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2024.02.08 06:00 입력 2024.02.08 10:13 수정 김재중 기자    권정혁 기자

⑧바람직한 양극화, 경쟁하되 타협하라

자문위원 4인 좌담회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기획 자문위원들이 2일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중도의 개념과 정치 양극화 완화 방안 등을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기획 자문위원들이 2일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중도의 개념과 정치 양극화 완화 방안 등을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한국 사회에서 진보나 보수에 속하지 않는 중도의 실체를 탐구한 경향신문 신년 기획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시리즈가 막을 내린다. 이번 기획은 설문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및 분석, 시민 참여 실험극, 20·30 청년 세대 르포 등을 통해 그간 막연하거나 부정적으로 취급됐던 중도의 참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획 초기부터 참여한 자문위원들은 지난 2일 좌담에서 중도 내부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참여가 낮은 방관자 중도, 반대로 참여와 관심이 높은 심판자 중도라는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돼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혀낸 것이 이번 기획의 가장 큰 성과라고 입을 모았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저마다 중도 확장 전략을 고심하고 있는 정치권이 이번 기획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기획이 시작된 동기 중 하나인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가 나왔다. 정당이나 유권자들의 이념적 선호가 뚜렷해지는 이념적 양극화는 정당의 변별력을 높이고 책임 정치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상대 정당과 지지자에 대한 비호감과 혐오가 커지는 정서적 양극화, 갈등과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화나 타협을 변절로 깎아내리는 정치 문화는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됐다. 정치권에서 우후죽순처럼 추진되는 제3당 혹은 신당의 앞날은 밝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신당 추진 세력들이 뚜렷한 정체성을 앞세우기보다 기존 정당과의 차별화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좌담에는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참석했다.

-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의 성과와 아쉬운 점을 평가해 달라.

박선경 = 중도 유권자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준 게 중요했다. 보통 중도라 하면 정치 지식이 낮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했는데 심판자, 방관자라고 했던 것처럼 중도 안에 다른 두 집단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다만 패널조사를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작년 말에 한 번만 조사했는데 신당들이 부상하고 후보자 등록한 다음에 한 번, 총선 끝나고 한 번 더 했으면 중도에 대해 훨씬 동태적으로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신현기 = 중도의 다양성을 짚어낸 것에 더해 정치인과 일반인의 이념적 분포를 비교해 준 것이 좋았다. 일반인은 가운데가 높은 정규분포인데 국회의원들은 좌우가 높은 쌍봉형으로 나왔다. 일반인들은 이념적 중도가 많고 정치인들은 양쪽으로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행정학자로서 정치가 양극화됐을 때 무엇이 균형을 잡는가 하는 부분에서 공무원 집단을 조명해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으로 공무원 집단은 센트리스트(중도주의자)라고 불린다. 예컨대 프랑스 제3공화국 당시 정치가 좌우 양쪽에서 싸울 때 관료집단이 균형을 잡는 역할을 했다. 관료집단도 같이 비교해 한국에서도 그들이 실제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는지 검증해 보면 좋았을 것 같다.

