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름전쟁’ 시작됐나···크름반도, 우크라전쟁 새 격전지로

2023.09.26 16:14 입력 2023.09.26 20:00 수정

22일(현지시간)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에 위치한 러시아 흑해 함대 사령부 건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A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에 위치한 러시아 흑해 함대 사령부 건물에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AP연합뉴스

1년7개월간 우크라이나 동·남부를 중심으로 전개돼온 전쟁이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름반도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성지’라고 불리는 크름반도를 집중 공격하면서, 크름반도가 전쟁의 새 격전지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은 지난 22일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흑해함대 본부를 공격해 빅토르 소콜로프 흑해함대 사령관 등 장교 34명을 폭사시키고, 군인 10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만약 이같은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는 지난해 4월 러시아군의 기함 ‘모스크바함’이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침몰한 이후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해군이 입은 최대 규모 피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발표에도 하루 동안 침묵을 지키던 러시아는 이튿날인 26일 소콜로프 제독이 국방부 화상회의에 참석한 사진을 공개하며 그의 건재함을 주장했다. 사진에서 소콜로프 제독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비롯한 육군 참모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다만 소콜로프 제독의 사망 여부와 별개로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흑해함대가 큰 손상을 입은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흑해함대 사령부 건물이 크게 파손되고 지붕 대부분이 완전히 날아간 모습이 러시아 언론 보도와 위성사진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서방 회의론에도 ‘크름 탈환’ 주장해온 우크라, “느리지만 점진적 공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초반부터 “우리는 크름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크름반도 탈환 의지를 수차례 밝혀왔지만, 지난 1년여간 크름반도는 우크라이나군의 사정권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었다. 러시아 정부는 2014년 강제병합 이후 자국 국민들에게 크름반도로의 이민을 장려해 왔고, 온화한 날씨 덕에 휴가철이 되면 여전히 러시아 여행객들로 붐볐다.

그러나 최근 몇주간 우크라이나가 크름반도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주로 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름대교를 겨냥해 제한적인 드론 공격을 수행했던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들어 러시아 해군의 흑해 거점인 세바스토폴 사령부 등 군사시설을 타깃으로 더 과감한 공격을 단행하고 있다.

세바스토폴 해군 사령부와 사키 공군기지 등에는 지난 20일부터 23일까지 사흘 연속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군이 장교 34명을 사살했다고 밝힌 지난 22일에는 12차례나 미사일 공격이 단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 13일에는 우크라이나군의 드론과 미사일이 해군 조선소를 공격해 대형 상륙함 한 척과 잠수함 한 척을 파괴했고, 이튿날인 14일에는 크름반도 서부 예브파토리아 인근에 설치된 러시아군의 최첨단 S-400 미사일 방공시스템이 공격을 받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는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러시아의 크름반도 내 화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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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푸틴 성지’ 크름반도 집중 공략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일부 서방 동맹국들의 부정적인 기류에도 불구하고 크름반도 탈환을 집요하게 주장해온 것은 크름반도의 상징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남부 전선의 전세를 바꾸기 위한 전략적 중요성도 크기 때문이다.

크름반도야말로 러시아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주장해온 우크라이나군은 크게 두 가지 전략적 목표 하에 이런 공격을 수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크름반도 북동쪽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전선에서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의 육상 반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6월부터 진행 중인 ‘대반격’의 성공을 위해 크름반도를 통한 러시아군의 보급선 차단에 주력해 왔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 빼앗긴 남부 도시들을 탈환해 크름반도 북부에서 동부 돈바스, 러시아 본토까지 이어지는 남부 점령지 회랑을 중간에서 끊어내고자 하지만, 러시아군이 6개월간 겹겹이 구축한 방어벽으로 전선 돌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름반도 내 러시아군의 보급선과 항공전력 등을 파괴한다면 러시아의 방어 역량을 확실하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흑해함대 사령부 건물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크름반도 세바스토폴의 러시아 흑해함대 사령부 건물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크름반도 공격에는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막힌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해상 수출을 재개하고 흑해 항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한 목적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선언 이후 지난달 흑해에 새 ‘인도주의 항로’를 개설했다고 밝혔으나, 이 항로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경제는 새 흑해 항로를 성공시키는 데 달려 있다”면서 “이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군함을 파괴하고 몰아내 항구도시와 새 흑해 항로를 공격하는 것을 가능한 한 어렵게 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은 단 한 척의 군함도 보유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군함 최소 19척을 침몰 혹은 파손시키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과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영국 국방무관으로 근무했던 군사전문가 존 포어먼은 “우크라이나가 ‘모기 함대’ 전법에 적응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군함 없이도 해상 드론과 미사일 포격만으로 상대방의 전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스톰섀도 등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지원받으면서 전력이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최근 미국이 지원을 약속한 우크라이나의 숙원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이 도착하면 크름반도 타격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이태큼스는 사정거리가 305㎞에 달하는 장거리 미사일로, 이 무기를 확보하면 크름반도는 물론 전선 너머 러시아 병참기지나 사령부도 사정권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우크라 숙원 ‘에이태큼스’로 크름 공격에 탄력 붙나···“전세 바꾸기엔 한계” 신중론도

다만 우크라이나군의 이러한 ‘반격’에도 전세를 완전히 뒤바꿀 변곡점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론이 제기된다. 러시아가 본토 노보로시스크항으로 일부 군함을 옮기는 등 우크라이나군의 공세에 대응해 전술을 조정하고 있고, 여전히 양국의 해군력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해군 퇴역 대령인 안드리 리젠코는 “전쟁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해군력 격차가 12대 1이었다면 현재는 4대 1로 줄어든 상황”이라면서 “여전히 러시아가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이 크름반도 병합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며 이곳을 ‘성지’라고 부를 만큼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이곳 사수를 위한 대규모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푸틴 정권에 비판적인 러시아의 독립언론 ‘메두자’에 기고하는 전쟁 분석가 드미트리 쿠즈네츠는 뉴욕타임스(NYT)에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목표는 남부전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크름에서 러시아의 군수품 조달을 막아내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장거리 미사일 재고가 한정돼 있어 러시아군에 일부 타격을 입혔지만 아직까지 임계점엔 도달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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