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조’ 든 대학, 암울한 한국의 미래

2019.06.02 20:28 입력 2019.06.02 20:30 수정

한국 대학은 올해 8월,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시행을 앞두고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일방적인 싸움이기에 현장은 더 처참하다. 2010년 5월 한 시간강사의 자살 이후, 시간강사의 지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해 시작된 사회적 논의가 가져온 아이러니한 결과다. 대학마다 전임교수 강의시수 늘리기와 대형 강의 권고, 2년치 강의 개설안 제출, 학문별 특수성을 무시한 채 대학본부가 직접 강사를 임용하거나 4대 보험 가입자로 겸임 혹은 객원교수 채용을 종용하면서, 젊은 강사들이 대량 해고된 것이다. 실제 대학교육연구소가 4년제 사립대학 152개교를 대상으로 전체 교원 대비 전임교원 비율을 분석한 결과, 강사법 유예 기간인 지난 7년 동안 시간강사 수가 37.2% 줄어들었다고 한다. 반면 비전임교원, 기타 교원과 초빙교원 수는 76.8%가 증가했다.

[정동칼럼]‘망조’ 든 대학, 암울한 한국의 미래

이런 상황이 가져올 부정적 파급력은 심각하다. 첫째, 학문후속세대 죽이기다. 어느 교수나 강사시절을 경험했고 절망이 지배하는 시기에도 미래를 상상하고 버텼을 것이다.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버팀목 삼았을 것이다. 강의는 좋은 교육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 교수법 훈련이자 경력 쌓기 과정이다. 그러므로 강사 대량 해고 사태는 개인의 생존권 위협이자 교육자 양성 과정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학문후속세대의 싹은 트기도 전에 말라 죽을 것이다.

둘째,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패기 있고 연구역량에 막 물이 오른 젊은 연구자가 강의도 잘한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 혹은 한창 진행 중인 연구에 자극받아 새로운 이론과 세상의 변화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학습자와 세대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어 상호이해의 폭도 넓다. 이런 분들이 대거 해고되고, 은퇴교수, 외부 기업이나 기관에 소속되어 연구나 강의를 취미로 하는 분들로 대체되면 교육 전반의 질적 하락과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심각해질 것이다. 인식 차이가 크고, 역동적·사회적 현상에도 무지한 비전공자들에 의해 진행될 대형 강의실의 강의를 상상해 보라.

셋째, 학문 죽이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연구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똑똑하고 영리한 학생일수록 대학원 진학을 꺼리게 될 것이다. 돈벌이도 안되고 장래도 보장되지 않는데 직업으로 공부를 선택하겠다는 건 망상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기왕에 박사학위 소지자들도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학기별로 강의 개설이 보장되지 않는 소수 학문 분야, 간학제적 성격을 가지거나 탄탄한 학제 구조를 가지지 않은 연구 분야들은 더욱 축소되어 자취를 감추게 될지 모른다. 융·복합 학문 육성이라는 허구적 울림에 가려 지금은 보이지 않겠지만 강좌도 열리지 않는 학문 분야에 매진하는 연구자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대학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넷째, 차별의 공고화와 대학경쟁력의 하락이다. 한국 대학이 신자유주의체제에 함락되었다는 진단은 일면적이다. 누적된 봉건가부장의 적폐가 뿌리 뽑히지 않은 채 성과주의가 착목된 기이한 생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열화된 학벌구조, 학연과 연고주의, 남성중심적 위계질서가 내적 공정성과 민주성을 근본부터 흔드는 곳이다. 남성이란 성별이 가진 특권과 공고화된 학연주의가 연결되어 있는 곳에서 강사법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소수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의하면(시사저널, 2019년 1월23일자), 한국 대학의 여성 교원 중 71.32%는 비전임교원이며, 시간강사가 5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남성의 경우, 전임교원이 46.41%이고 시간강사 비율은 25.26%라고 한다. 실제 주변의 많은 여자 박사들은 이 같은 불안정하고 불공평한 학문생태계에 절망하고 있다. 비정규직 연구원, 강사로 갖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결혼과 임신, 육아와 가사노동 등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경력단절을 겪다가 마침내 강사법 시행으로 해고되고 있는 현상에 분노하고 있다. 대학진학률 면에서 이미 앞서고 있고 탁월한 학력을 보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학문 현장에서 사라지고 ‘학문하기’ 자체를 포기할 때 한국 대학 전반의 연구역량 하락은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한국 대학은 더 이상 예리한 문제의식을 키워나가며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를 습득하고 민주주의를 실습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곳이 아니다. 그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거쳐가는 학원 수준으로 몰락했다. 강사법 시행을 대비하는 한국 대학의 자세는 이런 절망적 상황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사회의 성장은 불가능하기에 미래는 더 암울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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