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2010.08.17 21:47 입력 2010.08.18 01:33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오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김 전 대통령마저 서거하자 민주화세력을 위시한 많은 국민들은 깊은 슬픔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전 대통령은 산업화 시대에 이어 민주화 시대를 연 뛰어난 정치가이자 그 민주화 시대를 풍요롭게 한 탁월한 국정 최고책임자였다.

분단에 맞선 ‘지상의 우리 이웃’

무릇 부재(不在)가 존재를 증명하듯이, 최근 우리 현실을 지켜볼 때 김대중 정부의 업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 확대, 민주주의 후퇴, 그리고 남북간 긴장 고조를 돌아볼 때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떠올리는 사람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의례적 헌사가 아니라 산업화를 일군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복지국가, 그리고 평화정착의 기틀을 튼튼히 세운 지도자였다.

더욱이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으로 선출되기에 앞서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온 치열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된 <김대중 자서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민주화운동 자체이자 상징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백을 읽노라면, 그는 국민과 유리된 ‘천상의 지도자’가 아니라 냉전 분단체제에 맞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남모를 고통과 절망을 견뎌야 했던 ‘지상의 우리 이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김대중 정부라 해서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기간에 외환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했다. 또 집권 말기 일련의 비리 의혹들은 적잖은 아쉬움을 갖게 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노무현 정부가 이은 10년은 결코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인권·평화·복지·양성평등·사회통합을 포괄한, 2007년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이 말한 것처럼 ‘되찾은 10년’ ‘위기 극복의 10년’이었다.

문제는 현재다. 서거한 지 1년이 된 지금 김 전 대통령을 많은 국민들이 더욱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와 비교해 느껴지는 현실의 곤궁(困窮)에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김대중 정부의 주요 업적 중 하나인 남북한 평화공존은 중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고인이 평생토록 일궈온 햇볕정책은 통일이라는 규범적 이상과 상이한 체제간의 대화라는 현실적 목표를 결합시킨 ‘규범적 현실주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정치·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 다수의 불안을 증대시켜 왔다. 포용정책 추진과 남북협력 강화를 통한 통일비용의 감소는 고려하지 않은 채 통일세를 신설하자는 제안을 보면, 김대중 정부의 ‘장기주의적 국가전략’의 탁월함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고인의 가치 계승 발전시켜야

정부와 여당만이 문제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잇는 민주당도 ‘김대중 정치’를 돌아봐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국민의정부가 내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에 집약돼 있었다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은 그 정치의 방법론이었다. 오는 10월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국민생활 우선정치’ ‘담대한 진보’ ‘진보적 범야권 연합정당 건설’ 등 다양한 담론들은 고인의 철학과 방법론을 더욱 풍부히 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는 비약하지 않는다. 질 높은 민주주의 성취가, 복지국가 구축이, 남북한 평화 공존과 번영이 우리 사회의 중차대한 과제인 한 ‘김대중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역사는 그렇다고 반복하지 않는다. 김 전 대통령의 적자임을 자임하는, 서민과 중산층의 벗임을 자처하는 민주화 세력과 리더들이 고인의 가치와 정치를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키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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