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소는 누가 키우나?

2019.10.03 20:30 입력 2019.10.03 20:38 수정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경제가 위기라고들 아우성이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대안을 가지고 하는 논쟁은 잘 보이질 않는다. 정치권은 오로지 총선 대비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진영 싸움에만 몰두해 있으니, 우스갯소리라곤 하지만 “소는 정말 누가 키우나?” 싶은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요즈음이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간단히 둘러보자. 현재 주요국 중앙은행은 돈풀기에 열중이다. 그만큼 경제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 9월 초 은행들의 지급준비율을 올해 들어 세번째 낮췄다. 이 조치로 9000억위안, 한화로 약 151조원의 자금이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더 풀릴 예정이다. 4년 만에 이자율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월가의 주요 금융기관들은 지난 10년간 중국의 정부, 기업, 가계를 포함한 총부채 증가액이 30조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도 돈을 더 풀어 경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정동칼럼]정말로, 소는 누가 키우나?

일본의 돈풀기 정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명목금리를 0% 수준으로 내린 지 20년이 지났고, 막대한 정부 채권을 발행해 부족한 세수를 보전해 온 지도 오래다. 9월 현재, 정부채권 발행액이 980조엔에 달하는데,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80%를 넘는다. 가히 ‘채권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채권의 절반에 육박하는 456조엔을 일본중앙은행이 매입해 보유 중이다. 하나 주의할 점은, 일본이 장기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은 무분별한 돈풀기 정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은 그 정반대다. 1990년대 초반 버블경제 붕괴 이후에도, 오랫동안 과감하게 확대재정을 실시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재정비용을 더 크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 됐다.

유로존은 어떨까?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달 중순, 예금금리를 마이너스0.5%로 0.1%포인트 더 내렸다. 은행들이 현금을 갖고 있으면 손해가 될 테니, 대출을 더 늘리라는 의미다. 또한 11월부터는 매달 200억유로, 약 26조원가량의 채권과 금융자산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유로존에는 이미 마이너스 수익률 채권이 넘쳐나는데, 이자율을 더 낮춰 정부와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춰주겠다는 의도다. 나홀로 잘나가던 독일마저 지난 8월 국채발행에 실패해 독일중앙은행(Bundesbank)이 개입해 국채를 매입해 줘야만 했다.

미국에선, 미국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연준)이 지난 9월 중순 금리를 2%에서 1.75%로 인하하고, 보유자산 매각도 중단키로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매입했던 미국채 및 모기지 채권 규모가 4조5000억달러가 넘었었는데, 그 자산들을 매각해 오다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연말까지 한 번 정도 더 금리를 인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지난달 중순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뉴욕연준이 긴급자금 750억달러를 투입해 월가의 유동성 위기를 진정시키기도 했다.

이런 돈풀기 기조는 한국에 어떤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걸까? 한국 정부도 돈풀기를 적극 실시해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다. 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인 확대재정, 금융완화 정책을 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단 그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는 걸 막는 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사실 한국의 정부부채 수준은 대단히 양호한 상태이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OECD 국가들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부채 관련 이자조달 비용이 2015년 정점 이후 하락 중이라는 것이다. 경기침체기임에도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식의 재정운용을 한 것이다. 연간 수지타산 맞추기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장기투자의 관점으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 특히 이자조달 비용이 경제성장률을 과도하게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확대재정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국채시장도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데 국회가 관련 법규, 제도개혁을 위해 열심히 일해줘야 하는 분야다.

한편 금융정책도 재정정책과 정교한 조율이 필요하다. 은행권이 작년 역대 최대의 이자이익 실적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이자수익만으로 14조원 이상을 벌었다고 한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고려하면 가계들이 부채상환에 그만큼 더 시달렸다는 얘기다. 부채상환으로 더 힘들어지면 돈을 아무리 더 풀어도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으로 연결될 수 없다.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여온 부동산시장으로 풀린 돈이 더 흘러들지 못하도록 선제조치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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