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비타민은 무조건 좋다? 콜라겐은 피부에 바로 흡수?…유사과학을 믿지 마세요

2019.03.16 06:00

라돈침대, 천연 비타민, 콜라겐 화장품, 음이온 방석

라돈침대, 천연 비타민, 콜라겐 화장품, 음이온 방석

■유사과학 탐구영역 저자 ‘계란계란’

얼핏 들으면 혹하지만
가공된 이미지일 뿐
개념 제대로 알 수 있게
전문가들이 노력해야죠

[커버스토리]천연 비타민은 무조건 좋다? 콜라겐은 피부에 바로 흡수?…유사과학을 믿지 마세요

“탄력을 잃은 피부에 건강을 되찾아드리겠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쇼호스트가 말한다. 텔레비전 홈쇼핑 채널에서 팔고 있는 건 바로 콜라겐 성분이 들어 있다는 화장품. 유달리 피부가 매끈해 보이는 쇼호스트는 나이가 들수록 무너진 콜라겐층을 탄탄히 채워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질층, 표피층, 진피층이 나눠진 피부 모형에 콜라겐을 채워넣는 장면을 보니 콜라겐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만 같다. 드라마틱하게 변한 홈쇼핑 모델의 ‘비포 앤드 애프터’ 화면을 본 순간, 홀린 듯 주문전화를 걸고 있다.

그런데 만약 만화 <유사과학 탐구영역>의 주인공 ‘고혜람’이 이 방송을 봤다면 어땠을까. “과학의 이름 뒤에 숨어 장사나 하려드는 부류를 근절하기 위해 과학교육과에 들어왔다”는 이 캐릭터는 아마 업체에 전화를 건 뒤 속사포처럼 이렇게 항의했을 것이다. “일단 콜라겐은 단백질인데요. 여러 개의 아미노산이 결합된 커다란 고분자 덩어리예요. 피부는 몸의 최전방에 해당하는 곳이고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외부 물질이나 미생물을 철저히 차단합니다. 콜라겐 같은 커다란 분자 덩어리가 침투할 정도면 온갖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멋대로 드나든다는 건데 지금 그게 말이 됩니까.”

유명 과학자의 이름이나 연구, 과학원리를 인용하며 그 효능을 강조한 기능성 상품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상품들이 광고와 달리 효능이 없거나 최근 ‘라돈 침대 사태’에서 보듯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되기도 한다. ‘유사과학’은 이처럼 사실과 다르거나 거짓임에도 ‘과학적’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말한다. 지난 11일, ‘유사과학’을 파헤치는 만화 <유사과학 탐구영역>의 계란계란(34·본명 안치성·사진) 작가를 만났다.

- 지난해 1권에 이어 지난 2월 <유사과학 탐구영역> 2권이 출간됐다. ‘유사과학’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유사과학 탐구영역>을 연재하기 전 <오늘은 자체휴강>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예비 과학교사들을 소재로 한 대학생활 공감 만화다. 거기에 곁가지로 유사과학 내용을 넣었다. 그런데 내가 제시했던 과학적 근거를 부정하면서 유사과학을 옹호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래서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유사과학을 체계적으로 반박하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방석 하나를 사도 항균, 탈취, 음이온, 원적외선 같은 말들이 따라붙는다. 정말 그 수많은 기능성 상품이 광고대로 효과가 있는가를 짚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사실 소위 너무 ‘이과적’인 내용이라 호응이 없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독자들이 좋아했다. 과학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기능성을 강조한 상품의 효과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던 것 같다.”

- 사범대에서 생물교육을 전공했다.

“대학 때의 경험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당시 우리 학과에서는 누가 유사과학 상품을 가져오면 서로 앞다퉈 그 상품에 효과가 없는 과학적인 이유를 대며 놀았다. 주인공 ‘고혜람’과 친구들은 대학 동기들 몇몇의 캐릭터를 따온 것이다.”

- ‘저지방 우유’ ‘미세먼지 흡수식물’ ‘천연 비타민’ 등 만화의 소재는 주로 건강에 효능이 있다는 상품들이다.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건강을 내세우며 한편으로는 공포를 조장하는 광고들이 많기 때문이다. 광고가 과학적 용어를 써가면서 점점 더 교묘해지니 얼핏 들으면 혹할 수밖에 없다. 대개가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안정감을 노린 것이다. 예컨대 천연 대 합성의 틀로 상품을 홍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천연 비타민은 ‘천연 원료’를 사용했다고 강조하며 훨씬 비싸게 판다. 천연이든 합성이든 비타민 분자구조가 같으면 당연히 같은 물질이다. 이건 마치 참숯 태워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천연이라 괜찮은데 휘발유 태워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합성이라 온실효과를 일으킨다는 말과 같다. 엄밀히 말해 진짜 천연이라면 말 그대로 아무 가공도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비타민이든 정제·농축은 필요하다. 천연 비타민은 대부분 효소를 원료로 이용해 만드는데 사실상 합성 비타민과 다를 바 없다.”

