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열전
2024.04.10 06:00 입력 2024.05.20 10:43 수정 이정모

(8) 시조새

베를린 자연사박물관 소장 시조새 화석. 위키피디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제공

베를린 자연사박물관 소장 시조새 화석. 위키피디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제공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불과 2년 후인 1861년 시조새가 발견되었다. 다윈 자신도 놀랐을 정도로 절묘한 시점에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확실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깃털 달린 날개와 파충류 꼬리를 모두 가진 시조새는 공룡의 세계와 현대의 새를 잇는 살아 있는 다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새의 조상’이라는 시조새에게 바친 찬사는 결국 오해로 밝혀지고 말았다.

1억5000만년 전 쥐라기 말기에 형성된 독일 솔른호펜 석회암 지층에서 깃털 화석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렇다. 단 하나의 깃털이었다. 깃털은 깃봉을 중심으로 양쪽 폭이 다른 비대칭형이었다. 단 하나의 깃털에 불과하지만 곤충, 박쥐, 익룡과는 다른 방식, 바로 비행용 깃털이 달린 날개로 나는 새의 존재를 알려주는 강력한 존재였다. 깃털의 주인에게 아르카이옵테릭스(Archaeopteryx)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고대의 날개’ 또는 ‘고대의 깃털’이라는 뜻이다.

깃털이 있다면 깃털 주인도 발견되어야 하는 법. 같은 해 말 같은 지층에서 파충류와 조류의 특징이 결합된 매력적인 골격 화석이 발견되었다. 화석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학자들은 이 골격이 이전에 발견된 깃털의 주인, 즉 시조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오언이 그 화석을 구입했다. 오언은 공룡(Dinosauria)이란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으로 런던자연사박물관을 설립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오언은 시조새 화석에 아르카이옵테릭스 리소그라피카(lithographica), 즉 ‘암석에 기록한 고대의 날개’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다. 지금까지 거의 완벽한 시조새 화석 12개가 발견되었는데 첫 번째 화석은 지금도 런던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시조새 크기는 까마귀와 비슷했다. 날개 길이는 약 0.5m, 몸무게는 0.8~1㎏이다. (보통 우리가 먹는 프라이드치킨은 10~14호 닭이다. 10호 닭이란 털과 내장, 껍질을 제거한 후 튀길 준비가 되었을 때의 무게가 1㎏이라는 뜻이다.) ‘옛날통닭’집 닭 크기라고 보면 된다.

당대 최고의 권위자 리처드 오언은 시조새 화석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데 대해서는 견해가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지위를 이용하여 시조새 화석 연구를 방해했다는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권위는 인정하되 권위주의에는 빠지지 않는 게 과학계의 특징이다. 새로운 것이 발견되면 바로 생각을 바꾼다.

화석 발견 당시 ‘조류 직계 조상’ 오해
날개 달린 공룡 계통의 하나로 밝혀져
진짜 선조는 공룡 그룹 ‘마니랍토란’

조류와 파충류의 특징 혼합된 시조새
진화의 유동성·복잡성 보여줘 의미

시조새가 실렸던 교과서는 틀렸지만
새가 곧 공룡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시조새는 한눈에 파충류와 조류의 특징이 결합된 것처럼 보였다. 시조새의 날개는 현대 조류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비행 또는 적어도 활공이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깃털은 공기역학적으로 비행에 최적화된 디자인을 보였다. 가슴에는 비행 근육이 붙을 수 있는 차골(위시본)이 있다. 또 엉덩이뼈의 방향은 앞쪽을 향하고 있다.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새처럼 보인다.

그런데 새에게는 없는 이빨이 있다. 또 시조새의 꼬리는 아주 길다. 물론 현대 조류에도 꼬리뼈가 있다. 하지만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면서 “이게 꼬리뼈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현대 조류의 꼬리뼈는 융합되어 아주 짧아졌다. 새의 날개에는 손가락이 없다. 그런데 시조새의 날개에는 손톱이 달린 세 손가락이 있다. 잡고 기어오르는 능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새의 특징과 공룡의 분명한 특징을 반반씩 갖춘 화석을 본 과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중생대 파충류인 공룡과 오늘날 지구에 살고 있는 조류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고리를 발견했다고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시조새는 마침 당대 최고의 화제였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류와 파충류의 특징이 혼합된 시조새 화석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그룹 간의 간극을 메워주었다. 깃털과 비행이라는 조류 고유의 특성이 파충류 조상에게서 점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나면서 새로운 종의 출현을 보여주었다. 진화라는 개념에 대한 명백하고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만세!

하지만 이야기는 복잡하게 흐른다. 2011년 12월5일 대한민국의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교진추)가 교육과학기술부에 교과서에서 시조새를 없애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교과부는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는 국정 교과서가 아니라 인정 교과서라며 과학 교과서를 펴내는 7개 출판사를 통해 교과서 저자들에게 교진추의 청원 내용을 전달했다. 출판사와 저자들은 편리한 결정을 했다. 해당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는 교진추의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 대한민국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때 ‘네이처’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가 이 소식을 전했다. (이때 당시로서는 새파란 젊은 학자였던 장대익, 전중환 등의 전투적 활약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제서야 한국 언론들이 본격적으로 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아니 교진추는 왜 이런 주장을 하게 되었을까? 과학자와 공학자 그리고 과학교사들로 구성된 교진추가 막무가내로 우겼을 리는 없지 않은가? 시조새가 새의 조상이 아니라는 교진추의 주장은 옳았다. 시조새에게는 많은 오해가 있는 게 사실이다.

