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닭은 누가 다 옮겼을까

2021.07.11 08:45 입력 2021.07.11 14:23 수정
이두리·김흥일·김원진 기자

상차 작업 직접 해보니… 유해·위험 요소에 무방비 노출 심신 타들어가

다리를 부러뜨렸다. 배운 대로 손가락 사이에 다리 하나를 끼우고 닭을 거꾸로 들었는데, 요령 없이 잡는 바람에 몸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리뼈가 비틀어졌다. 두꺼운 장갑을 세 겹이나 꼈는데도 ‘뚝’ 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어떡해요. 부러뜨렸어요.” 상차반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대편 다리를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괜찮아. 한손에 (다리) 3개씩 걸라니까.” 죄책감을 느낄 틈도 없이 다시 다리를 잡아챘다. 밤새 트럭에 실어 올려야 하는 닭들이 운동장만 한 양계장에 빽빽한 ‘물량’으로 존재하는 곳, 야간 상차 현장이다.

치킨을 만들기 위해서는 닭을 도계해야 하고, 닭을 도계하기 위해서는 닭을 도계장으로 옮겨야 하며, 닭을 운송하려면 계사(양계장) 바닥에 융단처럼 깔린 닭을 트럭 짐칸에 실어야 한다. ‘상차(上車)’는 닭이 양계장 밖으로 나가는 첫 단계다. 말 그대로 닭을 ‘차에 올리는’ 일이다. 무겁게는 1.7㎏까지 나가는 닭을 6마리씩 들어 허리 높이의 발판에 올라선 작업자에게 전달하는 반복 작업이다.

상차는 소규모 팀으로 이뤄진 ‘상차반’ 몫이다. 상차반은 10명 안팎으로 꾸린다. 대부분 닭고기 가공·유통 업체에서 하청을 받는다. 상차는 주로 밤에 이뤄진다. 양계장 안은 늘 불을 꺼둔다. 닭은 깜깜한 곳에서는 잘 움직이지 않아서다. 상차반은 익숙한 어둠 속에서 흰닭을 잡는다. 닭을 몰고, 잡고, 트럭에 싣는 모든 작업이 기계 없이 사람 손으로 이뤄진다.

6월 30일, 닭을 키우는 농가를 찾아 직접 상차반 작업을 했다. 통계청 가축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양계장에는 육계 9636만1000마리가 있다. 이중 3만여마리를 차에 실어야 했다. 일이 고돼 손이 떨렸고, 폐사해 널브러진 닭을 보며 마음은 타들어갔다. 3만여마리 닭을 미처 옮기지 못한 채 양계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트럭에 실린 닭이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김흥일 기자

트럭에 실린 닭이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김흥일 기자

열 손가락에 닭다리를 끼웠다

6월 28일 구직 문의를 하고 이틀 뒤, 경북의 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차반장을 만나 숙소를 안내받았다. 낡은 숙소는 한쪽 벽면이 유리였다. 에어캡과 종이로 얼기설기 가렸는데도 바깥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화장실은 길 건너편의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숙소 옆집에 사는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상차반에 들어온 걸 의아해했다. “젊은 사람이 뭐하러 이런 걸 해. 가서 안 울면 다행이지. 전에도 나이 많은 남자 둘이 왔다가 하루 일하고 다음 날 바로 떴어.”

상차반원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일용직이다. 고된 노동 강도 때문에 금세 일을 그만두거나 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상차반은 언제나 일손이 고프다. 고기 수요가 늘어나는 초복(7월 11일)을 앞둔 시점이어서 자연스레 일거리는 많아졌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살아 있는 닭 야간상차반’ 모집 공고를 통해 상차반에 연락하자 원하는 날짜에 바로 작업에 투입될 수 있다고 했다. 공고에는 ‘월급 20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작업 장소는 날마다 바뀌지만 상차반원들에게 따로 공지하지 않는다. 상차반원은 일거리를 찾아 전국을 다니는 ‘유랑 노동자’다. 수지타산만 맞으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차반원 10명을 태운 승합차는 6월 30일 오후 7시 30분에 경북의 한 마을에서 출발했다. 2시간을 달려 경기도 양평의 한 양계장에 도착했다. 150㎞가 넘는 거리였지만 그사이 아무도 반장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듣고서야 위치를 파악했다.

