데 이재명은 딴 사람이 되었다. 시스템 뒤에 숨어 약속을 배신하고 총선 참패를 예고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박용진은 무슨 영문인지 하위 10% 점수를 받았다. 한편 총선시민네트워크가 선정한 공천부적격자 민주당 소속 7명 중 4명이 친명계였는데 3명(권칠승·김병욱·정청래)이 단수공천, 1명(전혜숙)이 경선으로 확정되었다.

우리는 촛불항쟁으로 87년 이래 최대의 역사적 기회를 가진 문재인 정부의 좌초와 촛불시민에 대한 배신을 맛본 사람들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전방위적인 퇴행적 국정운영과 무도한 권력오남용을 겪고 있으며 총선을 앞두곤 자기 안에 갇힌 여야의 공천 배신, 특히 이재명 민주당의 자해적 행태를 보고 있다. 이런 거듭되는 배신의 정치를 겪으면서 우리는 한국정치와 사회의 질에 이전과 판이하게 다른, 위험한 빨간신호등이 켜졌음을 느낀다.

첫째, 과거 실패에서 반성할 줄 모른다. 민주당과 문재인은 나라다운 나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약속의 배신과 어이없는 권력상실, 촛불시민에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 부분에 대해 어떤 책임 있는 평가와 성찰을 내놓았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집권할 때 공정과 상식을 내걸며 국민통합정부가 되겠다고 한 약속을 얼마나 지켰나. 그리고 박근혜가 저지른 국정농단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나.

둘째, 심각한 문제는 현 집권세력이 나라와 민생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음에도 많은 국민들은 이를 대체할 민주적 대안권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신감과 불신감이 매우 높고 사분오열 상태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과 문재인 두 정치인은 어떤 역사적 책임의식을 갖고 있을까. 한 사람은 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든 말든 자기생존을 위한 사당 만들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보이며 또 다른 사람은 마음 편하게 동네책방 놀이를 하고 있다.

셋째, 가장 큰 우려는 사회연대감의 약화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형식적 공정과 능력주의, 불로소득주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소득 재분배와 약자 지원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고 있다. 이와 맞물리며 바탕에 있는 게 사회연대감의 약화다. 한배를 타고 가며 함께 미래를 가꾼다는 시민적 공통감이 현저히 옅어졌다. 이는 정치적 불신·무력감과 상승작용하며 각자도생 문화를 심화하고 작은 무책임정부와 우익 포퓰리즘이 서식하는 사회적 기반이 된다.

우리는 심각한 위험에 빠졌다! 4월 총선은 길게 내다봐야 한다. 결과가 어찌될지 벌써 두렵다. 이 두려움과 사회적 우울증을 치유할 묘책은 어디에 있을까.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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