첫째, 시조새는 현대 조류처럼 완벽하게 날 수 없었다. 비록 깃털이 비대칭이었지만 골격 구조와 날개 모양이 현대 조류만큼 비행에 능숙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활공이나 짧은 순간 비행이 가능했을 것이다. 비행 발달의 과도기적 단계를 나타낸다.

둘째, 시조새의 특징이 현대 조류의 독특한 선구자가 아니다. 당시만 해도 공룡이 깃털과 차골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증거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깃털과 차골 같은 시조새의 특징이 있는 공룡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시조새는 다양한 깃털 공룡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시조새가 새의 진화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지만 그 특징이 독점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시조새는 깃털을 사용해서 비행을 실험한 다양한 공룡 중 하나에 불과하다.

셋째, 시조새는 공룡과 현대 조류 사이의 연결고리가 아니다. 시조새가 공룡과 새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중간 단계 화석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 조류 진화의 유일한 연결 고리는 아니다. 우리의 지식이 확대되었다. 시조새는 하늘을 날 궁리를 하고 있던 무수한 공룡 계통 중 하나였을 뿐이다. 모든 현대 조류는 시조새의 직계 후손이 아닌 것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시조새에 대한 이야기는 오류 투성이였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교과서 저자들이 잘 몰랐을 뿐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진화론을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으니까. 나도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18년을 배웠지만 진화론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에게 배워본 적이 없다. 세상은 변했는데 교과서는 그대로였다. 교진추는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교진추의 승리로 끝나지는 않았다. 교과서에 실린 시조새가 틀린 이야기라고 해서 공룡에게서 새가 진화했다는 게 틀린 것은 아니고, 진화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 조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무엇일까? 새가 되고자 실험했던 다양한 종류의 공룡들이 알려져 있다. 다리와 발을 포함한 몸 전체를 넓은 깃털로 덮고 있는 공룡이 시조새보다 조금 일찍 등장했는데, ‘다윈의 불도그’를 자처했던 토머스 헉슬리는 이 공룡을 ‘거의 새’라는 뜻으로 안키오르니스(Anchiornis)라고 불렀다. 안키오르니스 역시 현생 조류의 조상은 아니다.

시조새 모형. 새의 진화를 가장 잘 전시 중인 곳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이다.  위키피디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제공

시조새 모형. 새의 진화를 가장 잘 전시 중인 곳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이다. 위키피디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제공

백악기 초기에는 날개가 네 개 달린 작은 공룡이 등장했다. 작은 공룡이라고 해서 미크로랍토르(Microraptor)라고 한다. 팔과 다리에 모두 긴 깃털이 있어서 네 날개를 가진 독특한 구조다. 비행 또는 활공 능력이 있었지만 여기서 현대 조류의 비행기술이 진화하지는 않았다. 백악기 초기에 살았던 공자새(Confuciusornis)는 이빨이 없는 부리와 융합된 꼬리뼈가 있다. 현대 조류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룡의 특징이 점차 사라지고 새의 혈통이 더 많이 생겼다. 하지만 새의 조상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현대 조류는 새와 같은 특징을 가진 다양한 종을 포함하는 공룡 그룹인 마니랍토란(Maniraptoran)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 쥐라기에 처음 등장했으며 현대 새의 주요 특징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가 현생 조류로 이어졌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새는 공룡이다.

시조새가 비록 공룡의 조상은 아니지만 진화에 대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 깃털과 비행 같은 새의 고유한 특성이 파충류 조상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특징의 쓰임새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체온을 유지하고 짝짓기 때 과시용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조새는 종 범주 사이의 명확한 경계에 대한 개념에 도전할 기회를 주었다. 시조새는 우리에게 진화의 유동성과 복잡성을 보여주었다. 진화는 선형적이지 않다. 다양한 종들이 서로 다른 진화 경로를 실험한다. 이때 어떤 종은 막다른 골목과 만나고 자연사에서 사라진다. 시조새가 바로 그런 경우다. 다른 종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생명체로 이어졌다. 시조새는 생명 진화 과정이 역동적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시조새가 현생 조류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보다 더 잘 날아다니는 공룡들이 많았다. 그들과 먹이와 둥지를 사이에 둔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결국 시조새를 새의 조상이라고 가르쳤던 교과서 역시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론이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조새는 비록 새의 시조가 아니지만 진화의 명확한 증거라는 것은 1861년이나 2024년이나 변함이 없다. 교과서에는 진화론이 더 실려야 한다.

요즘 ‘치맥’을 먹을 때 “닭이 말이야, 사실은 공룡이야”라면서 화제를 끌어가는 사람을 종종 본다. 좋은 일이다. 이제 몇 문장만 더 이어보자. “그런데 닭의 조상이 시조새는 아니야. 새는 다른 공룡에서 나왔어. 그리고 새는 공룡의 후손이 아니라 그냥 공룡이야. 우리는 1만400종의 공룡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지.”

■필자 이정모

[멸종열전]새들의 ‘조상님’은 아니지만, 진화론 ‘조력자’는 맞습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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