6월 30일 밤 9시 35분, 불빛 하나 없는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다. 닭 비린내와 오물이 뒤섞인 냄새도 흘러나왔다. 양계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상차반원들은 담배를 피우며 “삼삼(33), 삼삼”을 되뇌었다. 닭을 한손에 3마리씩, 총 6마리를 한 번에 들고 나르라는 뜻이다. ‘삼삼’의 원리는 어렵지 않다. 손가락을 갈퀴처럼 이용해 엄지와 검지 사이, 검지와 중지 사이, 중지와 약지 사이에 닭의 다리를 하나씩을 끼워넣는다. 닭은 하나의 ‘다발’이 된다. 트럭 짐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노동자가 한움큼의 닭을 건네받는다. 함께 일한 태국인 노동자는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한국어가 서툴러도 당장 작업에 투입될 수 있다. 말보다 몸으로 먼저 익히는 단순 반복 노동이어서 가능하다.

상차반원들은 작업복 꾸러미를 각자 챙겨야 한다. 푸드덕거리는 닭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기 쉽다. 타이즈와 발목을 덮는 양말, 얼룩말 무늬의 얇은 일바지, 기능성 긴팔 티셔츠, 장화, 마스크, 머리카락을 고정하는 모자, 손바닥을 보호하는 토시, 하얀 속장갑 그리고 목장갑 2벌이 ‘작업복 세트’다. 바지와 장갑은 모두 겹겹이 착용한다. 닭의 발톱과 부리에 긁히지 않으려면 무더위에도 작업복 세트를 충실하게 소화해야 한다.

“닭이 날개를 치면 이게(손가락이) 자꾸 돌아가요. 장갑을 껴도 그래요.” 상차 경력 2년차인 A씨(65)는 담배를 물고 “손가락이… 이렇게 보세요”라며 굽은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마디마다 울퉁불퉁했다. 닭을 잡는 엄지와 검지, 약지가 갈고리처럼 휘어 있었다. A씨의 바지는 닭에게 쪼여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다.

트럭에 실린 닭이 도계장으로 가고 있다. | 김원진 기자

트럭에 실린 닭이 도계장으로 가고 있다. | 김원진 기자

눈 따갑고 손목은 시큰

양계장 안에는 1만여마리의 닭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모두 ‘치킨용’으로, ‘삼계탕용’보다 몸집이 더 컸다. 죽어서 아무렇게나 뭉개진 닭들이 군데군데 늘어져 있었다. 닭을 몰고 잡는 과정에서 닭들은 연신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닭똥과 흙이 섞인 먼지가 눈에 들어갔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동여맸지만 상차반원들의 눈은 여전히 유해 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양계 농업인의 작업장 환경 및 개인보호구 착용 실태조사’(2014년)를 보면, 상차에 해당하는 ‘출하’는 양계 작업 공정 중 유해·위험 요소에 노출되는 비율이 19.9%로 가장 높았다. 양계장에서 발생하는 암모니아 가스는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암모니아 농도가 20~50ppm으로 높으면 눈으로도 자극이 온다.

상차반장이 차가 들어올 공간을 만들면서 작업이 시작됐다. 반장은 콩을 넣은 페트병을 두드리면서 닭을 뒤로 한 번, 양옆으로 한 번 몰았다. 차가 후진을 하며 양계장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불이 꺼졌다. 이때부터 반복 노동의 시작이다. 상차반장은 “닭 앞에서 접근해 다리를 잡아올리면 무게 때문에 다리가 비틀어진다”고 했다. 뒤에서 다리를 낚아채라고 주의를 줬다.

