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5집 앨범 ‘열흘나비’ 포트록 가수 김두수

2007.12.13 09:27

절망의 노래는 태웠다, 無心의 자유를 깨닫다

‘이 미망의 이승녘에/바람의 춤을 추리라/마음도 뜨고 지네//저 너풀거리는, /그 빛나보이던 건/환영(幻影)의 꽃이라네’(5집 ‘열흘 나비’)

[Human]5집 앨범 ‘열흘나비’ 포트록 가수 김두수

그의 노래는 차라리 한 편의 시다. ‘음유 시인’이라는 말이 이보다 적확하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거기에 그의 ‘귀기(鬼氣)어린’ 목소리와 신비로운 기타 소리, 은둔과 유랑의 삶이 얹어지면 청자(聽者)의 마음은 이 세상엔 없는 어딘가에 깊이 침잠하고 만다.

포크록 가수 김두수(48)가 5집 앨범 ‘열흘 나비’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지난 6일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예상대로 말수가 적었고, 예상외로 ‘젠틀’했다. 한 가지 질문에 석 줄 이상의 답변은 좀체 듣기 힘들었다. 그러나 대개는 그 석 줄로 모자람이 없었다. 길을 걷다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지자 의외로 열심히 뛰었고, 쓰레기는 손에 꼭 쥐고 있다 반드시 휴지통에 버렸다. 평상시 목소리는 노래 부를 때의 결기는 간데없이 나긋나긋했다. 그 스스로도 “사람들이 음악만 듣고 다들 내가 마약쟁이인 줄 알아요” 했다. 맞다. 나도 그랬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니다. ‘전설적 언더그라운드 포크 음악인’으로 불리는 그는 오랫동안 산 속에서 침묵하고 살았다. 게다가 그간 발표한 그의 음악들은 ‘초연’ ‘신비’ ‘체념’ ‘은둔’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저런 음악은 나올 수 없어’ 하는 의심도 많이 받았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서정주의 시에 가락을 입힌 ‘귀촉도’로 데뷔했다. 이후 2장의 범상치 않은 포크 음반을 발매하며 주목받았지만, ‘경추 결핵’이라는 병마가 찾아들어 사경을 헤맸다. 3년의 투병 끝에 ‘생환’해 91년 3집 ‘보헤미안’을 만들어 내놨다. 그러나 음반 수록곡이었던 ‘보헤미안’을 들은 청중 몇몇이 자살을 기도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나는 평화를 노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절망을 안겨주면 그런 음악에 존재 이유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해서 그는 다시 음악활동을 접고 강원도 대관령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는 음악을 하지 않을 생각으로 그동안 써 놓은 작업 노트들도 모두 불태웠다.

10년 동안 산 속에서 지내던 김두수가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디딘은 것은 2002년 4집 ‘자유혼’을 발매하고부터다. 띄엄띄엄 일기처럼 기록해온 음악들은 충분히 쌓여 있었고 조심스럽게 “다시 사람들과 대화하고픈”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시 ‘다시 돌아온’ 김두수에 대한 반향은 조용했지만 컸다. 그 해 ‘올해의 음반’에 선정됐고,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음반’에 꼽히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5년, 5집 ‘열흘 나비’가 세상으로 날아왔다.

“5년이면 적당한 기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2년 만에 내는 앨범 사이클은 비즈니스적인 기간입니다. 나는 그저 나도 모르게 모여지는 곡들을 한 번씩 묶어보는 것이지요. 그동안요? 그냥 여행도 하고 일상의 삶을 살았습니다.”

음반 타이틀인 ‘열흘 나비’는 불가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상징이다. 열흘을 살며 마지막 날 정오의 태양을 향해 한없이 날아오르다 빛으로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한번 이 나비를 본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이후 여생을 그 나비만 그리며 앓다가 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그는 “‘열흘 나비’는 영원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한 인간의 생과 닮아 있다”며 “인간은 모두 빛나는 것들의 환영을 좇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는 음반 전체에 흐르고 있다. 불교 철학에 관심이 있냐 물었더니 “워낙 어느 편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저 “동양인이니까 보편화된 정서를 갖고 있는 것뿐”이란다. 그러나 ‘무정무한(無情無限) 무념무심(無念無心) 무상무극(無常無極) 무궁무진(無窮無盡)’의 ‘흰 구름의 길’을 노래하는 그는 이미 ‘철학자’다.

학생 때부터 그는 떠돌기를 좋아했다. 86년에 첫 음반을 냈는데, 그게 대학교 몇 학년 때였냐고 물었더니 기억해내지 못했다. “걸핏하면 학교를 떠나 여기저기 도보여행을 다녀서” 동창도 없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얼마 동안 다녔는지도 감감하다.

문득 그의 생계가 걱정됐다. “나는 전업 음악인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거죠. 견디면서. 쉽진 않지만 살다보면 노하우가 생깁니다.” 이번 음반의 홍보 계획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뮤지션은 딱 음악까지다. 그 이후의 일은 저의 역할이 아니고, 재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문에 대한 현답이다. 이같은 우문현답은 인터뷰를 하는 2시간 내내 이어졌다.

-과거 음원들에 대한 저작권료는 받고 계십니까.

“그것이 (정말) 궁금하십니까.”

-왜 노래 하십니까.

“‘왜 사세요’라는 질문과 비슷합니다.”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다들 그런 거 조금씩 안고 살지 않습니까.”

-김두수씨의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모든 존재는 자기가 부여하지 않더라도 자존을 갖고 태어납니다. 인위적으로 부여하면서까지 더 생을 복잡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줄곧 진지한 표정과 자세를 유지하던 그는 “이번 음반을 듣고 눈물이 났다”는 감상평을 전하자 온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아이처럼 웃었다. 청자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는 동안 “마음이 정화되고 짧은 명상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귀한 일”이라고 했다. 그런 생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자살을 시도한 이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상상할 수 있다.

지금 김두수는 아내와 단 둘이 경기도 양평에 아담한 양옥집을 지어 살고 있다. 그는 여전히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지만 이제 숨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월드 뮤직’ 쪽으로 해외에서 꽤 많이 알려졌고, 이제는 그 쪽에 집중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그의 음악은 ‘포크’보다 한국 고유의 색채가 강한 ‘월드 뮤직’의 카테고리에 묶여 전 세계에 배급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꽤 두꺼운 마니아층을 지니고 있다. 이번 음반도 일본 레이블에서 제작했다. ‘월드 뮤직’이니만큼 일본에서 발매되는 음반, 그곳에서 하는 공연도 모두 한국말을 사용한다. 한국적 정통성을 지키려는 그의 고집이다. 오는 20일에는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흘 나비’ 발매 기념 콘서트도 연다.(문의 011-686-6281)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따끈따끈한’ 새 음반의 샘플이 도착했다. 속지에는 한글과 함께 영어, 일어 가사가 적혀 있었다. 혹시 잘못된 게 있을까 찬찬히 뜯어보는 그의 손은 흥분에 겨운 듯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글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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