허석재 = 지난 대선은 양극화가 심했다기보다 각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유난히 높았다. 두 후보(이재명·윤석열) 진영에서 서로를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 감정적 골이 어느 때보다 깊어졌고, 정치가 계속 그런 쪽으로 흘러가면서 중도라는 개념이 화두로 떠오르는 듯하다. 정치권에서도 중도 확장이니 포섭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상황에서 중도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 것은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있었다. 다만 그 표적이 움직이는 표적이었다. 중도가 잘 잡히지 않는 표적이라는 걸 확인한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소득이기도 하다. 7회 기사 중에 한 의원이 중도가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규정했던데,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는 조사에서 진보 혹은 보수라고 응답했지만, 실생활에서는 갈등하기 싫어서 중도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소개됐다. 중도가 아닌 사람들은 확증편향에 빠져서 공론장보다는 자기네들끼리 통하는 얘기만 하면서 양극화가 심화한다는 서사가 있다. 그런데 이번 기획에서 진보, 보수가 모두 확증편향에 빠져있다는 시각도 과장돼 있다는 발견이 의미 있었다. 조사 결과 중도의 이미지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우리 정치권에서 중도 확장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배경일 것이다. 그런데 중도 확장이라고 하면서 이념적 위치 조정이라기보단 이미지 쇄신에 그치는 측면이 강하다. 기존 정치인들을 많이 쳐내는 게 개혁 공천처럼 되고, 의원 정수를 줄이는 것이 중도 확장처럼 비친다. 중도 중심의 담론이 더욱 통합적인 정치를 낳을 수도 있지만, 도리어 정치 불신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한울 = 이번 기획의 가장 큰 차별화 지점은 중도에 관한 고정관념, 즉 중도가 투표도 안 하고 입장도 없고 무식하고 끌려다니는 집단이 아니라 그 안에 이질적인 분포가 존재함을 밝힌 것이다. 특히 참여하는 중도, 심판 중도라고 불린 이들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함의가 있다. 소위 강경파들은 중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지지층만 결집하면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를 데이터로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 제시한 문제의식이 후반부에 제대로 연장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중도를 심판 중도와 방관 중도로 세분화했던 분석을 지속하지 못하고 중도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으로 돌아갔다. 20·30세대와 공정성에 관한 내용도 아쉬웠다. 공정에 민감한 것을 20·30의 특징으로 봐서는 안 된다. 공정에 민감한 것은 20·30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대마다 공정의 기준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서성일 선임기자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서성일 선임기자

이념적 양극화는 유권자가 찍을 이유가 분명해진다는 것이고 선거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지게 한다. 이런 형태의 양극화는 좋은 것이다.

- 박선경

- 총선을 앞두고 제3당 이슈가 뜨겁다. 신당 추진 세력들은 대체로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데 평가와 전망을 한다면.

정한울 = 가장 큰 문제는 제3당이 거대 양당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기존 당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양당 욕만 할 뿐이다. 정의당은 제3당 자리를 오래 지켜왔는데 불과 몇 달 만에 만든 이준석 신당보다 세가 약해진 것은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선거 공학적인 제도의 문제에는 단식하고 모든 것을 거는데, 자기들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제3당 추진의 배경에는 여론조사에서 무당파 비율이 30% 후반까지 늘어난 게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20% 초반대로 크게 떨어졌다.

허석재 = 과거 안철수의 국민의당과 현재 이준석 신당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정치 바깥에서 변화의 바람으로 들어왔고, 이준석 신당은 기존의 정당 정치 내부에서 쪼개져 나왔다. 이런 상황에선 이준석 신당이 과거 안철수만큼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 거라고 본다. 현재 이준석의 신당에 지지가 어느 정도 나오는 것은 이준석 개인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각인됐고, 대선주자급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정의당이 유력한 인물들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그것이 바람직한가를 떠나 지지 확대에 큰 타격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균열 구조 안에서 인물이 보내는 신호에 큰 영향을 받는데, 정의당이 이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정의당이 제도 개편에 지나치게 몰두한 것은 패착이다. 정의당은 병립형으로 인해 큰 정당들에 비해 손해를 입었지만, 다른 소수정당에 비해서는 혜택을 본 측면도 있다. 확고한 제3당의 지위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다당제 전환에만 매달리게 되면 다른 군소정당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비례대표가 아예 없는 다수제 국가에서도 제3, 제4당이 활동한다. 이들이 소수당에 불리한 선거제 개혁을 요구하긴 하지만, 사회적 기반을 갖고 꾸준하게 활동한다. 제도의 유불리만이 아니라 정당의 기반을 닦는 일에 더 공을 들였어야 한다.