익숙지 않은 일에 힘은 배로 들었다. 몸부림치는 닭을 양손에 드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손아귀가 떨렸다. 운송기사는 “어린놈 말고 큰놈을 올려”라고 소리쳤다. ‘큰놈’만 6마리를 골라잡아야 해서 중량도 상당했다. 차 1대를 다 채우고, 다음 트럭 케이지를 여는 동안 노동자 B씨(69)가 다가와 조언을 해줬다. “닭을 잡아 올릴 때 팔을 굽히지 마.”

상차는 세가지 동작의 반복이다. 땅에 앉아 닭다리를 낚아채 손가락에 끼우고, 닭을 들고 일어선 뒤, 팔을 들어 대기하는 작업자에게 전달한다. 닭을 들고 일어설 때, 역도하듯 팔을 굽혀 힘으로 들어올리니 에너지 소모가 컸다. 땅에 앉아 낚아챈 상태에서 팔을 늘어뜨리고 자세만 일어나는 편이 수월했다. 힘을 최대한 아껴도 근육과 관절에 고통이 찾아온다. 허리를 굽혔다가 펴는 과정을 충분한 휴식시간 없이 4~5시간 반복한다. 닭을 높이 치켜드는 과정에서 손목이 꺾이기 때문에 허리와 손목에 무리가 간다.


이주노동자들이 경기도의 한 양계장에서 상차 작업을 하고 있다. 닭 상차 작업은 대부분 밤에 이뤄지는데, 물량이 많을 때면 낮에 진행하기도 한다. | 김원진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경기도의 한 양계장에서 상차 작업을 하고 있다. 닭 상차 작업은 대부분 밤에 이뤄지는데, 물량이 많을 때면 낮에 진행하기도 한다. | 김원진 기자

더 많이, 빨리해야 임금이 오른다

‘빨리빨리’가 암묵적 룰인 상차 현장에선 여유부릴 틈이 없었다. 닭 3000여마리를 트럭 1대에 30분 안에 실어야 한다. 상차반의 업무량과 임금은 모두 ‘몇대의 트럭에 닭을 싣느냐’로 결정된다. 이날 상차반에 할당된 트럭은 10대였다. 트럭 1대당 닭이 3000여마리 실린다. 총 3만마리를 싣기 위해 1명당 5000번씩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1대 상차를 완료하면 5만5000원이 주어진다. 10대면 55만원. 10명의 상차반원이 작업했다면 1명이 받는 일당은 5만5000원이 된다.

작업해야 하는 트럭 수와 상차반 인원이 매일 다르기에 임금도 유동적이다. 구인 공고에 적혀 있던 ‘월급 200만원’은 매일밤 상차 작업만으로는 불가능한 액수였다. 이날 상차원이었던 A씨는 “일단 사람이 많아야 돈벌이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야 큰일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원이 부족해 ‘돈이 되는’ 작업을 받지 못하는 바람에 A씨는 전날 일을 쉬었다. A씨가 속한 상차반은 일주일 동안 작업한 트럭 대수를 계산해 주급으로 급여를 지급한다. 일당도, 노동일수도 불규칙한 상차 노동을 하면서 A씨가 일주일에 버는 돈은 30만~50만원 남짓이다. 일을 오래 했다고 급여가 올라가진 않는다. 아들을 다 키워 독립시켰다는 그는 이제 생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날그날의 “담뱃값이나 벌기 위해” 상차 일을 한다.

상차반의 다른 한국인 동료들 역시 40대 후반에서 60대 중반의 중장년층이었다. 그들의 목적도 퇴근 후 술 한잔할 수 있는 ‘적당한 돈’이다. 상차 노동자들이 노동 강도에 비해 적은 급여에도 상차 노동을 하는 이유로는 ‘익숙함’이 꼽힌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옛날부터 (상차 일을) 해와 다른 직종을 선택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 했다.

