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부부 “투표하라”…흑인 표심, 변화 만들까

2020.06.08 16:57 입력 2020.06.09 10:32 수정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티에서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 참가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샌티|AF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티에서 ‘BLM(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 참가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샌티|AFP연합뉴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의 가혹행위로 숨진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흑인 민심’이 올 11월 미국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흑인들이 투표에 많이 참여할수록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2016년 대선 때 흑인들의 투표율이 20년 만에 하락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흑인들의 ‘투표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유튜브가 개최한 온라인 고교·대학생 대상 졸업식 축사에서 최근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관련해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쉽게 냉소하지 말라”며 “직접 행동과 투표, 둘다 중요하다”고 했다. 미셸 오바마도 같은 행사에서 “주변에 유권자 등록을 하도록 권유하라”고 했다. 흑인 공동체에 영향력이 큰 두 사람이 나란히 “투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2016년 대선 때 흑인 투표율은 59.6%로, 백인 투표율(65.3%)보다 낮았다. 특히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2년 대선 때(66.6%)보다 7%포인트 가량이나 떨어졌으며, 1996년 대선 이후 계속 상승하던 흑인 투표율이 처음으로 하락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가 투표를 독려한 것은 2016년 때의 투표율 하락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흑인 투표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흑인들의 정치 참여가 제한됐던 역사와 현존하는 한계를 떠올리게 한다.

미 흑인들은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이 이끄는 민권 운동의 결과로 린든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투표 권리법’(1965년)이 제정되고 나서야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이전 일부 주정부들은 세금 납부 내역이나 신분 보증인 등을 요구하며 흑인들의 유권자 등록을 막았다. 심지어는 읽기·쓰기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투표 권리법’이 통과된 후 몇 달 만에 약 25만명의 흑인이 유권자로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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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투표를 하려면 선거 전 특정 기간 내 유권자 등록을 마쳐야 한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16년 대선 유권자 통계를 보면 투표 가능 인구 2억3570만명 중 64%인 1억5760만명이 등록 유권자였다. 백인 인구 1억9720만명 중 등록 유권자는 1억1415만명(57.8%)이고, 흑인 인구 3970만명 중 등록 유권자는 1915만명(48.2%)이었다. 지난 대선에선 투표율뿐만 아니라 등록 유권자 비율도 백인이 흑인보다 높았던 것이다.

온라인 등록제, 운전면허 발급시 자동 등록제 등이 도입되면서 흑인 유권자 등록 비율도 꾸준히 늘었다. 제도의 변화는 실제 흑인 정치력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선출직 공무원 중 흑인의 수는 1970년 1500명에 못미쳤으나 2011년엔 1만명을 넘어섰다.

‘투표 장벽’은 여전히 있다. 2018년 중간선거 당시 조지아주는 이전 선거 불참 등의 이유로 5만명의 유권자 등록을 보류했는데, 이중 70%는 흑인 거주지 출신이었다. 2016년 대선 때 텍사스주와 애리조나주 등은 예산과 투표율 등을 이유로 흑인·히스패닉 거주지 중심으로 투표소 수백곳을 폐쇄했다. 투표일이 휴일이 아닌 만큼, 생계 전선에 뛰어든 흑인이라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투표’보다 ‘일’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라숀 레이 메릴랜드대 사회학 부교수는 지난해 9월 브루킹스연구소를 통해 발표한 ‘흑인 투표율에 대한 기록 바로잡기’란 글에서 “흑인 투표율이 낮다는 지적은 흑인이 게으르고,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강화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1980년 이후 흑인 투표율은 백인과 큰 차이가 없는 50~60%대의 투표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레이 교수는 “투표권 획득의 어려움, 정치적 이슈에서의 소외,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한 자의적 선거구 획정) 등이 흑인들을 투표소로 가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사회운동가 미셸 오바마(왼쪽)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사회운동가 미셸 오바마(왼쪽)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AP연합뉴스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이번 대선에선 흑인 투표율이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미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는 지난해 10월 이번 대선에서 흑인 투표율이 2012년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분석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흑인 표심을 신경쓸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흑인 투표자의 8%만 트럼프 후보를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늘어난 일자리’를 무기로 흑인 유권자들에 어필해왔지만, 최근 시위에 대응한다며 연방군 투입 등을 운운하다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더 굳혔다. 게다가 흑인 공동체에서 코로나19 피해가 더 많이 발생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선거대책위원회 책임자들을 모아 ‘흑인 표 대책’을 협의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8일 플로이드 추모식이 열리는 텍사스주 휴스턴을 방문한다. 바이든 전 부통령 입장에선 흑인들을 투표소로 끌어들일 ‘유인책’이 더 필요하다. 흑인 유권자의 43%는 스스로를 중도로, 25%는 보수로 분류한다. 결국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할 교육·보건·형사사법 분야의 공약이 중요해졌다. ‘흑인 부통령’ 후보의 존재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 교수는 “선거에서 흑인을 위한 정책 이슈가 소외되는 경험을 해온 흑인 유권자들은 흑인 후보가 없을 땐 전략적 판단으로 투표소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흑인 표심에 관심이 쏠린 최근의 상황과 관련해 정치 분석가인 후안 윌리엄스는 지난 3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위치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피 흘려 1965년 투표 권리법을 만든 흑인 민권 운동가들은 이런 순간을 꿈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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