정한울 =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결국 대선을 앞두고는 기존 정당에 끌려가게 되고, 독자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학습되었다. 제3세력을 꿈꾸는 사람들은 다시 기존 정당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의와 각오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이준석은 보수 진영에서 이재명과 같은 느낌으로 인식되고 있고, 민주 진영에서 이낙연은 한동훈과 같은 급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인식이 깨지지 않는 이상, 제3세력의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선경 =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3당은 수요 없는 공급이라고 본다. 다당제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은 다당제를 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다당제가 그렇게 좋다고 여기지도 않는 것 같다. 뭔가 새로운 메시지를 내는 사람 있으면 찍어주는 것으로 그 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당제가 해법이라는 말도 수요 없는 해법이라고 본다. 제3정당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로 다뤄지는 정치적 이슈가 정책이나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정략이나 정치공학이라는 점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이미 정치공학에 대한 학습이 돼 있다. 지금 제3당을 이끄는 정치인들이 결국 기존 정당으로 돌아갈 구멍을 엿보면서 하는 발언이란 것을 유권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신현기 = 나는 생각이 다르다. 수요가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표방하는 것과 별개로 실제 계급적 기반은 똑같다고 본다. 그러면 대변되지 않은 사람들이 생긴다. 누군가는 서민, 중산층 대변해 주어야 하는데 양대 정당은 본질과 동떨어진 사회적 이슈 가지고 말싸움만 하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은 항상 존재하고 그들을 누군가를 대변해 주고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데 그걸 하는 정당이 지금 없어서 수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거대 양당이 변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서성일 선임기자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서성일 선임기자

한국에서 대통령은 좋든 나쁘든 ‘제3당’ 같은 역할, 중도적이고 민생 중심의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정파적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신현기

- 중도가 주목을 받는 이유로 정치 양극화 현상이 거론된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어느 수준이라고 보나.

정한울 = 양극화를 연구할 때 정의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아 계속 헷갈리는 지점들이 나온다. 양극화라고 학계에서 제일 많이 나왔던 게 이념적 양극화하고 정서적 양극화가 있는데, 양극화됐다는 건 어찌 됐든 중간쯤에 모여 있다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차원은 정치 엘리트, 즉 정당과 유권자라는 두 차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식의 측면으로 보면 정당은 양극화된 건 파악이 된다. 2006년부터 데이터를 살펴보면 정당의 이념적 지표를 찍으라고 했을 때 참여정부 시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념적 격차가 크지 않았다. 지금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거리가 벌어졌고, 민주당은 정의당과 거의 차이가 안 난다.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양당의 이념적 위치가 양극화된 게 맞다. 그런데 사람들의 태도나 입장도 그때는 모여 있었고 지금은 벌어진 것인가에 대해선 확신이 들지 않는다. 이념이라는 게 무엇이고 어떤 차원에서 측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리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그러다 보니 특정 이슈에 대해선 벌어지는 게 확인이 되는데 과연 그게 한국 사회의 이념 때문인지 자신 있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허석재 = 말씀하신 대로 이념이라는 게 신념 체계, 즉 사회적 신념들이 체계를 이루어야 하는데 우린 그렇게 볼 만한 것들을 별로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시작했고, 분단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제약된 조건 속에서 경쟁을 하다 보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야당 사람들조차 보수를 천명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진보, 보수를 묻지 않고 여당 성향이냐, 야당 성향이냐를 물어봤다. 신념의 체계성이 약하다 보니 김대중 정부도 거리낌 없이 시장주의적 개혁을 하고, 노무현 정부도 이라크 파병, 법인세 인하를 했다. 길게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이념적 축이 없었고, 정당들도 거리 두기를 많이 안 했던 것 같다. 어떤 신념의 체계에 따라 정치 행위자들이 편성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그러한 이유로 이념적 거리가 좀 멀어졌다고 해서 양극화됐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러한 양극화가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신현기 = 이념적으로 봤을 때 정치인은 확실히 양극화돼 있지만 시민은 스스로 중도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데이터상으로 명백하다. 그리고 상대 당 지지자를 내 친구로 삼고, 배우자로 삼고, 이웃으로 삼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다. 관계성 측면에서 시민 사이에서도 정서적으로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

