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초동수사로 의혹 키워…권익위 권고 5년 만에 입장 선회
김 중위 등 ‘진상규명 불능’ 사건 당사자 5명 전원이 ‘명예 회복’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인 김훈 육군 중위(사망 당시 25세·육사 52기)가 순직을 인정받았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던 김 중위가 1998년 2월24일 판문점 인근 비무장지대 경계초소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지 19년 만이다.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지난달 31일 고 김훈 중위를 비롯해 ‘진상규명 불능’ 사건 당사자 5명에 대해 열띤 논의 끝에 전원 순직으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로써 경기 고양시 벽제에 있는 육군 부대 임시 봉안소에 안치돼 있는 김 중위의 유골은 국립묘지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됐다.
■ 의문스러운 자살 발표
김 중위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다. 사망 당시 김 중위는 판문점 JSA 내 경계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군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된 김 중위가 권총 자살을 했다고 발표했다. 유가족은 크게 반발했고 언론에서도 김 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당시 육군과 미군 범죄수사대(CID)가 1998년 2월24일~4월29일 진행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최종 발표했다. 자살의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으나 타살의 정황이 없으므로 자살이라는 논리였다.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75·육사 21기)은 김 중위가 자살했을 리 없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실제로 김 중위가 자살을 시도했을 때 취했다는 부자연스러운 자세, 김 중위가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에서 화약흔이 나온 점 등은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김 중위의 손목시계가 파손되는 등 그가 격투를 벌였을 것으로 추정하게 하는 단서들도 발견됐다.
최초 현장감식이 진행되기 2시간 전에 이미 자살이라는 보고가 이뤄졌고, 군 수사당국이 현장 증거를 제대로 보존하지 않는 등 부실한 초동수사는 의혹을 더욱 키웠다.
김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등 심각한 군기문란 행위를 했고 김 중위가 이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살해됐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유족이 재수사를 요구함에 따라 육군본부 검찰부의 2차 수사(1998년 6월1일∼11월29일), 특별합동조사단의 3차 수사(1998년 12월9일∼1999년 4월14일)가 이뤄졌지만 군은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뒤늦은 명예회복
JSA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진 촉망받는 엘리트 군인의 의문사는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사였다. SBS의 추적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8년 이 사건을 대중에게 알렸고, 2000년 이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개봉했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김 중위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군의 초동수사 과실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위자료 1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김 중위의 사인에 대해 ‘현재 알 수 없는 상태’(진상규명 불능)라고 규정했다. 군의 초동수사가 부실해 자살·타살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8월 김 중위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국방부는 권익위 권고 5년 만에 김 중위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 중위 유족에 대한 사과 여부에 대해 “대통령과 장관이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처럼 숭고한 헌신과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충분한 보상을 할 것”이라면서 “(사과 여부는) 장관이 출장 중이라 복귀하면 보고드리고 지침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편 1969년 5월30일 근무 중 숨진 채 발견된 임인식 준위(당시 33세)도 48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군 의문사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군 의문사 조사·제도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