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김훈 중위 순직 인정

군 ‘권총 자살’ 발표 19년 만에 “공무 중 사망” 국립묘지 영면

2017.09.01 22:21 입력 2017.09.01 22:40 수정

부실한 초동수사로 의혹 키워…권익위 권고 5년 만에 입장 선회

김 중위 등 ‘진상규명 불능’ 사건 당사자 5명 전원이 ‘명예 회복’

1일 국방부는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해 숨진 김훈 중위에 대해 19년 만에 순직 결정했다. 김훈 중위가 1996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아버지 김척 장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김훈 중위 시신을 부검한 국방과학수사연구소 이상한 법의과장이 1999년 1월1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 중위의 머리 부분 출혈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1일 국방부는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해 숨진 김훈 중위에 대해 19년 만에 순직 결정했다. 김훈 중위가 1996년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아버지 김척 장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김훈 중위 시신을 부검한 국방과학수사연구소 이상한 법의과장이 1999년 1월1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 중위의 머리 부분 출혈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인 김훈 육군 중위(사망 당시 25세·육사 52기)가 순직을 인정받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던 김 중위가 1998년 2월24일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경계초소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지 19년 만이다.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지난달 31일 고 김훈 중위를 비롯해 ‘진상규명 불능’ 사건 당사자 5명에 대해 열띤 논의 끝에 전원 순직으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로써 경기 고양시 벽제에 있는 육군 부대 임시 봉안소에 안치돼 있는 김 중위의 유골은 국립묘지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됐다.

■ 의문스러운 자살 발표

김 중위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사망 당시 김 중위는 판문점 JSA 내 경계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된 김 중위가 권총 자살을 했다고 발표했다. 유가족은 크게 반발했고 언론에서도 김 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당시 육군과 미군 범죄수사대(CID)가 1998년 2월24일~4월29일 진행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최종 발표했다. 자살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으나 타살의 정황이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논리였다.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75·육사 21기)은 김 중위가 자살했을 리 없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실제로 김 중위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취했다는 부자연스러운 자세, 김 중위가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에서 화약흔이 나온 점 등은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김 중위의 손목시계가 파손되는 등 그가 격투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단서들도 발견됐다.

최초 현장감식이 진행되기 2시간 전에 이미 자살이라는 보고가 이뤄졌고, 군 수사당국이 현장 증거를 제대로 보존하지 않는 등 부실한 초동수사는 의혹을 더욱 키웠다.

김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등 심각한 군기문란 행위를 했고 김 중위가 이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살해됐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유족이 재수사를 요구함에 따라 육군본부 검찰부의 2차 수사(1998년 6월1일∼11월29일), 특별합동조사단의 3차 수사(1998년 12월9일∼1999년 4월14일)가 이뤄졌지만 군은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뒤늦은 명예회복

JSA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진 촉망받는 엘리트 군인의 의문사는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사였다. SBS의 추적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8년 이 사건을 대중에게 알렸고, 2000년 이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했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김 중위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군의 초동수사 과실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위자료 1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김 중위의 사인에 대해 ‘현재 알 수 없는 상태’(진상규명 불능)라고 규정했다. 군의 초동수사가 부실해 자살·타살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8월 김 중위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국방부는 권익위 권고 5년 만에 김 중위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 중위 유족에 대한 사과 여부에 대해 “대통령과 장관이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처럼 숭고한 헌신과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충분한 보상을 할 것”이라면서 “(사과 여부는) 장관이 출장 중이라 복귀하면 보고드리고 지침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편 1969년 5월30일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된 임인식 준위(당시 33세)도 48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군 의문사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군 의문사 조사·제도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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