상차반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적지 않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상차반은 단속 위험을 줄여준다. 상차 작업은 특정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을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대한양계협회 관계자)고 한다.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을 떠맡는 이주노동자들마저 기피하는 일이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몰리기도 한다.

적은 비용으로도 사람을 쓸 수 있으니 기계가 들어설 유인은 없다. 대형 닭고기 가공·유통업체 한곳에서 2012년 국내 최초로 ‘자동포획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상용화되지 않았다. 닭고기 가공·유통업체인 올품 관계자는 “자동포획기를 도입하려면 거액을 투자해야 하는데, 회사가 적자인 상황이라 기기 도입이 쉽지 않다”고 했다.

양계장에는 보통 5t 크기의 트럭이 최대 2대 들어간다. 2대를 상차하는 데 1시간 정도가 걸린다. 트럭이 나가고 들어오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물을 한컵 마시면 끝나는 짧은 시간이었다. 상차를 마치고 닭을 가득 실은 트럭이 양계장에서 나가기 전 트럭스케일(트럭에 화물을 적재한 채 그대로 중량을 달 수 있는 저울) 위에 잠시 멈춰 닭의 무게를 쟀다. 도축장으로 향하는 3000여마리의 닭이 ‘하나의 덩어리’로 물화되는 순간이었다.

닭 상차반 작업시 입는 작업복. 김흥일 기자

닭 상차반 작업시 입는 작업복. 김흥일 기자

포기해도 사는 인간, 발버둥쳐도 죽는 닭

이날 오후 3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상차반장을 만난 순간부터 오후 9시 35분, 상차 작업에 투입되기 직전까지 “아마 못 견딜 거다”, “지금이라도 안 하는 게 낫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심지어 상차반장마저 “웬만하면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호기롭게 작업복을 갖춰 입고 양계장에 들어간 지 딱 2시간 만인 밤 11시 45분, 막 4대째 트럭을 채워 내보냈을 때였다.

아직 채워야 할 트럭이 6대나 남아 있었다. 상차반이 매일 하는 노동량의 반도 채우지 못했는데도 팔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다 보니 ‘데드 리프트’를 할 때 느끼는 고통이 찾아왔다. 물건이라면 움직임이라도 없을 텐데 다리가 매끄러운 닭은 지속적으로 움직였다. 닭을 몇 번 놓쳤더니 주변에서 짜증을 냈다. 요령없이 힘으로 닭의 다리를 잡다 보니 손떨림도 심하게 왔다.

양계장은 죽음과 삶 그리고 그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무생물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상차를 하다 보니 양계장의 생태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줄만 알았다. ‘닭 더미’를 헤치다 짓눌린 채로 폐사한 닭들을 얼결에 잡게 될 때도 있었다. ‘생명체가 아니라 움직이는 장난감이다’를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이 타들어갔다. 터지고 썩은 닭의 사체를 계속 모른 척하며 살아 있는 닭을 잡아 올릴 자신이 없어졌다. 다섯 번째 트럭이 막 들어올 무렵, “도저히 못 하겠어요” 하고 포기 선언을 하자 상차반장은 “그러게 내가 험한 일이라고 했잖아”라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기술이 없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름의 숙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죽은 닭을 보고도 무덤덤해지는 감정의 숙련, 닭을 들어올릴 때 쓰는 이두·삼두가 탄탄해지는 육체의 숙련, 이 모든 숙련을 종합하면 함부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작업장 한켠에 마련된 샤워실에서 닭똥 냄새가 밴 몸을 대충 씻고 상차 작업이 한창인 그곳에서 나왔다. 마침 세 번째, 네 번째 트럭이 트럭스케일 위에서 대기하며 닭의 중량을 측정했다. 닭과 인간은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빠져나왔다. 닭은 죽기 위해, 인간은 살기 위해 이동할 뿐이었다.

※‘유랑노동자’는 제시카 브루더의 저서 <노마드랜드>에서 인용했습니다.

