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병원마다 제각각…한약재 독성 없애는 ‘포제’ 작업, 표준화돼야

2024.03.17 21:06 입력 2024.03.17 21:18 수정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현대 약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16세기 독일 의사 파라켈수스는 “모든 것에는 독성이 있으며, 독성은 투여량이 결정한다”라는 유명한 약학적 명제를 제시했다. 실제로 모든 약물은 적정량을 투여하면 약이 되지만, 너무 많은 양을 쓰면 독으로 작용한다.

약품뿐 아니라 식품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도 하루 60잔이면 치사량이 된다. 다만 하루에 커피 60잔을 마시는 사람은 없듯이 일상적인 섭취량에서 독성이 나타나지 않는 대부분의 식품은 안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소량만 섭취해도 독성 반응이 나타나는 물질을 독물로 규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산, 천연물, 무농약, 유기농 등의 글자가 붙어 있으면 더 안전하다고 인식한다. 그런데 청정 해역에서 낚시로 갓 잡은 복어는 순수한 자연산이지만, 제대로 손질하지 않고 먹으면 즉사할 수 있는 맹독을 품고 있다. 자연산 천연물이라고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천연물이라 할 수 있는 한약재 중에도 ‘초오’나 ‘반하’와 같은 독성 한약재가 있다.

초오는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인 투구꽃류의 덩이뿌리인데, 조선시대 사약의 주원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신경통이나 수족냉증에 효과가 좋은 약재이지만, 적절히 가공하지 않고 섭취하면 아코니틴 등 강심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민간 지식으로 초오를 명탯국에 넣어 먹으면 차가운 성질인 명태가 뜨거운 성질인 초오의 독성을 해독하므로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3~4시간 이상 푹 끓이지 않으면 독성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찌고 말리고 삶고 볶는 등 전통적인 가공을 통해 한약재의 독성을 줄이고 유효성을 높이는 과정을 ‘포제’ 또는 ‘법제’라 부른다. 초오를 오랫동안 삶는 것도 포제의 일종인데, 이렇게 하면 맹독성 물질인 아코니틴이 아코닌 등 독성이 적은 물질로 바뀐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끼무릇의 땅속줄기인 반하도 대표적인 독성 한약재인데, 이 약재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매우 날카로운 바늘처럼 생긴 옥살산칼슘 결정이 많이 들어 있다. 이 물질은 미량 섭취하면 위장관 점막의 재생을 촉진해 소화 기능을 정상화하지만, 다량일 때에는 점막을 손상시켜 목구멍을 붓게 하고 심하면 호흡곤란을 일으켜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강·백반 달인 물에 반하를 넣고 가열하는 포제 과정을 거치면 옥살산칼슘 결정이 85% 정도 제거돼 부작용은 감소하고 약효는 유지된다.

이처럼 약물의 포제에는 옛 선현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지만, 전통 지식이 대개 그렇듯이 표준화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몇 도의 온도로 몇 시간을 가열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 지침은 아직 없고, 개별 제약회사 및 의료기관마다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포제를 행한다.

그렇게 되면 약물이 조제될 때마다 성분 함량의 편차가 적지 않게 발생할 수 있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도 생길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한의학연구원을 비롯한 국내외 전통 의약 연구진들이 포제 공정을 현대화·최적화·표준화하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유효성과 안전성이 높고, 약효가 균일하며, 탄소중립에 더 가까운 표준화된 포제 기술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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