박선경 = 정치학 개념 중에 ‘분화’와 ‘정렬’이 있다. 분화는 양 진영의 정책적 차이가 분명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진영 간 정책적 차이는 도리어 민주주의에 득이 된다. 이념적 양극화는 유권자가 찍을 이유가 분명해진다는 것이고 선거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지게 한다. 이런 형태의 양극화는 좋은 것이다. 정렬은 당내 구성원의 성격이 비슷해지는 것이다. 가령 3김 시대 민주당 지지자는 호남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뭉쳤지만 이념적 차이는 컸다. 지금은 정렬이 잘 된 상태이다. 정당 엘리트와 지지자가 같은 생각을 하느냐의 측면에서도 정렬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극화가 나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분화든 정렬이든 이념 간 차이가 분명해지는 이념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책임성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여러 데이터를 보면 지금 한국이 이념 양극화가 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국은 의원 간 이념 차이가 점점 벌어져서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은 겹치는 지점이 하나도 없어졌지만, 우리는 시기에 따라서 정당 간의 이념적 거리가 좁아졌다가 넓어졌다 했기 때문에 완전히 양극화됐다고 말할 수 없다.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서성일 선임기자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서성일 선임기자

미디어가 어떤 정치 세력 내부의 중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주장을 찾아다니고 전파해서 상대를 극단에 있는 것으로 위치 지우려는 메커니즘이 있다.

- 허석재

- 정치적 양극화와 중도층 증가, 정치권의 중도 확장 시도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

신현기 = 시민이 이념적 측면에서 중도가 많은데 정서적 측면에선 왜 점점 벌어지는가에 관해선 중도라고 하는 계층에는 여러 계층이 있는 것 같다. 방관자 중도, 또는 양당 정치가 싫은 사람, 소위 말하는 무당파, 심판자 중도에 더해 새로운 세대의 특성도 있다. 한국에서 기성세대는 진보는 남북협력, 재정확장, 관대한 복지를 하자는 것이고 보수는 반대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20대를 보면 기성세대보다 젠더 감수성은 높지만 북한·중국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적인 동시에 복지 친화적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일관성에서 벗어나니까 이념을 물으면 ‘나는 중도인가보다’라고 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허석재 = 최근 정당 정치의 세계적인 현상은 좌우 정당들이 집권을 위해 계속 중도로 왔다는 것이다. 유럽의 사회민주당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중도로 오니까 전통적 지지층이 실망하고 소외감을 느끼면서 소위 말하는 정당과 유권자 간의 탈 제휴가 일어난다. 이러한 기성 정당에 대해 실망한 유권자가 포퓰리즘적 동원의 대상이 되면서 정당 체제가 다시 극화된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선 보통 신생 정당들이 양극에서 일어나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제3, 제4 정당들이 모두 중도를 지향한다. 어떤 이념적인 내용이 있다거나 그간 대표되지 않는 어떤 내용에 대한 것보다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의식해 중도로 가는 것 같다.

- 정치인들이 시민의 양극화를 자극하는 건가, 시민이 양극화돼 있어서 정치인이 따라가는 건가.

허석재 = 양극화를 정치 엘리트가 추동하는가 아니면 양극화된 대중을 엘리트가 추수하는가의 인과관계에 관한 질문은 많은데 답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정치 세력들이 양극화를 추동하고 동원한다고 보지는 않는데 감정적으로 격발하는 측면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여성 군 복무 같은 이슈는 그 자체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내용인데 정치인들이 찬반을 두고 갈등하고 그러지 않는다. 쟁점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취해서 잃을 표는 확실한데, 얻을 표는 불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안을 놓고 정치권이 갈등해서 사회가 양극화되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기 당의 주변에 있는 강한 지지층들을 더 결집하고 흥분되게 만들고 하는 측면에선 엘리트들이 감정을 격발시키는 측면이 있다.

