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큰 정부가 돌아왔다”…아동수당 300달러 신호탄

2021.07.13 15:30 입력 2021.07.13 15:31 수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총기 폭력 대책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총기 폭력 대책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정부가 내년이면 끝나는 아동수당 월 300달러 지급 연장을 추진하며 공화당을 압박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미국 정책의 패러다임이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민주당이 ‘복지의 종말’을 고한 지 25년 만에 다시 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정부가 각 가정에 아동수당 월 300달러를 지급하면서 아동수당 제도 영구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오는 15일부터 세금 공제 형태의 아동수당으로 각 가정에 매달 최대 300달러를 지급하기 시작한다. 미국 어린이 7400만명 중 소득 하위 88%가 혜택을 받는다. 미 의회가 지난 3월 1조9000억달러(2173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데 따른 조치다.

미국은 주요 부국 중에 아동수당을 도입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 아동수당 제도가 없는 국가는 미국 외에 터키와 멕시코뿐이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미국이 아동수당을 지급하면 빈곤 아동 규모가 지금보다 39% 줄어들 수 있다고 추산했다. 라틴계 아동 빈곤은 45%, 아프리카계는 52% 줄어들 것으로 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의회에 올가을 내 통과를 당부한 ‘코로나19 인프라 투자 법안’에서 아동수당 4년 연장을 제안했다. 민주당이 과반을 장악한 하원은 아예 아동수당 제도를 영구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공화당이 절반을 차지한 미 상원의 결단만 남았다.

■코로나19로 바뀐 복지 여론

민주당이 아동수당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여론의 지지가 크기 때문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지난달 7~9일 벌인 여론조사에서 미 유권자의 51%는 바이든 정부의 세액 공제 형태의 아동수당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퓨리서치센터의 3월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70%는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아동수당을 2022년 중간선거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뉴저지)은 “아동 세금 공제(아동수당)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 이후 워싱턴에서 나온 가장 혁신적인 정책”으로 평가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뉴욕)는 “뉴욕 아이들의 절반이 빈곤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뉴욕)은 “한 세대에서 가장 큰 빈곤 퇴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운데)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왼쪽), 제리 내들러 하원의원(오른쪽)과 함께 8일 지역구인 뉴욕에서 ‘아동 세금 공제’ 형태의 아동 수당을 옹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운데)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왼쪽), 제리 내들러 하원의원(오른쪽)과 함께 8일 지역구인 뉴욕에서 ‘아동 세금 공제’ 형태의 아동 수당을 옹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욕|AFP연합뉴스

민주당은 그동안 복지 논쟁에서 수세적인 입장이었다. 19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가 1930년대의 뉴딜 정책을 대체한 이래로 공화당은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태를 조장하는 민주당의 실패한 복지 시스템”을 비판해왔다. 급기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6년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우리가 알던 복지의 종말”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바이든 정부는 큰 정부를 자처하고 있다. 확장적 재정 정책에 대한 국내 여론도 반전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여년 동안 불평등이 커지고 소득은 정체되면서 생계를 걱정하는 미국인 비율이 늘어났다”면서 “진보적 의제의 급속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세력이 재편성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40대에 접어들기 시작한 MZ 세대가 처한 사회적 환경이 바뀌었다. CNBC가 지난달 벌인 여론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1980~1990년대 출생자)의 27%가 주택 구입을 미루고, 77%가 자녀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퇴를 미루겠다고 답했다. 클리프 롭 위스콘신대 소비자경제학과 부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은퇴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 노후 안전망은 줄어들고, 점점 더 비싸지는 자녀 교육비를 감당하면서 자신의 학자금도 갚아야 하는 ‘낀 세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CNBC에 말했다.

■아동수당 두고 엇갈린 공화당 의견

공화당에서는 아동수당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은 지난달 리얼클리어폴리틱스 기고에서 “바이든 정부의 아동 세금 공제는 빌 클린턴 시대의 실패한 복지 시스템을 재창조해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은 아동수당 지급 규모를 월 350달러로 오히려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다. 롬니 의원은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사업 예산을 삭감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대선 출마를 시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긴급재난지원금에 찬성한 이력도 공화당의 입장을 궁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각 가정에 지급하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월 600달러(70만원)에서 2000달러(230만원)로 올려야 한다는 이유로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코로나19 경기부양책 서명을 거부한 바 있다.

공화당 내에서는 아동수당 논쟁을 피하려는 조짐도 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3월 바이든 정부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이 국가 부채를 늘릴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아동수당은 언급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복지 논쟁을 피하고 이민과 같이 보수에 유리한 주제로 전선을 옮기려 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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