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작은 국숫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5평 남짓한 규모에 메뉴도 매우 단출해서 잔치국수와 멸치 칼국수가 전부였습니다. 유동인구도 많지 않은 이곳에서 과연 장사가 잘될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뒤로하고, 우선 잔치국수 하나를 시켜보았습니다.
드디어 등장한 잔치국수는 잔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푸짐한 양입니다. 잔치국수의 핵심은 감칠맛 나는 시원한 국물입니다. 보통은 멸치, 다시마, 말린 표고버섯 등을 끓는 물에 우려내어 육수를 만드는데, 멸치에는 이노신산, 다시마에는 글루탐산, 표고버섯에는 구아닐산과 같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런 유용한 성분들은 왜 재료 안에 가만히 있지 않고 국물로 확산되어 나오는 걸까요?
확산이란 물질이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멸치 육수를 예로 든다면, 멸치 안에 모여있던 물질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농도가 옅어지고 희석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넓게 퍼지려는 경향을 과학자들은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엔트로피란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과학 용어인데요, 모여있지 않고 흩어질수록 무질서도는 증대됩니다.
이러한 확산은 크게 3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첫째는 열입니다. 물질이 이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조리할 때 가해지는 열이 이러한 에너지의 공급원이 됩니다. 따라서 미지근한 물보다는 팔팔 끓는 물에서 우려내야 원하는 성분을 제대로 얻을 수 있겠죠. 두 번째 요인은 확산되는 물질의 크기인데, 아무래도 그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확산이 수월하게 일어납니다. 멸치에 포함되어 있는 이노신산과 같은 작은 분자들은 짧은 시간만 우려내도 바깥쪽 육수로 충분히 확산돼 나오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크기를 갖는 단백질, 지방과 같은 고분자들은 확산을 위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진한 곰탕의 경우는 장시간 우려야만 하는 것이죠.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확산되어 들어가는 매질의 상태입니다. 육수의 경우는 보통 그 매질이 물이기 때문에, 물질이 확산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갈비찜처럼 유용한 맛성분들을 농도가 높은 육수에서 고기 안쪽으로 확산시켜야 할 경우라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충분히 숙성시키고, 고온에서 오래 가열해 고기 조직을 가급적 연하게 만들죠. 그러면 연해진 고기 틈 사이로 맛성분들의 확산이 잘 일어납니다.
한편 확산은 유용하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는 데도 쓰입니다. 예를 들어 수육은 고기를 삶는 과정에서 잡내나 기름 등을 바깥으로 확산시켜 고기의 담백한 맛만 남깁니다.
지금은 서민 음식이 되었지만, 사실 잔치국수는 말 그대로 잔치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싹 비운 국수 그릇을 바라보면서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를 살 수 있게 되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