- 자료조사나 팩트 체크는 어떻게 하나.

“생리학, 세포학, 유전학 등 전공서적들을 많이 본다. 형식은 만화지만 내용은 과학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 동기 중 연구소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도 교차확인을 하면서 엄격하게 팩트 체크를 한다. 과학 만화이므로 조금이라도 틀린 정보가 들어가면 신뢰도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만화를 그리는 것보다 자료조사에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린다.”

- 유사과학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만화에서 고혜람과 대치되는 인물로 각종 유사과학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이 나온다. 상인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입맛에 맞게 가공된 이미지라고 말한다. 예컨대 자연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안전하고, 합성은 차갑고 인공적이며 위험하다는 이미지처럼 말이다. 실제 효과보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는 기분을 체험하면 된다. 또 그동안 과학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사람들이 기능성 상품들을 이용하면서 그것이 어떤 원리로 효능을 만들어내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정보의 불균형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더 단순하고 명확한 이미지만을 좇게 됐다.”

- 유사과학에 속지 않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정부에서도 유사과학을 동원한 광고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 ‘음이온 마케팅’ 금지도 라돈 침대 사태가 일어나고 나서야 이뤄졌다. 과학 전문가들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일반 대중들이 과학에 대해 쉽게 개념을 정리하고 그 개념들을 쌓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인기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슈뢰딩거의 고양이’ 라고 아세요?
아는 척하는 과학 재밌잖아요!

[커버스토리]천연 비타민은 무조건 좋다? 콜라겐은 피부에 바로 흡수?…유사과학을 믿지 마세요

“광화문, 신도림, 홍대 거리에 과학관이 세워지고 길 가다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게 과학이어야 해요.” 아프리카TV, 유튜브 등에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궤도’(사진)는 과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와인을 고르듯 과학도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로 일상생활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 번 맛보긴 어려워도 한 번 경험하면 계속 찾게 된다는 음식, 홍어처럼 과학 또한 첫 문턱만 넘어서면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비전문가들에게는 높아만 보이는 과학의 문턱을 낮출 수 있도록 며칠 밤을 새우며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과학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궤도’라는 이름은 대학 때 전공분야였던 인공위성 궤도에서 따왔다. 그는 ‘궤도’로 활동할 때는 “과학 소통에만 온 인생을 걸고 과학에 대한 생각만 하고 과학 콘텐츠만을 고민한다”고 했다. 인터뷰 또한 ‘궤도’의 활동에 대한 것인 만큼 실명은 밝히지 않기를 바랐다.

- 과학 커뮤니케이터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교육용 과학 콘텐츠는 많다. 훌륭한 석학들이 나와 다양한 분야의 과학에 대해 설명한다. 좋은 콘텐츠는 많지만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 보니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에게 과학은 무조건 재미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과학문화를 만들고 싶다.”

- ‘과학문화’는 어떤 것인가.

“예컨대 대화 중에 ‘너 뭐 좋아해?’라고 물어보면 ‘영화 보는 거 좋아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어떤 감독 좋아해?’라는 다음 질문이 바로 이어진다. 과학은 그게 안된다. ‘나 과학 좋아해’라고 말하면 ‘왜’라고 묻는다. 과학을 좋아하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도 일정한 선을 넘으면 다른 취미처럼 좋아하게 될 것이다. 홍어도 처음엔 못 먹다가 깊은 맛을 알면 즐기게 되지 않나. 과학도 한 번 알게 되면 다시는 그 밑으로 못 내려온다.”

- 과학은 의견보다는 ‘팩트’ ‘근거’ ‘실험’으로 판단하는 학문 아닌가. 일반인이 문화로 향유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아는 건 위험하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설프게라도 알지 못해 과학에 대해 이야기조차 나누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유전자를 편집해 아이를 만드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하냐’는 이야기를 술자리나 카페에서 나눌 수 있다. 이야기하다 사소한 팩트 좀 틀리면 어떤가.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허세 좀 섞어서 싱글몰트, 더블몰트 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과학도 엄숙하게 이야기해야만 하는 게 아니라 허세 좀 부리면서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최근 펴낸 책 이름도 <궤도의 과학허세>다.

“과학책은 사실 잘 안 읽힌다. 읽다가 한 단락 집중 못하면 다음으로 못 넘어가고 그 부분을 계속 맴돌게 된다. 그래서 점점 더 과학책을 안 사고 안 읽는다. 이 책은 과학의 정수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책은 아니다. 읽히는 데 초점을 뒀고 과학에 대해 ‘아는 척’ 좀 할 수 있도록 썼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아?’ 뭐 이런 식으로. 과학은 쉬운 게 아닌데 쉽게만 접근하려는 게 과학적 사고에 도움이 되냐는 반문도 있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라는 것도 일단은 과학을 가까이한 후에 가능한 이야기다.”