신현기 = 시민들이 정서적으로 멀어진 이유는 정치인 효과가 분명 있다. 연구를 보면 정치적 차이를 크게 인식할수록 정서적으로도 양극화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건 아이러니한 문제이다. 양당 간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입장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좋은 시민’이다. 그런데 좋은 시민일수록 정치적 양극화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박선경 = 정서적 양극화는 한국에선 최근에 연구가 시작된 개념이라 근거 자료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2012년에 실시된 조사와 비교하면 벌어진 건 맞는데 민주화 시기부터 비교해 본다면 유권자든 엘리트 차원에서든 지금이 그렇게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인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민주화 과도기에 활동한 의원들은 죽고 사는 문제였을 텐데 그땐 정서적으로 평화로웠고 지금은 엄청나게 싸우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지역주의가 심할 땐 주유소에서 번호판 보고 다른 지역 번호판이면 기름을 안 넣어준다는 루머가 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심한가 하면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위기팔이론’이라 생각한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  서성일 선임기자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 서성일 선임기자

현재 제3당의 문제점은 거대 양당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당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기존 당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데 양당 욕만 할 뿐이다.

- 정한울

- 정치 양극화 원인으로 미디어의 영향도 빠지지 않는다.

신현기 = 미디어 문제는 분명히 있다. 미국에서 나온 연구를 보면 사람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민주당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공화당 사람은 어떤 모습인가?’라고 물었을 때 가장 극단적인 민주당 사람, 가장 극단적인 공화당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나온다. 좌파 혹은 우파라고 하면 어떤 특정 이미지가 생성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디어가 표상하는 반대 당 이미지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거의 일치한다는 거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민주당 혹은 공화당 지지자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박선경 = 미디어의 문제에 관해 얘기하자면 미디어가 정치 뉴스를 정치인 간의 스포츠로 중계를 한다. 정책이나 진지한 토론은 뒤로 밀린다. 독자들이 싫어하는데도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기사를 읽으면 누가 누구 욕하는 것만 나와서 읽기 싫다고 한다. 학자들도 미국에서 새로운 개념이 생기면 일단 수입한다. 우리한테 적용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가져온다. 우린 오히려 이념 양극화가 안 돼서 문제인데 그냥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다고 하니까 우리도 그렇다고 한다. 학자들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개념을 쓰지 말아야 하고 언론도 생각 없이 받으면 안 된다.

허석재 = 미디어가 정치 양극화를 추동한다기보다 정치 불신을 조장함으로써 양극화 심화 기반을 제공하는 것 아닌가 싶다. 최근 언론 기사 보니까 국회의원 5선, 6선으로 누릴 것 다 누리고 또 출마하려 한다고 비판했던데 미국에선 정치인이 은퇴하면 서비스, 즉 봉사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미국 의원이 우리보다 급여를 적게 받는 것도 아닐 텐데 정치를 하고자 하는 것 자체를 불온시하고 자리를 탐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어떤 정치 세력 내부의 중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 주장을 찾아다니고 전파해서 상대를 극단에 있는 것으로 위치 지우려는 메커니즘이 있다. 이런 상호 간의 소용돌이가 실제보다 정치세력 간 거리를 더 멀게 느껴지게 만든다.

- 해법은 무엇인가.

박선경 = 계속 강조했지만 정치적 양극화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정서적 양극화’는 해결되어야 한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보면 상대 정당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데 이 말이 정답인 것 같다. 엘리트나 지지자들이 상대를 너무 적이라 생각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정한울 =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회의 발전과 혁신에 필수적이므로 멀어지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간의 이념적 차이가 줄어들고 합의와 수렴이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허석재 = 엘리트 정치인 차원에선 일종의 동업자 의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는 서로 입장이 다른 걸 확인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고 공적 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 당파는 타협을 통해 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입장을 온건화하는 것이다. 그런 온건화가 곧 중도화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뭔가를 한 것에 대해 미디어의 평가가 굉장히 인색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통과시키니까 조·중·동, 경향·한겨레 가릴 것 없이 다 비판했다. 입법 성과라고 평가해주지 않았다. 과거사법도 그랬었다. 정치권에서 이룰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최대주의적인 요구를 가지고 문제를 바라본다. 그렇다 보니 정치인들이 동업자 정신을 발휘할 유인이 없다.

