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어기고, ‘방탄 단식’ 자인한 이재명

2023.09.20 18:18 입력 2023.09.20 18:39 수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동료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1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동료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에 대한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20일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부결을 호소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 3개월 만에 대국민 약속을 파기한 것이다. 또한 단식 21일 차에 스스로 ‘방탄 단식’을 인정한 꼴이 됐다. 당대표가 당을 내로남불의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영장 청구는 황당무계하다”며 “검찰의 영장 청구가 정당하지 않다면 삼권분립의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 당 소속 의원들에게 부결을 호소하며 표 단속에 나선 것이다.

이 대표는 “제가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당당하게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었다”며 “윤석열 정권의 부당한 국가권력 남용과 정치검찰의 정치공작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저들의 꼼수에 놀아나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국회) 비회기에 영장을 청구하면 국회 표결 없이 얼마든지 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다”며 “그럼에도 윤석열 검찰이 정치공작을 위해 표결을 강요한다면 회피가 아니라 헌법과 양심에 따라 당당히 표결해야 한다. 검찰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같은 당 소속 동료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 구속영장의 부당함을 알렸다.

지난 2월 당시와 지금 상황은 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이날 부결 호소는 대국민 약속을 스스로 번복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영장 청구가 부당하다는 근거 중 하나로 ‘비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하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6월 연설에는 영장실질심사 출석 조건에 ‘비회기’라는 단서를 달지 않았다. 그는 당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했다. “국민이 ‘민주당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까지 변화와 개혁을 멈추지 않겠다”던 자신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에 대해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지난해 5월 6·1 지방선거 충북 지원 유세에서 “불체포특권을 제한해야 한다”며 “10년 넘도록 먼지 털듯이 탈탈 털린 이재명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는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불체포특권 폐지는 이 대표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가 펴낸 대선 공약집을 보면 “성범죄와 같은 중대범죄의 경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 추진”이라는 항목이 포함됐다. 그런 이 대표는 지난 5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던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주권자를 무시하는 약속 파기 정치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날로 21일째 이어가고 있는 단식의 정당성도 스스로 훼손한 꼴이 됐다. 결국 이 대표의 단식이 체포동의안 부결 여론을 환기하고, 영장실질심사를 거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 됐다. 이 대표 호소대로 민주당이 또다시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면 제 식구만 감싸는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에는 찬성하고, 이 대표와 노웅래·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시켰다.

비이재명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말 뒤집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본인이 온 국민 앞에 생중계로 이야기한 것을 그냥 뒤집는 말인데, 죄지은 것도 없고 증거도 없다면서 정말 (영장심사가) 무서운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이제 대표에게 무슨 지도력이 생기겠나”라고 했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방탄 지옥’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대표가 져야 된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이재명하고는 같이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친이재명계 박찬대 최고위원은 SNS에 “오로지 정적 제거를 위한 체포동의안에 가결한다는 것은 그 취지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검찰의 부당한 탄압을 용인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쏟아지는 총탄을 대열의 선두에서 온몸으로 맞고 있는 대표를 지키지는 못할망정 뒤통수에 돌멩이를 던지고 등에 칼을 꽂아서야 되겠나”라고 했다. 일부 친명계 의원들은 이 대표의 부결 호소 글을 공유했다.

국민의힘은 “더 이상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당당하게 걸어서 가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거짓말하고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말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의 말 바꾸기, 거짓말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제1야당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더 이상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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