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법질서 시장’ 줄리아니의 몰락

2021.06.25 20:35 입력 2021.07.14 16:13 수정

세계 최대 도시 뉴욕은 1970~1990년대 중반 악명 높은 범죄도시였다. 갱들이 판을 치고, 길거리에선 총기사고가 난무했다. 그 시절 연 2000여명이 뉴욕에서 총격으로 숨졌다는 말도 있다. 영화 <배트맨>과 <조커>의 배경인 가상의 범죄도시 ‘고담’(Gotham City)의 기원도 뉴욕이다. 과거 뉴욕에서 염소를 많이 키웠기 때문에 생긴 별명(Goat’s Town)이 기원이지만, 신의 저주(God Damn)를 지칭한 것이라는 해석에 더 힘이 실렸다.

뉴욕의 저주를 푼 사람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이다. 1993년 뉴욕시장에 당선된 뒤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뉴욕 치안에 적용했다. 낙서와의 전면전을 벌이고 무임승차와 노상방뇨 등을 단속하자 중범죄까지 줄어들었다. 그는 ‘법질서 시장’으로 칭송받고, 재선에 성공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01년 9·11 테러 때는 전립선암 투병 중인 몸을 이끌고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했다. “내일도 뉴욕은 여기에 있을 겁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강해질 겁니다.” 그가 낸 성명은 한동안 회자됐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1년 말 그를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하지만 줄리아니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면서 추락했다. 세금 탈루 등 각종 의혹을 덮는 데 앞장서고, 트럼프 집권 후 개인변호사로 활동했다. 트럼프가 2019년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민주당 대선 주자였던 조 바이든 부자의 부패 의혹을 조사하도록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 개입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 대선을 두고 ‘부정선거’였다는 음모론을 퍼뜨려 트럼프의 불복 행보도 부추겼다.

줄리아니가 결국 철퇴를 맞았다. 뉴욕주 항소법원은 24일(현지시간) 트럼프의 대선 패배를 법원에서 뒤집기 위해 거짓 주장을 펼친 줄리아니의 변호사 자격을 정지했다고 AP·블룸버그통신 등이 보도했다. 법원은 줄리아니가 “법원, 의회, 대중에 명백히 거짓이며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들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다른 주에서도 그의 변호사 활동을 허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궁지에 몰린 줄리아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뉴욕 하늘을 바라보며 “빌어먹을(god damn)”이라고 혼잣말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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