돼지농장 이주노동자 “1년에 365일 근무”

한국의 돼지농장에서 일했던 캄보디아인 소팟씨. 1년에 쉬는 날은 단 이틀이었다. 농장주는 일이 많을 때면 한밤중에도 잠든 이주노동자들을 깨워 농장일을 시켰다. 근로계약서에는 근무시간을 밤 7시까지로 규정했지만 1~2시간 잔업은 예사였다. 최저임금 수준만 받았고 병에 걸려 죽은 돼지를 이주노동자들이 먹는 일도 있었다. 2014년 8월 ‘고용허가제 10년을 말한다’ 행사에서 소개된 사례다.

국내 축산 현장의 일은 대부분 이주노동자의 몫이다. 지난해 5월 기준으로 농축산·어업 분야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는 5만6900명이다. 소·돼지·닭을 키우는 농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됐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상당수 입국하지 못하면서 농축산 업계는 일손 부족이 심해졌다. 소·돼지·닭을 키워 도축해 판매하려면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지만, 이들의 노동조건은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착취’에 가깝다.

미얀마에서 온 A씨(39)는 충북의 한 돼지농장에서 일한다. 5년 전 E9 비자(비전문취업)로 한국에 왔다. 온종일 돼지와 함께한다. 일과는 돼지 분뇨 청소를 하고 사료를 주면서 시작한다. 돼지 꼬리 다듬기, 돼지 손톱·발톱 다듬기, 거세, 농장시설 용접도 그의 몫이다. 그는 “거세를 할 때 손을 많이 다친다”고 했다. 한달에 평균 25마리씩 죽는 돼지를 치우는 일도 업무 중 하나다. 근로계약서에는 ‘양돈 및 한우 사육’이 업무 내용으로 규정돼 있지만, 양파나 콩을 재배하는 밭농사 일도 종종 한다.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 A씨는 삼시세끼 김치찌개만 먹는다고 주장한다.미얀마 노동자 제공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 A씨는 삼시세끼 김치찌개만 먹는다고 주장한다.미얀마 노동자 제공

A씨는 “5년 동안 365일 내내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보통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6시쯤 일을 마친다. 밤 6시를 넘겨 연장근무를 할 때도 적지 않다. 돼지를 도축장에 보내는 ‘출하’ 작업이 있는 날이면 오전 6시부터 준비한다. 점심시간은 2시간, 오전·오후 각각 30분씩 휴게시간을 빼고도 하루 9시간 안팎으로 일한다. 근로계약서에는 월 232시간, 일주일로 환산하면 주 58시간 일하기로 돼 있다. 한달에 두 번 쉬기로 했지만 A씨는 “지켜지지 않았다.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그냥해’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주 7일 근무 시 하루 9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잡아도 주당 63시간씩 일했다.

한달에 버는 돈은 190만원. 추가 근무를 해도 수당은 없었다. 올해 최저임금으로 환산한 액수 182만2480원보다 조금 높은 액수다. 5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달에 140만원을 받았다. 매해 10만원씩 임금이 올랐다. 본국에는 부인과 자식까지 다섯명이 있다. 20만원만 남기고 미얀마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는데, 요즘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돈을 보내지 못한다.

기숙사·식사 제공의 대가를 제외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은 액수다. A씨는 주거환경과 제공되는 식단이 열악하다고 주장한다. A씨는 “삼시 세끼 김치찌개만 먹고, 머무는 곳은 한여름에 선풍기도 없고 손빨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장주는 추가 수당을 아직 지급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주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은 나쁘지 않다고 반박했다. 농장주 B씨는 “본인들이 일요일에 딱히 갈 데도 없고 해서 (일을) 하는 것이고, 쉴 때도 있다. 추가 수당 부분은 며칠 있다가 다 계산해주기로 했다”며 “식사 시에는 다른 반찬도 있고 종종 치킨, 피자도 사다 준다. 세탁기는 얘기하면 쓸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자꾸 이용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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