정한울 = 과거에는 당의 주류나 리더들이 중도이고, 비주류에 힘이 없는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극단에 있었는데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한쪽 이념에 치우쳐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히려 유력자들이 중도적 스탠스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양극화의 가장 큰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고 본다. 이 사건들은 감정적으로 맺혀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거나 보복하는 것은 리더들의 자세가 아니다. 리더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했을 때 과거 자신을 사형에 처하게 했던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추진하고 그랬다. 그가 살아온 길을 생각하면 보복하는 게 맞는데 나라의 정치적 안정이라든지 이런 걸 생각한 것이다. 저는 그런 게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신현기 = 양당제에서는 강력한 야당이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과 정당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양당은 서로 싸우고 대통령은 정당 문제를 초월하여 사회 문제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대통령은 좋든 나쁘든 ‘제3당’ 같은 역할, 중도적이고 민생 중심의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은 정파적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선경 = 국회의원들의 경험이나 역량 부족은 정치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유입이 적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운동권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들이나 노련한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나 지금은 신참들이 정치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리더가 중도적이고 신참들이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곤 하지만 지금은 센 얘기를 하는 신참들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반정치 정서 때문이다.

정한울 = 각 당의 지지층이 동질화되었다는 것은 정당이 내부의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당내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배척하는 때도 있다. 과거엔 갈등적인 상황에서 타협안을 밀어붙여서 해결하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언젠가부터 여야 사이에 타협하는 것이 배신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기획 자문위원들이 2일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김재중 특별취재팀장(왼쪽 아래) 사회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  서성일 선임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중도, 그들은 누구인가’ 기획 자문위원들이 2일 경향신문사 여다향에서 김재중 특별취재팀장(왼쪽 아래) 사회로 좌담회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 신현기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허석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 서성일 선임기자

- 시민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신현기 = 시민 수준의 정서적 양극화는 결국 상대방과의 대화, 이견을 듣는 습관과 관련이 있다.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점점 그런 이견을 들을 가능성이 낮아지고, 특정 주장만 반복해서 들으면서 강화되는 에코 체임버에 갇힐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에는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과 다른 집단과 정치 대화를 많이 할 것을 추천한다. 정치와 종교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나는 일상에서 반대편과 얼굴 맞대고 정치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공통의 언어를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공통의 신뢰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예컨대 검찰이 한쪽에서는 정의의 사도로, 다른 쪽에서는 ‘검찰 하나회’로 인식되는 것은 문제이다.

박선경 = 정서적 양극화와 관련해 극단적, 대결적 언어보다 포용적, 합의적 표현을 더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세대 차이, 세대갈등으로 충분한 걸 세대균열, 세대전쟁, 혐오로 쓰는 것은 정서적 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껴지게 한다. 또한, 정치에서의 차이와 갈등은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이를 받아들인 하에서 해결책을 찾는 다원주의적 관점이 확대돼야 한다. 다원주의 정치는 쉽게 생각하면 엘리트 차원에서 ‘협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 협치를 이룰 방법을 찾는 고민을 더 해야 한다. 보통 다당제로 협치를 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저는 다당제가 자동으로 협치로 이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행태적 변화로도 협치를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를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타 정당 타 정치인과의 대화를 야합이나 협잡이 아닌 협치의 노력으로 언론과 학계가 평가해 줘야 하고, 대중도 그렇게 이해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시리즈 끝>

특별취재팀
김재중 스포트라이트부 부장, 배문규(데이터저널리즘팀)·심진용(스포츠부)·정대연(정치부)·권정혁(경제부)·문재원(사진부)·채희현(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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