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앞에 천막을 치는 까닭

대학원생들과 함께 일본 도쿄대학에서 열린 학술행사에 갔다 왔다. 한·중·일 세 나라의 대표적인 대학의 하나라 할 성균관대, 칭화대, 도쿄대에서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20~30대 신진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나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정치에 대한 학술 발표를 하고, 타국의 동세대인들과 친교도 하는 연례행사다. 올해에는 각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도 참가해서 더 뜻깊었다. 도쿄대학의 유명한 지식인인 다카하시 데쓰야, 고모리 요이치 교수도 젊은 학자들을 위해 축사를 하고 특별 강연을 했다.

[정동칼럼]교육부 앞에 천막을 치는 까닭

세 나라 학생들은 동아시아와 각국의 새로운 정치문화, 민족주의의 발현 양상, 일본의 기억정치, SNS를 통한 새로운 소통과 언어정치, 이주와 경계인, 그리고 젠더 구조의 변화 등에 대해 영어로 발표하고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토론했다.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저절로 연구자로서의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부러워했다. 나는 30대 후반이 돼서야 처음으로 외국에서 열린 학회에 가서 발표를 했고 비슷한 분야의 외국인 학자와 대화해봤다. 그만큼 예전 한국의 학문 환경은 지금과 많이 달랐고 한국의 문화적·학문적 위상도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또 나는 자연스럽게 저 젊은 학자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앞으로 한국 사회는 이런 훌륭한 인문사회과학자들을 얼마나 새로 길러낼 수 있을까? 학생들이 이번에 도쿄대학에 와서 경험치를 쌓고 국제적인 역량을 높이는 데 든 비용은 국가가 지원한 인문역량강화사업에서 나왔다. 보람 있던 3년간의 이 사업은 2월에 완전 종료된다. 정말 우리의 인문사회과학 전공 대학생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칭화대와 도쿄대의 동세대들과 계속 어깨를 나란히 하여 성장하고 활약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인구절벽, 양극화, 포스트휴먼 같은 공동체의 새로운 문제에 대처하는 융합적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 한류열풍 등 국제사회에서 날로 높아져가는 나라의 위상에 걸맞은 이상과 담론을 주조하고, 한국에 부여된 새 글로컬리티와 통일·화해 시대에 필요한 지적 실천의 주체를 양성해야 한다. 선배 및 아비 세대의 앎의 식민성을 극복하고 과거와는 다른 한반도에서 사유하고 교육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이런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나? 한국 대학은 이상한 자멸충동에 빠져있어 이에 관해 단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어한다. 기업도 거의 내지 않는다. 단지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정부가 조금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16일부터 ‘강사제도 개선과 대학연구교육 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한다. 엄동설한에 시민의 통행도 별로 없는 세종시에 천막을 차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상황이 급박하고, 문제해결의 열쇠를 일단 교육부가 갖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새 법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대학들은 꼼수를 부리거나 문제를 등록금 인상으로 몰아가고 있다. 결국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들, 그리고 전체 공동체에 돌아간다. 당장 인문사회과학·예술·글쓰기 강좌가 대폭 줄고 있다. 국제적으로 수준 높은 앎과 소통 능력이 인터넷 강좌와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길러질까?

내년 하반기 강사법의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미리 손을 쓰는 탓에, 이미 전국의 수많은 강사들이 해고되고 있다. 연세대 같은 학교에서도 기초 학문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과목을 대폭 줄였다. 작은 대학들에서는 얼마나 많은 강사들과 비정규직 교수들이 일자리와 가르칠 기회를 잃었는지 잘 파악도 안된다.

이런 상황인데 누가 대학원에 와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사람이 되려 할까? 흔히 이를 학문 ‘후속’ 세대 재생산 문제라지만, 대학원생부터 비정규직 교수까지의 연구자들은 바로 지금 학문 연구와 교육에 투입되고 있다. 그렇기에 ‘후속’이 아니라 학문 ‘현재’ 세대이다.

지금부터 약 6개월간의 정책과 싸움이 향후 수십년 한국 고등교육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 같다. 단결밖에 길이 없는 듯한데, 억압과 파편화를 강요받아온 대부분의 비정규직 교수와 강사들은 지금도 침묵 속에 두려움과 모욕을 견디고만 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광화문에도 함께 천막을 차려야 하는 거 아닐까?

더불어 국가 학문·지식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위정자들이나 적지 않은 시민이 대학원을 그저 학위를 따서 높은 학벌을 취득하는 데로 인식해왔다는 것은 이 나라의 큰 불행이다. 그래선지 대학원 교육을 위한 제대로 된 법과 정책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고급두뇌를 구제하고 또 활용할 국가박사 제도와 세계적인 고등 인문사회과학원의 설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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