- 유튜브 채널 이름이 ‘안될 과학’이다.

“약학박사 ‘약’과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진’과 함께 만드는 채널이다. 처음 콘셉트는 구독자들로부터 ‘과학으로 이건 왜 안되지?’라는 질문을 받고 이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로봇청소기는 있는데 왜 빨래를 널어주는 로봇은 없는가, 왜 미세먼지 문제는 해결이 안되는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과학문화가 없다 보니까 질문 자체가 몇 개 안 나오더라. 그래서 ‘될 과학, 안될 과학을 다 다룬다’는 콘셉트로 뜻을 바꿨다. 콘텐츠 중 ‘한방 정리 긴급 과학’은 짧은 시간 동안 과학의 경이로움을 느껴볼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실 콘텐츠로 올라와 있는 ‘리만 가설’이나 ‘푸앵카레의 추측’은 영상 한 번 본다고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완벽한 이해가 목적이 아니라 이걸 보고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으면 된다. 댓글 보면 수십 번 봤다는 사람도 있고 우울할 때마다 본다는 사람도 있다. 영상을 끊지 않고 끝까지 보게 하기 위해서 압축적인 내용을 속도감 있게 전달하려고 하는데 어떤 분이 댓글에 그러시더라. ‘길 가는데 쫓기는 듯한 다급한 아저씨가 나한테 흥미로운 얘기를 굉장히 쉽게 하고 후다닥 도망가는 느낌’이라고. 그런 흥미를 유발하는 게 목적이다. 흥미가 생기면 그다음은 스스로 콘텐츠를 찾아보게 된다.”

- 과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느끼나.

“사실 10년 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변화가 지난 4~5년 사이에 이뤄졌다고 본다. 굉장히 빠르게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체감한다. tvN <알쓸신잡>에서 과학자가 5분의 1 지분을 갖고 나오지 않았나. 우리 채널도 지난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구독자가 300명 정도밖에 안됐다. 길 가는 사람 붙잡고 구독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몇 개월 만에 6만명이 넘었다. 구독자 수가 급증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리만 가설’ 콘텐츠를 올리고 나서 몇 초마다 ‘새로고침’ 눌렀는데 누를 때마다 3명씩 늘더라. 그러더니 하루 만에 1000명 돌파했고 순식간에 1만명이 넘었다.”

- 바람이 있다면.

“6년 전부터 아프리카TV에서 과학방송을 하고 있다. 전체 20만개 넘는 채널 중 우리가 유일한 과학채널이다. 유튜브 게임채널 구독자는 300만명이 넘지만 가장 인기 있는 과학채널의 구독자 수는 겨우 40만명이다. 과학문화가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 광화문 한복판, 신도림, 홍대 거리에 과학관이 있어야 한다. 외진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길 가다 발에 차이는 게 과학이었으면 좋겠다.”



[커버스토리]천연 비타민은 무조건 좋다? 콜라겐은 피부에 바로 흡수?…유사과학을 믿지 마세요


◆‘과학 속설’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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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로 데운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 초당 20억번 진동하는 마이크로파가 음식 분자를 파괴해 음식에 독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열이라는 것 자체는 분자의 회전, 진동 같은 내부 에너지의 흐름을 말한다. 전자레인지로 가열을 하건 참숯으로 가열하건 음식의 분자가 진동을 하는 건 똑같다. 오히려 전자레인지는 물의 가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음식의 온도가 10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음식을 심하게 변화시키는 건 오히려 불을 이용한 가열방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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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때문에 죽었다 - 잘 때 주의”(신문 기사)

▶과거 전기를 이용한 신기술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밀폐된 방에서 선풍기를 켜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해 질식해서 죽을 수 있다며 반드시 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논리라면 에어컨의 찬 바람도 에어컨 내부의 팬이 돌면서 발생하기 때문에 에어컨을 켤 때도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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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좋은 음이온 공기청정기”

▶한때 유행한 음이온을 방출하는 공기청정기는 내부에 고전압의 전극을 설치해 공기를 이온화시키는 원리를 내세웠다. 고전압을 받은 산소는 일시적으로 불안정한 이온이 됐다가 곧바로 산소 분자와 결합해 오존이 된다. 최근 오존의 유해성이 알려졌는데 결국 몸에 좋다는 음이온을 배출하겠다고 전극을 걸어 유해한 오존을 만들어낸 것이다.

참고: <유사과학 탐구영역>(계란계란 지음, 뿌리와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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